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민숙 시인의 시집 『둥지는 없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한 권의 책은 ‘여행은 잠재된 천재성을 일깨웠고 삶을 변화 시켜 일대의 전환기를 맞게 하는 기록’으로도 유명하다. 강민숙 시인의 시집 『둥지는 없다』(2019. 실천문학사 간행)에는 個人史(개인사)의 彼岸(피안)과 관련한 생명의 생성과 소멸의 기운이 가득해 아직 행성이 되어 여행중이다.

「나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누군가는 나를 금치산자, 인

격 파탄자로 내몰아도 저기 밤하늘의 별들은 내게 찾아와 빛

으로 피어나고 있다. 내 안의 세계를 보여줄 수 없는 나는 기

호의 창문 열고 불안과 우울의 털실로 옷을 짜고 있다. 별빛

과 달빛 뽑아내어 한 올 한 올 옷을 깁고 있다. 한 땀 한땀 옷

을 만들어 건네 보지만 사람들은 입지 않는다. 보이는 현상이

실제라는 관념의 다리를 끊어 버리고 훌쩍 건너오라고 해도

그들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만 본다. 흔들리는 그들의 눈빛 속

에서 우울을 읽는다. 상징은 꽃이 아니라 기호의 둥지가 아니

던가, 둥지는 없다. 날아갈 곳이 없는 새 한 마리 상징이 날개

인 줄도 모르고 날개 접고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

(둥지는 없다 –보들레르 전문)

장산곶에 사는 매는 사냥을 떠나기 전 바위에 부리를 갈고 살던 둥지를 깨뜨리고 새벽을 직시하며 피안을 더듬듯이 시인의 현실은 그러하였다. 사별과 생명의 탄생처럼 진실한 시를 쓸 수 있겠냐 라는 질문도 담겨있는 시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강민숙 시인의 피안으로 향한 여행의 중요한 의도는 육체적 도덕적 폐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둥지를 파하며 감행한 여행에서 ‘...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는 시인으로서의 자각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남편의 죽음과 아이의 잉태에서 비롯된 신화적 플롯이다. 시적 치유의 기능이 잔혹하다는 것은 인생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을 잇는 참된 시심은 현실의 파토스적 뜨거움을 진정시키는 그 무엇이었다는 점이다.

부제로 ‘보를레르’라고 하였는데, 내일이 없는 오늘을 살았던 보들레르는 말년을 우반신 마비와 실어증을 앓다 죽었으며 파리의 몽마르나스 묘지에 누워있고 그의 시 한 구절은 보이저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 낭송되어 우주를 여행 중이다.

강민숙 시인의 시집 『둥지는 없다』(2019. 실천문학사 간행)는 아직 여행 중이다. ‘...구수하게 곰삭아 질 수 있을까(「곰소항」부분)라고 되물으며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거듭나는 우주를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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