1980년대 시동인지 시대를 이끈 선두주자 자유시 동인
모든 것에로의 자유, 혹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새해 맞이 집안 청소를 하다가 발견한 오래된 책 한권이 있다. 바로 1977년 5월 10일에 발행된 동인지 ‘자유시’ 2집이다.

1997년 5월에 발행된 시동인지 자유시 2집. 자유시 동인의 기본 명제는 자유정신의 실현에 입각해 있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시 정신과 지역을 바탕으로 한 인간적 유대를 바탕으로 한 ‘자유시’는 동인지 첫 호에서 ‘시는 자유로와야 한다’ 고 선언한다.
1997년 5월에 발행된 시동인지 자유시 2집. 자유시 동인의 기본 명제는 자유정신의 실현에 입각해 있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시 정신과 지역을 바탕으로 한 인간적 유대를 바탕으로 한 ‘자유시’는 동인지 첫 호에서 ‘시는 자유로와야 한다’ 고 선언한다.

1976년 4월에 창간된 ‘자유시’는 이하석·이태수·이동순·이기철·이경록·박해수·박정남·정호승 등 8명의 동인으로 시작하여 6집까지 발행된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오래된 책이 바로 자유시 동인이 두 번 째로 펴낸 사화집이다. 만지면 부스러질 정도로 낡아서 조심스럽게 펼쳐보니 2집에서 일부 동인 변동이 있었다. 정호승 시인이 ‘반시’ 동인으로 활동하게 됨에 따라 ‘자유시’에서 빠지고 강현국 시인이 새로이 가세했다. 또 백혈병으로 타개한 이경록 시인의 유고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의 절명시 빈혈을 읽으며 눈시울을 적시던 기억이 난다.

밤이 되면 내 몸에서 피가 빠져 나갑니다. 피는 어디로 가나. 피는 공중으로 공중으로 흘러서 하늘로 갑니다. 하늘나라, 피가 가는 그곳은 언제나 내 죽음의 집입니다.// 피가 빠진 몸은 홀로 꿈을 꾸다가 차게 굳어서 흑연이 됩니다. 연(鉛)이 된 몸. 연(鉛)의 꿈. 연(鉛)이 눈물을 흘립니다. 내 피는 하늘에서 별이 됩니다. /— 이경록 〈빈혈〉(자유시 2집, 1977) 전문

자유시 2집은 5월에 나왔고, 이경록 시인은 한달 앞서 4월에 29세의 아까운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하석·이태수·이동순·이기철·이경록·박해수·박정남·정호승 등 8명의 동인으로 시작한 자유시 동인이 두 번 째로 펴낸 사화집 목차에 보면 정호승 시인이 ‘반시’ 동인으로 활동하게 됨에 따라  ‘자유시’에서 빠지고 강현국 시인이 새로이 가세했다.
이하석·이태수·이동순·이기철·이경록·박해수·박정남·정호승 등 8명의 동인으로 시작한 자유시 동인이 두 번 째로 펴낸 사화집 목차에 보면 정호승 시인이 ‘반시’ 동인으로 활동하게 됨에 따라 ‘자유시’에서 빠지고 강현국 시인이 새로이 가세했다.

이 오래된 책에 수록된 이하석 시인의 시 한편을 더 읽어보자.

명아주 풀물 속에도/ 한 시대(時代)의 살기(殺氣)가 있다./ 온통 잔소리만 듣다가 들에 나오니/ 들녘의 패랭이 자운영(紫雲英)들은/ 뜻없이 하늘로 피어고/ 안씨러이 풀잎을 문지르노라면/ 묻어나는 풀물에도 독(毒)이 있다./ 이제 어디에 우리를 숨길 것인가/ 들녘의 땅 아래 칼을 몰래 묻어놓고/ 돌아와 또 잔소리를 듣노라니/ 손 끝에 묻혀온 풀물이 서류(書類)에 묻어난다. [중략] 타이프라이터의 소리 속에도 돋아나/ 자주 고장내며 쩔꺽거린다. /— 이하석 〈풀물〉(자유시 2집, 1977) 부분

나는 고2 때 이하석 시인을 처음 만났는데 대구 동성로 은하다방에서 ‘자유시’ 첫 동인지를 발간한 기념으로 시화전을 열고 있을 때였다. 이하석 시인의 부름을 받고 그 다방으로 나가 처음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지난 45년간 부지런히 만나왔다. 이하석 시인은 나의 인생 멘토이며 새해가 되면 신년 하례를 가는 유일한 선배 시인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자유시’ 45주년이 되는 해다. ‘자유시’가 한국시단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반시’와 쌍벽을 이루면서 시의 부흥운동을 주도하였고 1980년대 시동인지 시대를 이끈 선두주자가 ‘자유시’가 아니던가.

반시는 주로 1973년 신춘문예 당선자들과 젊은 시인들이 참여한 문학 동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는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지속된 유신체제가 한참 기승을 부리고 있던 시대였다.

반시 동인은 “삶에서 떠난 귀족화된 언어에 반기를 들고, 시와 삶의 동질성을 내세우며 언제나 깨어있는 시인”을 선언했다. “시야 말로 우리네 삶의 유일한 표현 수단임을, 시야 말로 시대의 구원을 위한 마지막 기도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우리가 조명하고 있는 감추어진 현장의 혼돈을 다시 그 본래적 질서에로 회복시키려는 끊임없는 노력조차 오로지 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창간사를 냈다. 편집동인으로 김창완·권지숙·정호승·이종욱·하종오·김명인·김명수·김성영 등이 참가했다.

반면에 대구의 대표적인 시 동인인 ‘자유시’는 “사람다운 삶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노력과 함께 상대방과 자신을 포함한 상황전체를 객관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자유시 동인의 기본 명제는 자유정신의 실현에 입각해 있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시 정신과 지역을 바탕으로 한 인간적 유대를 바탕으로 한 ‘자유시’는 동인지 첫 호에서 ‘시는 자유로와야 한다’ 고 선언한다.

시는 우선 자유로와야 함을 우리는 믿고 있다. 모든 것에로의 자유, 혹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우리는 시가 자유로우면 그만큼 언어도 자유로우리라는 기정사실을 믿는다. 자유롭자. 그리고 모든 시들로부터도 우리는 자유롭자. 기실 자유라는 말 속에는 얼마나 허울 좋은 구실들이 있어 왔느냐 우리는 마침내 자유로울 것인가? 어쨌든 우리는 모든 사물들에 대하여, 모든 구조들에 대하여, 모든 기능들에 대하여 자유롭기를 원한다. 우리의 만남이 향리에서 이루어졌을 때, 함께 나누던 말들의 따사로움을 우리는 기꺼워한다. 말들의 따사로움이 우리를 결속시키고, 말들의 따사로움이 이루어져서 우리들이 가야할 더 큰 말의 본향길이 넓게 틔여졌으면 한다. /— 자유시의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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