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역 앞에서 한 노숙자가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너무 추워서 그러니 따뜻한 커피 한잔만 사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행인은 두 말없이 자신의 패딩점퍼를 벗어주고, 장갑까지 건네주며, 지갑에서 5만원을 꺼내 손에 쥐어주고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도 한 편에선 따뜻한 인정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감동을 느끼지 않은 분은 아마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역경(易經)》의 <건⸳곤괘(乾坤卦)> 해설서인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말입니다. 보통 <적선여경(積善餘慶)‘으로 줄여 쓰지요.

이렇게 ‘경사(慶事)가 선(善)을 쌓은 댓가라면, 재앙(災殃)은 선(善)을 쌓지 않은데서 비롯된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길흉화복(吉兇禍福)’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살았느냐?’ 의 결과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요즘 권선징악(勸善懲惡)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것인가! 아니면 불황 탓인가요? 가뜩이나 각박한 세상에 더욱 살벌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묻지 마 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돈과 지위만 보장된다면 수단은 문제 삼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정치하는 모습을 보면, 툭하면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내편, 네 편을 갈라서 반대편이면 마구잡이로 공격과 험담을 합니다. 그리고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을 향해 화풀이 하듯, 무차별 비방을 일삼는 네티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그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밤, 천둥 번개 치고 비가 퍼붓는 데 주막집의 사립문 앞에서 누군가 울부짖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업 벌써 끝났소.” 자다가 일어난 주모는 안방 문을 쾅 닫아 버렸습니다. 그 때 열 두어 살 먹어 보이는 사동(使童)이 나와서 사립문을 열어보니 한사람이 흙담에 등을 기댄 채 질척거리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고주망태가 된 술꾼인 줄 알았는데 술 냄새는 나지 않았습니다. 가시넝쿨 속을 헤맸는지 옷은 찢어졌고, 삿갓은 벗겨졌고, 도롱이는 비에 흠뻑 젖어 찢겨져 있었습니다. 사동이 그를 부축하며 뒤뜰 굴뚝 옆에 붙어 있는 자신의 쪽방으로 데려갔습니다. 내일이 장날이라 장사꾼들이 빼곡하게, 새우잠을 자는 객방에는 자리가 없었을 뿐더러 흙투성이를 방에 들이게 할 수도 없었지요.

사동이 반 평도 안 되는 자기 방으로 그 사람을 데려갔습니다. 호롱불 빛에 보니 그 사람은 볼품없는 노인이었습니다. 그렇게 동창이 밝았을 때, 노인이 눈을 떠보니 자신은 발가벗겨져 있고, 옷은 바짝 말라 머리맡에 개어져 있었습니다. 그때 사동이 문을 열고 생긋이 웃으며 말합니다.

“어르신, 아궁이에 옷을 말려놓았으니 입으세요.” 그 며칠 후, 그 날은 장날이 아니라 일찍 주막 문을 닫으려는 하는데, 웬 장정이 들이 닥쳤습니다. 주모는 바깥나들이를 나갔고 사동 혼자 있었지요. “너, 나하고 어디 좀 가야 쓰것다.” 장정이 사동의 손을 잡아 끌었습니다.

“안돼요. 왜요?” 그렇지만, 덩치 큰 장정은 사동을 번쩍 들어 사립문 밖에 매어둔 말 에 태웠습니다. 얼마를 달려 고래 등 같은 어느 기와집 앞에 멈췄습니다. 사동이 떨면서 장정에게 이끌려 대문 안 사랑방으로 갔습니다. 유건(儒巾)을 쓴 대주 어른이 빙긋이 웃으며 사동의 두 손을 잡는 것이 아닌 가요!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어! 그날 밤 비를 맞고ᆢ.” “그래, 그렇다. 내가 어머님 묘소에 갔다가 갑자기 폭우를 만나 하인은 낭떠러지기에 떨어져 죽고, 나 혼자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여우고개 아래 너희 주막에서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

사동의 얼굴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놀라움에 벌린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습니다. “너의 바람이 뭐냐?” “돈을 벌어서 주막을 도로 찾는 것입니다.” 원래 여우고개 아래 주막은 사동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태 전, 7년이나 누워 있던 사동의 아버지가 이승을 하직하자 약값으로 쌓인 빚 때문에 주막은 저잣거리 고리채 영감에게 넘어갔던 것입니다.

사동의 어머니는 저잣거리 국밥집 찬모로 일하게 됐고, 형은 장터에서 지게꾼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주막집 주모는 고리채 영감의 사촌 여동생이었습니다. 사동의 내력을 다 듣고 난 대주 어른이 물었습니다. “몇 년이나 돈을 모으면 그 주막을 도로 찾을 것 같으냐?” 코흘리개를 겨우 면한 사동이 손가락을 세어보며 말합니다.“네 한 십년 안에는….” 대주 어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동을 말에 태워 돌려보냈습니다. 이튿날 대주 어른이 저잣거리 고리채 영감을 찾아가 주막을 사겠다고 흥정을 했습니다. 며칠 후 나루터 옆에 목수들이 모였습니다. “뚝딱 뚝딱....” 석 달 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시월상달에, 넓은 기와집 주막이 완공됐습니다.

어떻습니까?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하였습니다. 서울역 앞에서 노숙 인에게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하고 총총히 사라진 행인이나, 주막집 사동의 착한 행동이 우리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는 것 같네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월 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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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선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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