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의 신당(神堂)] 황포돛대 지켜왔던 ‘영길만 신당’

창원시 웅천 영길만 당메 정상부의 영길만 신당(神堂)ⓒ강창원 기자 

[창원=뉴스프리존] 강창원 기자=영길신당(永吉神堂)이 위치한 곳은 창원시 웅천(熊川)의 영길만(永吉灣)을 지키는 남양동 208-1번지 독메 정상부다. 월남천(月南川)이 휘돌아 영길만으로 흘러가는 곳에 바다를 만나 영길마을을 지키는 독메는 당메(堂山)라 하고 정상에는 영길마을 신당(神堂)과 신목(神木)이 있다. 원래 신목은 2그루의 상수리나무 였지만 지금은 신당 옆에 1그루만 남아 있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36m를 표시하고 구글지도는 위도 35°06'49"N 경도 128°47'00"E라 표시한다.

지명은 1914년 일제에 의해 명명된 남양동(南陽洞)인데 월남리(月南里)의 ‘南’과 사라진 마을 산양리(山陽里)의 ‘陽’을 따서 남양동이 되었다. 산양리는 마천공단(馬川工團)을 만들면서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

영길만 해안도로변의 황포돛대 노래비ⓒ강창원 기자

웅천 영길만은 이미자가 부른 노래 ‘황포돛대’의 가사를 쓴 웅천 대장동에서 자란 이일윤 작가의 시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영길만 해안도로에는 ‘황포돛대’ 노래탑이 있고 이미자의 노래가 나온다. 그 가사는 아래와 같다. 

황포돛대-이일윤 작사, 백영호 작곡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배는 어디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마음도 구슬퍼
아 어디로 가는배냐 어디로 가는배냐
황포돛대야

순풍에 돛을 달고 
황혼바람에 떠나가는 저사공 
고향은 어디냐 사공아 말해다오 
떠나는 뱃길 
갈매기야 울지마라 이마음이 서럽다 
아 어디로 가는배냐 어디로 가는배냐
황포돛대야

웅천 남문동 당메 정상부의 영길만 신당(神堂)모습ⓒ강창원 기자

영길신당이 위치한 당메는 규모가 크지 않아 정상부까지는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신당의 입구 쪽에는 왕벗나무를 심어 경관을 아름답게 꾸민 듯하다. 
그러나 사람이 관리한 흔적은 없고 신당의 문은 부서져 샤시문의 한쪽은 땅에 떨어져 있고 한쪽 문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신당은 3평 가량의 시멘트블록 담장 안에 1.5평 크기의 시멘트블록 집이고 기와는 일본식 시멘트기와를 입혔으며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영길만 신당 정면의 휘장에 기록된 '남무봉사당산하강지위'ⓒ강창원 기자

정면의 휘장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다. 
휘장의 중앙에는 「남무봉사당산하강지위(南無捧師堂山下降至位)」 
          좌우에는 「우화선우장군(右化仙右將軍)」이라 썼다. 
굳이 뜻풀이를 하자면 “봉사당(捧師堂) 당산 아래에 지극히 임하신 우화선우장군에게 귀의하겠습니다.” 정도일 것이다.

영길만 신당에 걸려 있는 남자 한복ⓒ강창원 기자

신당에는 남자용 한복이 걸려 있고 여아용 한복은 바닥에 떨어져 쓸 수 없게 됐으며, 바닥의 한켠에는 제기들이 담겨 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 투성이고 그 위쪽 벽에는 2011년도 8월의 달력이 걸려 있다. 

상량을 보니 「西紀一九九二年五月拾一日 서기 1992년 5월 12일」이라 기록해 옛 건물을 헐고 29년 전에 지었으나 이 신당을 관리해오던 영길마을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몇 년이 방치되어 오니 지금처럼 폐허로 변했다.
마지막으로 나올 때 문짝을 억지로 맞춰 놓고 왔지만, 우리 문화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미신 아닌 종교가 어디에 있는가!

영길신당은 1967년 문교부 소속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한 『제당조사질문지祭堂調査質問紙』에는 빠져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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