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미 피비갤러리 개인전...유희적이고 교졸스럽다

[서울=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필력에서 우러나오는 운필이 화폭과 정면 맞승부수를 벌이고 있다. 수행적 몸짓이라 하기엔 상투적이라 뭐라 딱히 정의하기 어렵다. 몸과 캔버스가 어우러져 합일하는 과정이라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이명미 작가의 회폭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단번에 그리지만 수많은 세월의 내공이 삭혀져 서툰 듯 경쾌하다. 그래서 작품 자체가 유희적이고 교졸스럽기까지 하다. 좀처럼 다다르기 힘든 경지다.

18일부터 5월 8일까지 삼청동 피비갤러리에서 이영미 개인전 ‘ I am a person’이 개최된다. 작가는 197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회화’라는 장르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밝고 에너지 충만한 작품들을 개진해온 한국현대미술 1세대 여성작가다. 특히 작품 초기부터 자유로운 원색의 사용과 구상과 추상을 아우르는 회화로 한국 화단에서 독자적인 작품의 결을 구축해왔다.

1970년대 한국미술계는 개념미술이 대두되었고 실험적인 전위 미술이 뜨겁게 불타올랐던 시기였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주류에 편승하기 보다는 독특한 회화 의지를 가지고 자신만의 지평을 넓혀 왔다. 한국 현대미술사의 주요한 전환점으로 인식되는 1974년 대구 현대미술제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작가의 초기작은 개념적이고 미니멀한 모습이었으나 이후 컬러풀하고 유쾌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회화로 당시의 금욕적인 분위기에 저항하는 작품들을 전개했다.

작가는 또 캔버스 작업 뿐 아니라,천, 종이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회화형식을 실험하고자 했다. 기존의 미학적 관습에서 벗어나 작업을 일련의 놀이이자 치유 그리고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 갔다.

작가의 작업 소재들은 주변에서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컵, 의자, 꽃, 화분, 동물, 사람 등 일상적이고 쉽게 발견 되어 지는 것들이다. 작가는 각각의 소재에 의미를 담기 보다는 먼저 그 형상의 본질을 포착하고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여 원근법이나 중력을 무시한 평면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또한 형상, 색채 심지어 화면 위에 쓰인 문자언어까지 작가에게는 일종의 유희적인 대상으로서 그 조합 과정에 의미가 더해진다. 이때 가볍고 쉬이 마르면서도 화면에 질감을 부여하는 아크릴 물감의 물성은 화면 위에 부유하는 이미지들이 컬러풀하고 리드미컬하게 자리하게끔 한다. 강렬한 색감과 자유로운 붓질은 자칫 가볍게만 느껴질 수 있는 화면에 무게감과 해방감을 선사하고 있다.

이명미의 회화는 1970년대부터 패치워크나 스티치, 스티커, 피규어 같은 오브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단순한 단어 뿐 아니라 유행가 가사, 시, 때로는 성경구절까지 등장한다. 관람자들의 심상을 두드리는 일종의 감성 코드다. 예를 들어 캔버스 위에 써 내려간 가사는 문장의 뜻을 이해함과 동시에 우리가 알던 멜로디가 떠오르게 만든다. 시각과 청각이라는 공감각적 화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기라는 유희가 치유의 역할을 하면서 즐거운 삶의 에너지원이 됐으면 합니다.”

숨바꼭질을 하듯 발견하는 입체적 재미도 쏠쏠하다. 작가는 모더니즘의 시간을 통과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지만, 선을 긋고, 점을 찍고, 물감을 화면에 스며들게 하거나 흘러내리게 하는 등 다채로운 방법들을 통해 과거 회화의 관습적 형식을 과감하게 벗어 던졌다. 화면 위에 드리워진 이미지와 언어기호 그리고 감각적인 색채의 어우러짐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향하는 자유로운 변주로 자리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갤러리 한 벽면을 가득 메우는 작가의 즉흥적인 드로잉도 선보인다. 작가의 작업세계를 요약해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I am a person’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개별의사람이자 독립된 작가로서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자리다.

이명미작가는 1950년 대구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년 그로리치 화랑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인공갤러리(1987), 동경화랑(1993, 도쿄), 신라갤러리(1996, 1997, 2002, 2018), 대구미술관(2015), 인당미술관(2019), 우손갤러리(2020) 등 다수의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18년 대구미술관의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 전시에서는 김구림, 이건용, 이승택, 이강소 등과 함께 한국의 아방가르드 작가로 소개되었다. 대구현대미술제 ‘ 1970년대, 그 기억의 재생과 해석’(2013), 부산시립미술관 ‘부산국제아트페스티발’(1998), 이탈리아에서 선보인 ’88 한국현대미술전’(1988, 로마), 교토시립미술관 ‘한국현대미술-80년의 정황’(1987) 등 한국현대미술 태동기를 형성했던 아방가르드 미술을 소개하는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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