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에서 ‘부장회의’의 권위는 막강하다. 편집(보도)국장 주재 아래 매일매일 신문방송의 제작 방향을 결정하며 회사에 중요한 현안이 발생했을 때 종종 그 방향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장이나 편집국장과 대등하게 맞서는 막강한 노조도 부장회의의 결정만은 존중(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물론 정상 언론에 해당되는 말이다. 족벌 사주의 사적 이익에 복무하고 기껏 공적인 역할이라고 해 봐야 수구 기득권세력의 기획선전기구에 불과한 조중동(과 그 아류)에게는 부장회의가 별 의미가 없다. 이런 사이비 언론사에는 사주 이하 말단 기자까지 일렬종대의 명령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박범계 법무장관이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대검찰청 부장회의를 개최하여 김 아무개의 혐의 유무 그리고 기소 가능성을 심의하기 바란다.”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나는 검찰조직의 원리와 작동 방식에 대해 잘 모르지만 대검 부장회의라는 것의 위상이나 권위도 대략 언론사 부장회의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후배들의 무리한 집단행동에 제동을 걸기도 하지만 때때로 상층부의 부당한 결정이나 압력에 저항해 싸우는 후배들에게 기꺼이 힘을 보태는, 즉 조직의 최후의 양심이요, 중추 역할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박 장관의 어제 수사지휘권 발동이 비록 쾌도난마의 시원한 맛은 없지만, 검찰이란 조직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고 개혁할 자세와 의지가 있는지 만천하에 확실히 공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부여한 것이라고 본다.

박 장관은 “검찰의 직접수사와 관련하여 그간의 잘못된 수사 관행과 사건 처리과정에서 불거진 자의적 사건배당, 그리고 비합리적 의사결정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자신이 사건 배당을 원 상태로 돌리거나 기소할 것을 지시하지 않고 이를 대검 부장회의에 붙여 “감찰부장 등으로부터 사안 설명 및 의견을 청취하고 충분한 토론과정을 거치기 바란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대검 부장회의가 수 개월에 걸쳐 이 사건을 조사한 끝에 6천여 쪽의 조사기록과 함께 기소의견을 낸 임은정 검사와 윤석열에 의해 사건을 넘겨받은 지 불과 3일 만에 ‘증거불충분’이라며 무혐의 처분한 허정수 검사로부터 각각 ‘(충실히) 사안 설명 및 의견을 청취하고 충분한 토론과정‘을 거치기만 한다면 그 결론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대검 부장검사들이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어 ‘내 식구 감싸기’의 오명을 벗어던질 가능성이 그다지 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누가 아는가, 검찰이 더 이상 타락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의로운 검사가 대검에 몇 명이라도 남아 있을지. 그래서 또 마지막 희망을 품는다.

언론사 부장회의에 ‘정론직필’의 운명이 달려 있듯이 대검 부장회의에는 ‘파사현정’의 운명이 달려 있다. (파사현정破邪顯正:‘악한 것을 깨트리고 옳은 것을 세운다’는 의미로 검사들이 가장 사랑하는 단어)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