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는 하버드, 공대는 스탠퍼드.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대, 공대, 의대, 경영대 가릴 것 없이 모두 서울대가 최고다. 이렇듯 학과가 특수화된 외국 대학과는 달리 모든 최고 과는 서울대에 몰려있는 실정이고 여타 대학은 서울대를 본받아(?) 모든 과에서 경쟁력을 가지려 한다.

손병두 총장은 ‘규모의 경제’를 언급하며 서강대의 양적 팽창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의대 분야에서 특화된 가대와의 통합은 우리학교의 고속성장과 경쟁력을 확보해 줄거란 막연한 낙관을 낳았다. 또 가대와의 통합으로 인해 로스쿨을 유치하는데도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도 더해졌다. BK21에서의 참패는 이 같은 목소리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밀양대와 부산대가 통합하기로 합의각서를 교환한 뒤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기존 두 대학이 통합 부산대가 됐다. 결국 밀양대는 부산대의 캠퍼스가 돼버렸다. 이렇듯 경쟁력과 대학통합이라는 유령이 한국의 대학가를 떠다니고 있다.

정부와 교육부의 교육정책은 이런 현실을 더욱 부채질했다. ‘대학의 경영도 기업처럼!’ 교육은 이미 산업이기에 CEO 출신 총장의 대학경영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교육부도 대학 교육을 ‘선택하고 집중하게’ 만들어 얼마나 잘했느냐에 따라 지원금을 몰아줬다. 대학을 기업처럼 경영하지 않고서는 1원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대한민국 교육 실정이다. BK21 사업은 이런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체 지원액 중 절반 이상이 서울대로 돌아갔다. 지방대 중에는 오직 부산대 한곳이 포함됐을 뿐이다.

교육부는 BK21에 지원 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지 말라고 한다. 어차피 지방대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떡을 먹도록 계속해서 유인한다. 학교끼리 통합해 규모를 키운다면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살아 남기 위해선 규모성장 밖에 달리 선택사안이 없다. 그러나 국공립 통폐합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분명 아니다. 더군다나 대학의 경쟁력과 미래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아니다. 대학간 통폐합은 장기적 대학발전 뿐 아니라 대학 내의 구성원과 동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치밀해야 하며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통폐합은 그렇지 않다.

밀양대와 부산대의 동일 학과는 하나로 통합됐다. 하지만 밀양대에는 커리큘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경우가 생겨 수업을 듣기 위해 1시간 남짓 걸리는 부산대 까지 가서 통학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경쟁력이든, 정부지원이든 이 모든 정책이 대학교육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학생의 수업권조차 보장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대학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학생의 편의와 복지, 교육여건을 만족시키지 않고서는 그 어떤 정책도 효용을 상실한다. 따라서 규모로 판단되는 현재의 경쟁력에 대한 인식은 재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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