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돌아왔다. 풍족한 사람들이야 겨울 추위는 걱정할 일도 아니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벌써부터 겨울을 어떻게 버텨내야 할 지 고민이다. 특히 200만 명에 달하는 폐지 줍는 노인들은 이번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전전긍긍이다. 노인 빈곤율이 50%에 가까운 상황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 이들, 폐지 줍는 노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또 이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하려면 어떠한 대안들이 마련돼야 할까. 수도권에 한파주의보가 내린 12일 오전 6시 반. 동도 트기 전 영하 12도의 칼바람이 불었지만 서울 종로구의 작은 고물상 ‘인선사’ 앞에는 폐지를 잔뜩 실은, 크고 작은 손수레 8대가 서 있었다. 손수레 주인은 대부분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몸도 아프지만 아직은 괜찮다고는 하나…”

이들이 한 명씩 손수레를 끌고 들어와 바닥저울에 올려놓자 전광판에 무게가 표시됐다. 폐지 10kg에 대략 1000원꼴. 퇴직 공무원인 남성은 “운동하니까 땀이 나는걸!”이라며 씩씩하게 고물상을 나섰다. 큰 수레, 작은 수레를 가져온 60대 여성은 “대학생 조카와 같이 모은 거야. 난 병자야. 몸이 아파. 그래도 사정이 있으니까…”라며 말을 흐리다가 “이제 또 일 나가야지”라며 총총 자리를 떴다. 자원재활용연대 추산에 따르면 전국의 폐지수집 노인은 200만 명에 달한다.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폐지수집 노인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중 일일 소득이 하루 몇 천원에 그치는 노인들이 50~60%를 넘는다. 최근 폐지 가격이 다소 상승하긴 했지만 이들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지난해 노인복지연구 통권 71호에 실린 논문 '폐지수집 노인의 생활실태와 노인복지 정책적 대안'에 따르면 폐지수집 노인의 월평균 수입은 50만원에도 이르지 못했다. 김해지역 폐지수집노인 16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월 30만 원 미만 수입자가 70명(43%), 30만 원 이상에서 50만 원 미만 수입자가 61명(37.4%), 50만 원 이상 수입자가 32명(19.6%)이었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2016년 기준) 65만원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인선사를 찾는 사람은 하루에 30명 안팎. 최기봉 대표(58)는 “겨울철에는 건강한 분들은 오전 6∼7시에, 나이 드신 분들은 9∼10시에 주로 오신다”고 말했다. 최 대표가 말하는 사이 허리가 잔뜩 굽은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인선사 앞을 지나쳤다. “아이고, 어디까지 가셔!”라는 최 대표의 외침에 고개를 든 할머니는 그제야 정신이 든다는 듯 인선사로 들어왔다. 수레까지 38kg을 끌고 온 할머니는 손에 2700원을 쥐었다. 추위에 곱은 손가락이 자꾸 동전을 떨어뜨렸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추운데 왜 나오셨느냐”는 질문에 “다리가 저려”라면서 천천히 동전을 주웠다.

폐지 줍는 ‘여성·홀몸·저소득’ 노인,. 대부분 7~80대

서울에서 이들처럼 폐지를 줍는 만 65세 이상은 2417명이다. 서울시가 9월 한 달간 25개 자치구 재활용품 수집업체를 방문해 전수조사한 결과다. 17개 광역 시도 가운데 폐지 수집 노인의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적으로는 약 175만 명으로 추정된다. 폐지수집 노인들은 높은 수준의 우울증 증상도 보였다. '단축형 노인 우울증 척도(SGDS-K)'를 사용해 폐지수집 노인 199명의 우울증 정도를 테스트한 결과 이들의 우울정도는 평균 7.482를 기록했다. 전체 평균은 위험 수준인 8점보다 낮았지만, 절반 이상이 위험수준에 해당하는 8점 이상을 나타냈다. 199명 중 101명이다. 전수조사 결과 폐지를 줍는 노인의 상당수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 명 가운데 한 명(35.2%)은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차상위계층이다. 절반가량은 홀몸노인이다. 여성 비율이 남성의 두 배였다. 81세 이상이 39.4%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하지만 주 5일 이상 폐지를 줍는다는 응답자는 48.9%나 됐다.

대부분(82.3%)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폐지를 수집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폐지를 팔아 버는 돈은 많지 않다. 한 달에 5만 원 미만이라는 응답이 28.8%였다. 대부분 식비(34.3%)와 의료비(30.8%)로 지출한다. 남편이 건강이 나빠 일하지 못한다는 77세 여성은 “이거 벌어서 약값은 턱도 없다. 먹고 싶은 반찬이나마 사먹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폐지수집 노인들의 우울 정도는 나이, 성별, 주거형태, 건강, 가까운 친구나 이웃의 수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70세 미만의 경우 우울 정도는 평균 8.79로 위험 수준이었던 반면, 70세 이상은 평균 6.93으로 안전 수준이었다. 남성의 경우 평균 우울 정도는 6.56인 반면, 여성의 경우 평균 7.94로 비교적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독거노인의 경우 우울 정도는 평균 8.15로 위험 수준이며, 비독거노인의 경우 평균 6.69로 안전 수준이었다.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가 없는 노인의 우울 정도는 평균 8.31, 1~2명의 이웃이나 친구가 있는 노인의 우울정도는 평균 8.09, 3명 이상의 이웃과 친구가 있는 노인의 경우는 우울정도가 평균 5.77에 달했다.

간단히 봐서는 안되는 일회성 지원보다 장기적 돌봄 절실

하지만 이들을 폐지 수집 대신 규칙적인 일자리로 전환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서울시의 판단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본 응답자는 27.9%에 불과했다.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수당이 낮다(2.9%)거나 기초연금을 받지 않아 신청자격이 없다(2.2%)보다 기타(89.4%)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문제는 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정부의 지원은 한정돼 있다는 데 있다. 기초노령연금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으로 삶을 지탱해 갈 수는 있지만 부양의문제에 가로막혀 혜택을 받고 있는 노인이 적다. 정부가 지난 8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비수급빈곤층의 규모는 93만 명에 달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더라도 상황은 열악하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7.7%(통계청, 2016년 기준)로 OECD 평균 노인빈곤율 12.1%보다 한참 높다. 이 때문인지 노인자살률도 OECD 평균보다 3배 높은 10만 명당 55명에 달한다. 김현정 서울시 복지혁신팀장은 “날씨나 건강에 따라 자유롭게 일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폐지 줍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현금으로 바로 교환되기 때문에 폐지 수집을 선호하기도 한다. 소득원이 외부에 드러나면 수급자 지위가 박탈될 것을 우려해서다. 건강이 좋지 않더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사지육신 멀쩡한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응답자도 많았다.

서울시는 이들에게 단순히 현금을 지원하기보다 사회보장 체계에 깊숙이 끌어들일 방안을 찾고 있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사업과 연계해 복지 플래너나 방문 간호사들이 이들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것이 핵심이다. 민간기업과 협력해 수익금 매칭 사업을 하거나 야광조끼 등 안전물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연금제도도 열악하다. 선진국의 경우 은퇴 후에도 안정적 연금 수급을 통해 은퇴 전 수준의 소득이 보장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제도는 급여액이 적어 소득보장 안전망 역할을 하지 못 한다. 2017년 국민연금 월평균 수령금액은 33만 3천원으로 1인 가구 최저생계비 65만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노인들, 특히 폐지수집 노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요구된다. 우선은 폐지수집 활동을 새로운 일자리 형태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폐지수집 활동의 거점지역(복지관 등)을 정해두고 공공근로 방식으로 운영해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 주면, 폐지수집 노인의 자존감 향상은 물론 이들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도 개선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환중 시 복지정책과장은 “최소한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우선이다. 주거나 의료 등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생기면 먼저 찾아낼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유대를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기존 노인 일자리 사업을 탄력적이고 능동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논문에 따르면 폐지수집 노인들은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에 부정적이었다. 노인 일자리 참여 의사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199명 중 161명(80.7%)이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주된 이유는 시간적·활동적 규제(규정된 활동)에 따른 심리적 부담감이었다. 이 때문에 지금의 노인 일자리 근로형태를 근로시간 기준이 아닌 산출물 기준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노인 일자리 근로는 보통 월 평균 20만원 지급 조건으로 1일 4시간, 주2~3회 혹은 월 12회가 일반적인 형태다. 부양의무제 폐지도 거론된다. 부양의무제는 본인의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더라도 가족의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당사자를 기초수급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지만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부양의무제만 폐지되더라도 90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국민기초생활 수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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