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란 무엇인가?(2회)

《덕산재(德山齋)》 거실에는 도올(檮杌) 김용옥(金容沃 : 1948~) 박사의 휘호(揮毫) 한 점이 걸려 있습니다. 1991년 10월 3일 원불교 여의도교당 봉불식의 강연으로 원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저에게 써준 휘호이지요.

「神이 세계를 창조했다면, 이 세계는 신을 창조한다. 창조는 한 시절에 완결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며칠 후 4월 28일이 원불교 대각개교절입니다. 그 도올 김용옥 선생이 4월 16일 자, 원불교신문에 <원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기고(寄稿)하신 글이 실려 있습니다. 원불교도가 아닌 학자가 제 3자의 눈으로 원불교를 바라본 객관적인 원불교를 《덕화만발》에서 연 3회에 걸쳐 게재(揭載)합니다.

<원불교란 무엇인가?(2회)>

【그의 각(覺)이 도달한 곳은 주변 마을사람들의 삶의 개선이었다. 그는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써 그의 각(覺)을 보여주었다. 예수는 선지자는 고향에서 배척을 받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박중빈은 고향에서 깨달았고 고향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삶의 운동을 펼쳤다. 그것은 종단이 아닌 생활조합이었고, 바다를 막아 3만여 평의 농토를 만드는 방언공사였다. 이러한 개척공사를 무에서 창출해낼 수 있는 정신적 기초가 바로 그의 각(覺)이었다.

예수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4개의 예수 전기 자료인 복음서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마태·마가·누가·요한은 한 개인사가의 이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속한 공동체, 즉 초기 크리스천공동체를 대변한다. 마태복음은 마태공동체가 이해한 예수의 모습이고, 마가복음은 마가공동체가 이해한 예수의 모습이다. 이들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들의 명백한 공통점은 예수가 이미 그리스도화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화”라는 것은 예수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즉 재림의 주인공이라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라는 희랍어의 히브리말 표현이 메시아고, 그것은 곧 구세주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다윗왕국의 재건을 의미한다. 예수는 갈릴리의 평범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다윗 혈통의 사람으로서 다윗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것으로 시작됐다.

그의 십자가의 형벌사건은 부활사건으로 둔갑되었다. 그리고 부활은 승천을, 승천은 재림을, 재림은 이 세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학 화 되었다. 복음서작가들에게 예수는 이적을 행하는 메시아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서 보여준 행적을 그리는 데만 그들의 관심이 쏠려있었기 때문에 인간 예수는 그 배면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는 복음서에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는 결코 고향에서 배척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갈릴리 민중의 한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럼에도 기자들이 그가 배척을 받은 것처럼 쓰는 것은 예수를 메시아로서 보통 사람들과 분리시켜야만 했기에 그렇게 조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의 메시아적 관심(케리그마) 때문에 예수라는 역사성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박중빈의 경우는, 최수운의 『동경대전』도 같은 상황이지만, 예수와 복음서기자가 일치하는 위대한 사실적 측면이 있다. 즉 박중빈의 복음서를 박중빈 자신이 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불교전서』의 제일 앞머리에 위치한 『정전(正典)』이라는 것이다. 『정전』은 여타 『대종경』이나 법어와는 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원불교의 핵은 바로 이 『정전』에 다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박중빈은 1943년 열반에 들기 석 달 전에 이 『정전』(당시 『불교정전』)을 친감하고 발행까지 완수한다. “나의 일생포부와 경륜이 그 대요는 이 한 권에 거의 표현되어 있다.” 이전에 나는 정산(鼎山) 종사를 매우 좋아했다. 아무래도 학문의 정도를 밟아온 나로서는 송규(宋奎) 선생의 높은 학식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요즈음 정산 화 된 소태산의 언어를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소태산과 정산의 관계는 예수와 바울의 관계와 유사한 점이 있다. 바울은 종말론적 관심 속에서 예수를 크게 왜곡했다. 바울의 예수는 갈릴리 흙바람 속의 예수가 아닌 허구적 메시아이다. 그러나 정산은 소태산을 직접 만났고 그의 가르침을 호말도 왜곡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태산의 투박스러움이 정산의 언어 속에서 세련 화 되고 고차원 화된 측면이 있다. 정산을 걷어내고 박중빈을 만날 길이 있는가? 이러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전적이 바로 초기 교서들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진실로 인간 박중빈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준 소박한 문장이 바로 『조선불교혁신론』이다.

그가 대각한 후 4년 만에(3·1독립만세혁명 1년 후) 변산 월명암에서 그 초안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나도 인간 박중빈을 느끼기 위해 월명암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원불교 교도라면 누구든지 교전 첫머리에 있는 “일원상의 진리”를 줄줄 외운다. 흠잡을 데 없는 언어이지만, 그것을 아무리 줄줄 외운다 한들 레토릭의 수준에 머물 뿐,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떻습니까? 역시 한국 최고의 지성이라는 분이 우리 원불교의 소태산 부처님의 위대성을 2회에서 여실히 드러내는 것 같아 가슴이 점차 뜨거워지는 것을 금치 못하겠네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4월 2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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