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이명박 핵심측근..정권 차원에서 자행된 사찰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없다"

이낙연 "국정원 18대 국회의원 사찰, 덮을 수 없는 중대 범죄"

[정현숙 기자]=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의 불법 사찰 대상으로 이름을 올린 전직, 현직 국회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정보공개 청구에 나서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 결의안까지 16일 발의했다.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불법 사찰을 했고, 이렇게 수집된 정보가 현재 국정원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파만파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논란이 더욱 커지는 이유는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유력주자인 박형준 경선 후보가 불법 사찰에 연루된 정황이 뚜렷해지면서다.

당장 더불어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기획관·정무수석 등 요직에 있었던 박형준 국힘당 부산시장 후보가 불법 사찰 문건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불법 사찰은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의 지시였다고 주장했다.

김영춘 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는 지난 10일 논평에서 "박형준 후보가 이명박 대통령 핵심측근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고, 정권 차원에서 자행된 사찰을 박 후보가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형준 후보는 전혀 아는 사실이 없다며 선거를 앞둔 여당의 정치적 공격이라고 반박했다. 국힘당 역시 서울과 부산 보궐선거를 겨냥한 민주당의 정치공세로 몰아붙이고 있다. 박형준 후보를 비롯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모두 친이명박 인사들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18대 국회의원 299명 전원과 법조인, 언론인, 연예인, 시민사회단체 인사 등 1,000여 명의 동향을 파악한 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돈 씀씀이 등 사생활까지 사찰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라며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찰, 국세청, 경찰 등으로부터 정치인 관련 신원정보 등을 파악해 국정원이 관리토록 요청한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오래전 일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덮어놓고 갈 수 없는 중대범죄"라며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겠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등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치 공세라는 국힘당의 주장에 대해 "선거 임박했다고 덮는 것이야말로 정치 공세"라고 반박했다.

한편 KBS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불법 사찰 피해를 입은 환경단체들이 이달 초 국정원에 사찰 자료를 더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들 단체가 정보공개 청구의 근거로 삼은 문건은 지난 2018년 KBS가 단독 입수해 공개한 국정원 사찰 문건이다.

이 요약문건은 이명박 국정원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한 환경단체와 교수 등 민간인들을 상대로 어떻게 불법 사찰을 했는지 9개 항목에 걸쳐 내용이 요약 서술돼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런 사찰 내용을 보고받은 당시 청와대 주요 책임자들의 직함이 특정돼 기술돼 있다는 점이다.

당시 홍보기획관과 정무수석을 지낸 이명박 정부의 실세 박형준 국힘당 부산시장 예비후보도 포함돼 있다. KBS가 공개한 1장짜리 요약문건은 9개 항목으로 내용이 요약되어 있다. 명백한 국정원법 위반으로 이런 내용들이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관이었던 박형준 후보에게 보고되었다는 이야기다.

9개 항목 중 특히 박 후보가 홍보기획관을 했던 시기인 4번과 5번 정무수석을 맡았던 7번 항목이 심각하다. 4대강 사업 반대단체들에 대한 견제 방안으로 '세무조사 압박'을 수단으로 거론하는가 하면, 대표적인 반대 인물 20명을 선정해 정부 내 친분 인사를 붙여 '내부 갈등을 유도'한다고도 돼 있다.

하지만 문건에 등장하는 이명박 정부 인물들(맹형규, 정동기, 박재완 등)은 이런 사실을 전면 부인했고 박형준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박 후보는 KBS 통화에서 국정원 불법 사찰과 관련해 "선거공작이고 불순한 의도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4대강 불법 사찰과 관련해서는 "알지도 못 하고 그런 적도 없다"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반대로 국정원은 2018년 KBS 보도 당시 요약문건의 실체를 인정했다. 당시 국정원은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 자료를 더 공개하는 등 협조하겠다는 뜻도 밝혔다고 한다. 즉 KBS가 공개한 요약문건은 실체가 불분명한 선거공작 문건이 아니라 '확인되고 공인된 문건'이라는 것이다.

이번 환경단체들의 정보공개 청구에 국정원이 응한다면, 이른바 '박형준 보고 파일'의 실체가 더 명확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매체는 이제 공은 국정원으로 넘어간 상태라면서 자료가 공개된다면 그 시기는 3월 초가 유력해 보인다고 했다. 국정원은 공개 여부를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불법 사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끓고 있는 가운데 박지원 국정원장에 대한 이목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해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자신도 불법 사찰 대상이었다면서 지난 일을 돌이켰다. 그는 "역시 2008년도에도 사찰이 있었고, 일부만이 알려졌었다"라며 "국정원의 국내 정치 조작 상황이 잘 보이는데, 실소가 나오는 것은 친정부 인사는 초청 격려하면서, 반대 교수들에 대해서는 동향을 파악하고 복무규정 준수나 교원 평가 점검, 보수 언론을 통한 공격, 국고지원이나 연구비 감사하라고 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저에 대한 왜곡 비방 기자회견이나, 2010년부터 진행된 조선일보와의 소송, 그리고 이미 진행 중이던 광우병 연구 3년 연구비의 급작스런 중단, 이후 관련 연구비 신청에서 배제 (동일 내용으로 연구책임자만 변경해 응모하자 채택) 등등."이라고 불이익 받은 과거사를 밝혔다.

우 교수는 "결국 그 영향을 지금도 받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돌이켜 보면 저토록 국가의 치졸한 행위에 웃음이 나온다"라며 "또 저런 모든 일 세부를 국정원 직원이 직접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국정원 지시에 따라 저런 유치한 작업을 수행한 언론인, 정치인, 각 대학이나 연구비 지원 조직의 관련 당사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지 궁금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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