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퇴 시대] '환갑=은퇴' 깨자
고령자 취업 가로막는 임금체계
‘60세 시대’ 만든 연공서열 호봉제
기대수명 늘어 정년연장 어렵게 해
"임금피크·시간선택제 활용해
고령자 일자리 적극 늘려야"

 사진=은행·금융공기업 출신의 50~60대 퇴직자들이 협동조합 ‘브라보노’를 만들어 재능기부와 경영컨설팅 사업에 나서고 있다. 조합원인 전용욱·노정구·정운관·김만희·신창용·이현두씨(왼쪽부터)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장년창업센터에 모여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같이 참여한 이성희씨는 사정상 함께 하지 못했다.

[연합통신넷=온라인뉴스팀] 올 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60세 이상 퇴직자를 대상으로 ‘시니어 사원’을 모집했다. 전국 임대아파트에 배치돼 하루 4시간씩 취약계층을 돌보거나 시설물 안전을 점검하는 일을 한다. 보수는 월 60만원이 채 안 된다. 그런데 1000명 모집에 6400명이 몰렸다. 전직 교사와 증권사 직원 등 경력도 다양했다. 지난해 시니어 사원이 된 맹상철(65)씨는 “매일 출근할 곳이 있어 든든하고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 기회가 주어진다면 계속 근무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60세가 되는 순간 ‘환갑의 덫’에 걸린다. 그 전까지 어떤 일을 했건, 얼마나 숙련된 기술이나 노하우를 쌓았건 상관없다. 이러다 보니 환갑이 넘은 구직자가 찾을 수 있는 일자리는 일용직이거나 ‘3D 업종’이 대부분이다. 올해부터 매년 80만 명이 쏟아지는 환갑 쓰나미에 고령자 고용은 더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충남 아산시 비정규직 근로자 지원센터가 올 2월 발표한 ‘2014년 아산시 공동주택 청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산시 일대 공동주택 청소노동자 385명 중 54%가 65~74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35시간이지만 평균 월급은 98만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과거 경력이나 경험과 상관없이 환갑만 넘으면 용도 폐기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령자 취업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은 해마다 자동으로 오르게 돼 있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다. 개발연대였던 1960~70년대엔 기대수명이 60세 안팎에 불과했다. 정년은 그보다 훨씬 짧았다. 이 때문에 임금을 해마다 올려도 기업에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었다. 연공서열형 호봉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60세 이상 고령자를 계속 고용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박기호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연공서열식 호봉제를 그대로 두고 정년만 연장하기는 어렵다. 임금피크제나 시간선택제 등 유연한 임금 제도가 활성화해야 고령자를 위한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임금피크제 도입은 저조하다. 현재 상시 종사자 100인 이상 사업장 9034곳 가운데 9.4%에 불과하다. 경직된 임금구조 때문에 신규 채용을 줄이다 보니 생산 현장에서도 고령화 비상이 걸렸다. 8만 명에 이르는 울산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 생산라인의 근로자 평균 연령은 47세다. 2003년 38세에서 10년 만에 열 살 가까이 높아진 셈이다. 두 회사에서 환갑을 앞두고 정년퇴직하는 근로자만 연 1000명이 넘는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고령화 시대에 경제 활력이 떨어진다는 건 일하지 않는 인구가 늘어난다는 의미”라며 “나이가 경제활동의 걸림돌이 돼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도 숙련 근로자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2년 전 정년을 맞은 김익형(58)씨는 현재 GS건설의 싱가포르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를 계약직으로 고용한 GS건설은 “한 분야에서 30년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며 “회사에서도 숙련 인력에 대한 고용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60세 이후에도 생산활동 의지가 있고, 생산 능력이 있는 인력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임금구조를 바꿔서 실질적인 정년 연장이 되면 근로자와 기업이 상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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