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이 4일, 대국민 사과를 하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 ⓒ연합뉴스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이 4일, 대국민 사과를 하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뉴스프리존]이동근 기자=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이 4일, '불가리스' 사태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고 선언했다. 이번 사과를 두고 남양유업이 완전히 '환골탈태'(換骨奪胎)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모이고 있다.

이번 홍 회장의 사과는 소위 '불가리스' 사태에 따른 것이다. 이 사태는 지난 달 13일, 서울 중구 LW컨벤션 센터에서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을 열고 "불가리스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억제효과 연구에서 77.78%의 저감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힘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효과는 실제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단순히 바이러스가 활동 중인 세포배지에 불가리스를 넣으면 바이러스의 활동량이 크게 억제된다는 것이었고, 실제로 사람이 해당 물질을 먹어서 항바이러스 효과를 가지는 건 완전 별개의 이야기였다.

결국 질병관리청에서는 "사람 대상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고 비난했고, 과대광고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급기야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남양유업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영업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사실 이번 보도자료 배포에는 남양유업측이 억울한 면이 없진 않았다. 실제로 남양유업측이 배포한 보도자료로 알려진 것은 심포지엄 자료 전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즉, 해석이 완전히 받아쓰는 기자에게 달려 있었다.

물론, 오해할만한 내용으로 적혀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인체실험이 아닌 '불가리스 발효유 제품의 실험실 실험 결과'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이 같은 세포실험 단계의 발표는 흔하게 이뤄지는 일이기도 하다.

남양유업이 실제로 배포한 보도자료. '실험실 실험 결과'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 ⓒ연합뉴스
남양유업이 실제로 배포한 보도자료. '실험실 실험 결과'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이 소동이 크게 확산 된 것은 남양유업의 기존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업계의 시선이다. 그동안 남양유업은 소비자들에게 매우 안좋은 이미지를 주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 2019년 남양 일가 외손녀 마약 투약 사건 등이다.

당시 남양유업의 행보는 '악수'(惡手)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 당시 남양유업 김웅 대표와 본부장급 임원 등 10여 명이 고개를 숙였지만, 홍 회장이 앞에 나서지는 않았다. 홍 회장은 2019년 외손녀인 황하나씨가 마약 투약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도 사과문으로 대신했다.

하지만, 이번 사과는 조금 달랐다. 홍 회장이 직접 서울 논현동 본사 3층 대강당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더 나아가, "2013년 회사의 밀어내기 사건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외조카 황하나 사건, 지난해 발생한 온라인 댓글 등 논란들이 생겼을 때 회장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서 사과드리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많이 부족했다"며 과거 일까지 언급했다. 홍 회장은 약 5분간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감정에 북받친 듯 여러 차례 울먹였고, 입장문을 다 읽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났다. 질의응답도 받지 않았다.

이같은 홍 회장의 행보가 아직은 남양유업이라는 회사를 얼마나 바꿀지는 알기 어렵다. 물론 그동안 남양유업은 여러 차례 변화를 시도했고, 사실상 실패했다. 2014년에는 31년 동안 남양유업에서 근무했던 이원구 신임 대표이사가 취임하며 '착한 경영'을 회사의 새로운 미래가치로 선정하고, 한국복지협의회와 협약을 맺고 매달 2000박스 규모의 우유 음료를 결식 아동과 독거노인에게 전달하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에서 일단 큰 결심을 한 모습을 보였고, 과거 일까지 언급하며 사죄의 뜻을 표했다. 아직은 등 돌린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홍 회장의 사퇴는 남양유업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말이다.

다만 변하는 모습은 잘못한 일 이상으로 큰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의 눈에는 10번의 잘한 일 보다 1번의 잘못한 일이 더 눈에 띄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남양유업도 '잘한 일'은 있다. 남양유업은 3월부터 ESG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플라스틱 사용량 감축에 나섰으며, 2050년까지 모든 제품에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양유업이 농협하나로유통과 만든 '덕분우유'는 판매액의 5%를 코로나19 대응 의료진들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뇌전증 환자를 위한 식이요법제인 '케토니아'를 개발한 뒤, 2010년부터 어려운 환자들에게 무상공급하고 있으며, 미숙아를 위한 '이른둥이 분유', 유당 및 유단백을 소화하기 힘든 아기를 위한 '임페리얼 XO 알레르기', 불편한 장으로 인해 묽은 변을 보는 아기를 위한 '임페리얼드림 XO 닥터' 등, 소수의 아기 환자들을 위한 특수 분유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가지 잘한 일은 그보다 나쁜 일에 묻혀 왔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더 많은 좋은 일을 하고, 널리 알리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홍 회장의 사과와 사퇴가 남양유업이 다시 일어나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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