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國寶) 제132호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과 도체찰사로서 탁월한 전시지도력으로 7년에 걸친 참혹한 국란(國亂)을 극복했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 1542~1607)의 전시회고록입니다. 우리 역사상 기록을 남겨 그것이 국보에 오르게 한 인물은 ‘서애’와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쓴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뿐이라고 합니다.
「징비록」은 조금 어려운 한자입니다. 징계할 징(懲), 삼갈 비(毖) 기록할 록(錄)이란 세 글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꽤 비장감이 느껴지지는 책이름이지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여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대비하려고’ 쓴 책인 징비(懲毖)라는 문자는 《시경(詩經)》 <소비편>의 ‘예기징이비역환(豫其懲而毖役患)’ 즉,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말입니다.
‘역사의 연구’를 집필해서 순식간에 세계의 지식인으로 평가받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연구해 보면 민족의 유형이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재난을 당하고도 대비하지 않는 민족, 두 번째는 재난을 당해야만 준비하는 민족, 세 번째는 재난을 당하지 않고도 미리 대비하는 민족들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대한민국은 어디에 해당 되는 민족일까요? 「징비록」은 1592년(선조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 입니다. 「징비록」은 저자인 유성룡이 자리에서 물러나 낙향해서 집필한 것입니다. 「징비록」에서 유성룡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를 회고하면서,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온 산천이 피로 물들고, 계곡마다 하얀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시체 썩은 물과 피물이 계곡을 흐르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그 참혹한 전란이 다시는 조선에서 반복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책이 바로 이 「징비록」입니다.
어느 역사학자가 우리의 역사가 5,000년이라고 하나 그동안 우리나라가 외침을 받은 횟수는 무려 938번이라고 합니다. 평균으로 5.3년마다 한 번씩 외침을 받았다는 결론인데. 그럼 조선은 왜 이렇게 외침을 많이 받았을까요?
토인비가 말한 첫 번째 민족유형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재난을 당하고도 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혹한 임진왜란이 끝나고 또 얼마 되지 않아 조선은 또 다른 치욕의 참혹한 전란에 휩싸이게 되었고 강산이 초토화 되었습니다. 바로 병자호란 입니다.
「징비록」에서 그렇게 미리 준비하고, 준비해서 또 그런 비극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도, 대비하지 못한 지도자와 위정자들의 무능과 무기력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는 아예 나라를 일본에 통째로 빼앗겨 강점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지도자들은 앞으로 어떤 ‘징비’를 해야 할까요?
첫째, 유비무환(有備無患)입니다.
왜 환란을 당해야만 했을까를 분석하고, 연구하며, 다시는 이런 역사를 반복해서 당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그것이 바로 ‘징비’ 아닌가요?
둘째, 국민의 통합입니다.
조선조 고질적인 사색당파의 폐단이 지금도 횡행하고 있습니다. 좌와 우로, 보수와 진보로, 종교 간에 우리나라는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서로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입니다. 이 국민통합을 이룩하지 못하면 언제 또다시 외침을 받을지 심히 걱정입니다.
셋째, 북 핵(北核)에 대한 대비입니다.
이젠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6.25나 1.4후퇴 때는 피란이라도 가서 살아남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피란도 못갑니다. 북 핵에 대비해 ‘징비’해 놓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집에 앉아서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역병(疫病)에 대한 대비입니다.
전세계코로나-19(COVID-19)현황실시간통계사이트‘월드오미터(Worldometers)’에 따르면, 1월 20일 오전 10시를 기준하여 총 감염자는 누적 96,599,770만 명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총사망자도 누적 2,064,000명이라고 합니다. 이제 곧 백신이 접종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향후 코로나 19가 아니더라도 더 진화되고 새로운 역병이 우리 인류를 엄습할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어쩌면 그간의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 수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어떻습니까?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였습니다. 국제관계는 80%가 힘(power)이고, 20% 정도가 법(law)이라 합니다. 우리도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징비’를 실천할 때가 아닌지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1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