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적 자유는 ‘법치’가 아니라 그 ‘법치’에 항거하는 ‘민중의 힘’을 뜻한다

                                                                            ‘법치’를 ‘자유’와 ‘민주’로 오해한 진중권과 윤석열

진중권은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법치를 파괴한다. 사회나 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제약은 ‘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고전적 자유주의의 신념”이며, “다수의 폭정을 막으려면 ‘법의 지배’ 자유주의 원칙으로 견제해야 한다”, “운동권의 낡은 ‘인민민주주의’ 관념은 자유주의 원칙과 충돌”하는 것이라고 썼다.(중앙일보, 2021.3.10.)

여기서 진중권은 ‘자유’를 ‘법의 지배’로 이해했고, 그 ‘자유’와 ‘법치’는 ‘인민민주주의’와 충돌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자유’는 ‘법치’가 아니라 ‘민중의 힘’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중권이 말하는 ‘법치’란 그 주체가 민중이 아니고, ‘법을 실천하는 자(판사 혹은 검사 등)’와 그 ‘법치’의 실천을 뒷받침하는 권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법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억압’이 있을 뿐, ‘자유’가 없다. 마치 방금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윤석열이 ‘법치’의 이름으로 준사법 검찰조직의 권력을 농단한 것과 같다. 한편으로 선택적 집중 수사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 ‘덮고 뭉개기’ 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신이 아닌 부족한 사람이 ‘법치’ 운운하고 권력 행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윤석열이 만인 앞에 몸소 증명한 것이다. 그는 사직하는 날까지도 그 불평등한 권력의 행사를 ‘법치’의 이름으로 미화했고, 진중권은 그 윤석열의 ‘법치’야말로 ‘자유’와 ‘민주주의’인 것으로 옹호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중의 힘’으로서의 ‘고전적 민주’

진중권 (사진출처: 중앙일보, 2021.3.10)
진중권 (사진출처: 중앙일보, 2021.3.10)

진중권이 말하는 것과 반대로 서양의 고전기 아테네에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중의 힘’이 있었을 뿐이다. 흔히 ‘민주주의’로 번역하는 영어 ‘데모크라시(democracy)’는 그리스어로 ‘민중의 힘(democratia)’이다, 서로 비슷한 것 같은데, 진중권이 말하는 것처럼, 이것을 ‘법치’인 것으로 확대 해석하게 되면, 정반대의 뜻이 되어버린다.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는 ‘민중(데모스)’과 ‘힘(크라티아)’의 합성어로서, 그 핵심은 권력을 누가 행사하느냐 하는 데 있다. ‘권력을 민중이 행사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것은 진중권이 아니라고 부인한 ‘인민민주주의’와 같은 맥락에 있고, 오히려 ‘법치’와 반대가 된다. 전자는 권력의 주체가 ‘인민(피플 people)’, 즉 ‘민중(데모스)’이라는 말이고, 후자의 ‘법치’는 그 권력을 ‘민중’이 아니라 ‘법의 이름으로 민중을 지배 혹은 억압하는 자’가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법치’를 지지하는 진중권은 이 ‘민주’ 즉 ‘민중의 힘’을 완전히 전도했다. “‘법의 지배’ 원칙으로 “다수의 폭정을 막고 견제해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중권은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권력 구조가 ‘법’의 이름으로 ‘소수’가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임을 백일하에 증명했다. 그런데 ‘다수’에 의한 권력 행사를 ‘폭정’으로 규정하고 그 대신 ‘법치’를 지향하는 정치체제는 ‘민주’가 아니라 ‘과두정치’이다. 진중권은 ‘과두정치’를 ‘민주정치’인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란 아무 데나 다 들어가는 약방의 감초가 아니다. 그 ‘민주’의 주체는 ‘법’이나 ‘소수’가 아니라 철저하게 ‘민중’이 중심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법의 지배’와 자유주의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

진중권은 “다수의 폭정을 막으려면 ‘법의 지배’, 자유주의 원칙으로 견제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진중권은 ‘법의 지배’를 ‘자유주의’와 같은 맥락에 두었으나, 이것은 사물의 이치를 완전히 전도한 것이다. ‘법’의 이름이든 그 무엇이건 ‘지배’의 권력은 ‘민중의 힘’ 즉 ‘민주(民主)’를 배반한다. 그 권력 행사의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소수이고 후자는 다수의 ‘민(民)’이 중심에 있는 것이다.

진중권 자신도 법은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법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왜곡”한다고 토로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그 ‘법의 왜곡’을 ‘민주당 의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윤석열에게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이 만드는 해괴한 법안들, 법무부 장관들의 초법적 행태들, 자신들만 법의 예외로 두겠다는 검수완박. 이 모두 법의 왜곡”이라는 것이고, “운동권 시절에 형성된 낡은 인민민주주의 관념이 ‘법의 지배’라는 자유주의 원칙과 충돌”하는 것이라고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윤석열이 ‘법의 이름’으로 저지른 상식을 벗어난 검찰 권력의 불평등한 행사도 ‘자유의 원칙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 아닌가 하는 데 대한 반성은 전혀 없다. 결국 진중권은 그 ‘법치’의 개념을 자신이 옹호하는 세력을 비호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진중권의 애증(愛憎)은 편협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 ‘뿐, 그 자체로서 특별하거나 예외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법치‘를 ’자유주의‘와 동일시한 것은 무지의 극치를 노정한다. 진중권의 지론과는 반대로, ’자유‘는 ’법치‘를 포함한 그 어떤 ’지배‘로부터가 아니라 그 ’지배‘의 권력으로부터 탈피함으로써 비로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유‘는 온갖 형태의 권력의 지배를 거부하는 ’민중의 힘‘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

진중권은 “말이 ‘인민 권력’이지 히틀러는 43% 득표로 집권했다”, “국민 대다수가 고작 41%의 득표로 집권한 대통령 밑에서 ‘토착왜구’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된다”라고 하고, “자유 없는 민주주의의 문제는 이 43%의 뜻을 ‘인민의 일반의지’와 동일시한다는 데에 있다. 거기에 반대하면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힌다”고 한다. 그러니 진중권은 43%, 41% 같은 것이 아니라, 윤석열에 의한 ‘법치’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43%나 41%가 아닌 개인 윤석열의 ‘법치’ 말이다. 그러나 보통 한 사람에 의한 지배는 민주나 자유라고 하지 않고 ‘독재’라고 한다. ‘법치’를 표방한 한 개인의 독재 체제.

고전적 ‘자유’는 진중권이 이해한 바와는 반대로, 개인의 독재를 불식하면서 나타났다.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가 정초한 ‘민중의 힘(데모크라티아)’ 체제는 직전 약 50년간 유지되었던 페이시스트라토스 가문의 독재를 종식시킴으로써 가능했다. 고전적 민주, ‘민중의 힘’은 독재로부터의 탈피, 즉 자유(엘레브테리아)를 뜻하는 것이었다.
고전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그리스 민주정치는 자유를 핵심으로 하고, 그것은 권력의 억압에 대한 항거를 뜻한다. 딱 200년 전인 1821년 그리스가 터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시작할 때, 고명한 민족시인 솔로모스는 ‘자유를 위한 찬가’를 지었고, 그것이 지금 그리스 국가(國歌)로 불리고 있다. 그 그리스의 자유는 ‘민중의 힘’, 즉 민중이 주체가 되어 직접 투쟁하고 피를 흘려서 쟁취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유는 민중의 피를 먹고 자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민중이 수동적으로 지배의 대상이 되는 ‘법치’ 같은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스의 ‘민중의 힘’(데모크라티아)‘은 안팎으로 권력이나 외세의 지배, 억압으로부터의 탈피를 뜻할 뿐, ‘법치’가 아니다. 진중권 자신도 알고 있듯이, ‘법치’란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고, 여러 가지로 왜곡되어, 아전인수로 이용될 수 있는 소지를 가진 것이다. 자신의 가족 비리를 덮어 뭉개버린 윤석열이 ‘법치’ 운운하는 것이 그 명백한 사례이다. 고전적 ‘민중의 힘’과 ‘자유’는, 입으로만 ‘민주’ ‘자유’ 운운하며, 실제로 자의적 ‘법치’를 지향하는 윤석열과는 다른 맥락에 있다. ‘검수완박’의 법제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면, 윤석열의 ‘법치’도 그와 같은 맥락에 있어 피장파장이거나, 더 비열한 상황으로 치달을 전망에 있다. 윤석열 ‘법치’는 그 법의 권력을 행사하는 소수가 핵심에 있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이른바 ‘빨갱이’ 틀(프레임)을 쒸우기 위해 ‘인민’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일부러 골라썼는지 모르겠으나, 그 ‘민중’ ‘인민’ 그 무엇으로 표현하든, 진중권이 말하는 ‘법치’의 윤석열이 아니라 ‘다수’가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그 함의는 마찬가지이다. ‘민주’, ‘민중의 힘’과 자유는 독재정치와 반대되는 개념일 뿐, 반드시 ‘법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민중의 힘’ 체제에서는 소수의 지배체제에서 벗어난 ‘데모스(인민, 민중)’가 그 권력(크라티아)을 행사한다. 일본 식민지배와 독재체제 전통이 근 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현 상황에서, 현 정부도 그 권력의 지배가 낳는 부작용의 틀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비민주적으로 집중된 권력이 낳은 부작용은 여러 가지 형태의 비리로 노출되고 있다. 그러나 전 정권에서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적어도 현정권에서는 노출이라도 되고 있는 것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는 부산 해운대 LCT 특혜분양을 위시하여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견제되지 공권력은 불가피하게 속물근성을 가진 인간 사회를 부정과 비리로 가득하게 채우게 된다.

                                                                            진중권이 거꾸로 이해한 아테네 민주정치의 실상

미학자인 진중권은 그리스 고전기 사회 전공자가 아니다. 그래서 그 이해의 정도가 참담하고 사실의 왜곡은 그 끝을 가늠할 수가 없다. “아테네 민주정은 노예·여성·식민지 주민을 배제했다. 비범한 개인을 도편 투표로 추방하고,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선동당한 대중의 요구로 무고한 장군 8명을 처형했다. 아테네 민주정이 시민혁명의 모델이 되지 못한 것은 중우정치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었다. 민주정의 이 고질병은 자유주의라는 견제장치가 없어 발생한 현상이다”라고 거침없이 적은 것이 그러하다.

이 몇 줄 안 되는 말 속에 너무 많은 오해가 암 덩어리같이 한꺼번에 집약되어 있어서, 도대체 어떻게 이것을 풀어가야 하나 암담할 지경이다. 그러나 가능한 한 간략하게 핵심만 몇 자 적도록 한다.

첫째, 진중권이 ‘자유주의라는 견제장치’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오류이다. 그는 ‘자유’ 개념 의 핵심 자체를 전도했다. ‘자유’란 견제와 무관하게 그 견제를 탈피하는 것이다. 진중권이 ‘자유’를 ‘견제’로 파악할 때, 그 견제의 주체는 누가 되는 것일까? 앞뒤 맥락으로 짐작하건대, 아마도 진중권은 입으로 ‘자유’와 ‘민주’를 표방하는 윤석열 같은 이를 염두에 두었을 것 같다. 이것은 ‘자유’에 대한 ‘넌센스(잘못된 이해)’이자 큰 실례, 모독이다.

도펀추방제도나 ‘장군 8명을 처형한 사건’은 ‘민중의 힘’ 체제에서 그 민중의 힘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도편추방제도는 지금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약 100년 간 10명 안팎 정도를 추방한 것인데, 추방된 사람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위정자가 권력을 잘못 행사하는 경우, 명실공히 ‘민중’이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런 상항은 오늘 우리의 현실과는 반대이다. 헌법에만 ‘국민이 모든 권력의 주권자’라고 적었을 뿐, 아무리 판사가 엉터리 재판을 하고 검찰이 가짜 증거를 조작해내도 처벌하지 못하는 우리의 ‘왜곡된 민주’와는 판이하다.

다수나 소수나 가릴 것 없이 인간은 잘못 판단할 수 있다. 다수가 잘못 판단하니 소수에게 권력을 넘긴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핵심은 잘잘못이 아니라 누가 권력을 행사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중권의 견해는 반대쪽에 있다. 그는 ‘비범한 자’와 ‘폭정의 다수’로 사람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범한 자’의 부류에는 아마도 진중권 자신이나 윤석열이 들어가는 듯 하다. 진중권이 그 ‘비범’의 기준을 어디에 설정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나, 바로 이 같은 진중권의 인간 구분 틀(프레임)로부터 도출되어야 하는 결론은, 역설적으로, 비범’을 핑계로 ‘다수의 보통사람’들을 멋대로 지배하도록 허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치는 아주 간단하다. ‘비범’한 윤석열이 불공정한 선택적 집중수사로 검찰권력을 다시 농단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 “아테네 민주정치는 노예·여성·식민지 주민을 배제했다’고 하는 진중권의 몰이해가 증식되지 않도록 여기서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배제’했다고 하는데, 누가 무엇으로부터 배제한 것인지에 대해 진중권은 개념이 없는 듯하다. 무엇보다 아테네 민주정치는 ‘배제’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무엇으로부터의 ‘배제’가 아니라 민중의 ‘협조’에 의해서 아테네 민주정치는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시민권’의 개념은 누구를 무엇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필요에 부응하고 협조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자격이었다. 그 자격은 오늘 같은 국가 정부가 아니라 각 집안에서 부여된다. 각 집안에서 적법한 자식으로 인정이 되면, 그 명단을 촌주에게 제출하고, 그 촌주는 폴리스(도시국가)에 제출한다. 그 폴리스의 중심에는 전체 민중의 모임인 민회가 있을 뿐이다.

각 집안에서 적자의 명단을 제출하는 뜻은 전쟁이나 축제 등 공동체가 필요로 할 때는 생명과 자금의 부담을 지겠다는 보증이다. 이렇게 유사시에 부담을 지는 이들은 평소에 면세가 된다. 그런 부담을 지지 않는 이방인들은 평소에 감사의 뜻으로 이방인세(稅), 혹은 거류외인세(稅)를 부담한다. 다시 말하면, 폴리스의 모든 구성원들은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자기 처지와 능력에 따라서 마땅하게 ‘협조’를 함으로써, 폴리스(도시국가) 공동체가 운영되었다.

‘민중의 힘’이 중심이 되는 고전기 민주정치에서는 우리 300명 국회 같은 것으로 500인 의회가 아테네에 있었으나, 그 의회는 결정권이 없었다. 다만 미리 예비 안건으로 민회에 넘기는 역할을 했고, 모든 중요한 사안은 민회에서 민중이 결정했다. 이것이 ‘민중의 힘’으로 이루어진 고전기 민주정치이다. 말로만 민주정치일 뿐, 국민에게 개헌발안권도 주려고 하지 않는 우리네 국회와는 참으로 판이하다.

더구나 여성도 시민이었다. 군역의 부담을 지지 않았으나 재산권을 행사했고, 또 제식 등 폴리스의 여러 가지 공적 행사에도 참가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정치체제(politeia)’의 개념이 오늘날 근대국가보다 훨씬 광범했고, 우리가 공법의 영역으로 이해하는 것도 거의 사법의 영역에 속해있었다. 그만큼 근대 국가 정부 권력 같은 것이 고전기 폴리스에서는 없었다. 또 우리가 참정권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고대 아테네에서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 부담의 개념이 강했고, 그 부담은 집안 전체가 감당하는 것이었다. 전쟁터에 나갈 전사는 생리적 특성으로 인해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니, 전쟁시 여성보다 남성의 희생이 더 컸던 것이라 이해하면 되겠다.

흔히 소크라테스의 처형은 ‘다수의 폭정’ 중우정치의 상징으로 언급되곤 하지만, 이것은 오해이다. 형량은 배심재판관이 아니라 소송당사자인 원고가 매긴 것이었기 때문이다. 501명의 배심재판관은 어떤 경우에도 형량을 결정할 수가 없다. 재판관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의 형량으로 의견을 수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많은 수의 재판관은 두 개 형량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할 뿐이고, 그 두 개 형량은 원고와 피고가 각각 제시하는 것이었다. 당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으니 벌금만 조금 내겠다고 했고, 반대인 원고 측에서는 사형을 제안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오늘 같은 공법의 개념이 아니라 사적 소송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소크라테스는 그저 사적 형식의 소송에서 졌기 때문에, 그리고 원고가 사형을 형량으로 제안했기 때문에 사형된 것일 뿐, 그 죽음은 근대국가 권력이 규정하는 범죄자 같은 맥락이 아니었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처형을 두고 당시 법정의 배심재판관들을 중우정치로 매도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만일 당시 501명의 배심재판관이 아니라, 요즘 1명 혹은 3명의 법관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피고에게 그 소수 법관들이 ‘아, 당신은 현명한 소크라테스이로군요’하고 하면서 무죄를 선고했을까? 아니다. 오히려 이 소수의 법관들은, 오늘 우리 현실이 증명하듯이, 권력에 굴하고 돈에 매수되어 더 왜곡된 판결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아테네 배심재판관은 501명의 다수였으므로, 뇌물과 권력에 의한 왜곡된 판결은 하지 않았다. 다수결의 장점은 적어도 소수의 권력이 빠지기 쉬운 부패 비리의 온상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진중권은 “아테네 민주정이 시민혁명의 모델이 되지 못한 것은 중우정치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라고 하고, 또 그 시민혁명의 모델이 아테네 민주정이 아니라 로마 공화정이었다고 적었다. ‘중우’를 논하자면, ‘다수’뿐 아니라 ‘소수’도 마찬가지이다. 소수 법관이 하는 재판도 엉망이고 소수 검찰이 하는 수사도 엉망이기 때문이다. 특히 OECD국가 증 사법신뢰도가 꼴찌 바닥을 헤매는 대한민국에서 그러하다. 좀더 웃기는 것은 진중권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한 그리스 민주정치, 로마 공화정에 대한 상식을 프랑스 시민혁명을 일으키는 이들이 가지고 있었다고 본 것이다. 이 같이 어이없이 현학적인 진중권의 탁상공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를 보아 논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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