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사진가 이흥렬 15일까지 리서울갤러리 초대전

“나무를 버림으로써 버려진 것은 결국 인간이었다”

나무사진을 통해 인간을 들여다 보는 이흥렬 작가
나무사진을 통해 인간을 들여다 보는 이흥렬 작가

[서울=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신단수와 서낭당 나무 등은 대표적인 신목(神木)이라 할 수 있다. 나무는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에 위치하기에 하늘의 신이 내려오는 통로로 상징화 됐다고 볼 수 있다. 나무 사진가 이흥렬은 초등시절 수안보 서낭당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제사상에 올려진 시루떡도 먹고 동전을 가져다 주전부리를 사먹기도 했다. 어느 여름날 서낭당을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낙비가 쏟아졌다. 지은 죄(?)가 있던 던 소년 이흥렬은 겁이 났다. 서낭당에 걸려 있던 삼신할머니의 초상과 고목이 그로테스크하게 다가 왔다. 마치 “이놈”하며 죄를 벌하려는 듯 보였다. 일종의 공포에 가까워 트라우마가 됐다.

“고목을 보면 여자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어 떠오르곤 했다. 오죽했으면 이태리 유학시절 거처 인근에 있는 고목과 현지 여학생을 찍어 암실에서 합성한 작품을 내 놓을 정도였다. 이후 이상하리만치 트라우마가 사라졌다.”

그는 예술적 치유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자신이 그동안 찍어온 사진들을 점거해 보았다. 나무사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동안 지나치다 눈길을 주는 나무들은 모두 카메라에 담아 왔다.

“광고상업사진을 할 것이냐, 아니면 순수예술사진을 찍을 것인가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왕이면 행복하게 오래찍을 수 있는 것이 뭔가 생각을 해 봤다. ”

그에게 유년기 놀이터가 돼 준 나무그늘은 행복하고 편안한 엄마품 같은 것이었다. 사진작업이 그를 그렇게 해 줄것이라 확신했다. 세계를 돌며 나무사진을 찍었다. 네팔 히말라야의 랄리구라스, 이탈리아 뿔리아의 올리브나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통영의 신목을 카메라에 담았다. 올 초에는 제주도에서 살면서 제주도의 폭낭(팽나무)을 촬영했다.

“나무에 따라, 그리고 지역과 그 지역의 역사적 의미에 따라 나무를 달리 표현해 봤다.”

예를들어 제주 애월읍 봉성리 ‘재리앗’이란 곳에 있는 팽나무는 4.3 이전엔 서당이 있던 평화로운 마을 한가운데서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4.3 때 주민 소개령이 내려지고 불태워진 후 이제는 허허벌판 중산간 지대에 홀로 서 있는 나무가 되었다. 그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고목을 보며 작가는 그 나무가 간직하고 있을 ‘나무의 기억’을 떠올렸다고 한다. 작가에게 나무는 단순히 식물이 아니라 역사의 나무, 기억의 나무인 셈이다.

그렇다고 나무의 역사성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 역시 작가 특유의 조명 기법을 사용하여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로 스튜디오 실내에서 사용하던 라이트 페인팅 기법을 야외로 끌어내어 작가의 의도를 더욱 강렬하게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다큐멘터리 사진과 이흥렬의 나무 사진이 극명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만드는 사진이 아닌, 현장에서 발견하고 촬영하는 사진 고유의 특성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 작가의 의도가 가미된 사진을 만드는데 조명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에게 나무는 사진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이젠 그의 삶의 의미가 되고 있다. 양재천 둑방길의 나무들을 결국 지켜낸 ‘양재천 둑방길 나무 지키기’ 시민운동, 그리고 그가 꿈꾸고 있는 자연과 예술이 함께하는 ‘예술의 숲’ 프로젝트가 그렇다.

15일까지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몰에 있는 ‘리서울 갤러리’ 열리는 ‘제주신목_폭낭’전은 작가의 제주작업을 볼 수 있는 자리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찍은 나무는 바람이 센 동복리의 폭낭(팽나무)이었다. 비록 세찬 바람에 밀려 한쪽으로 자라 편향수가 되었으나 나약하지 않고 오히려 역동적이었다. 마치 육지로부터 온갖 천대와 수탈을 당한 제주였지만, 이제는 누구나 가고 싶고 살고 싶은 섬으로 우뚝 솟은 그런 제주의 모습이었다. 그 후로 매년 두세 번씩 제주로 내려와 폭낭을 기록하였다. 육지에 사람들과 애환을 같이 한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면 제주는 폭낭이 있었다.

“동네 어귀에 우뚝 솟아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친구가 된 인간 폭낭, 중산간 우물가에 홀로 서서 들짐승들의 지킴이가 된 자연 폭낭, 4.3의 학살을 겹겹이 기록한 역사 폭낭, 마침내 신이 된 신목 폭낭이다.”

그는 촬영에 앞서 가만히 나무에 기대어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린다.

“내가 본 나무는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고 그 모습 또한 저마다 경이로웠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슬프게, 언제나 인간에게 따스하게 또는 무겁게, 그리고 신비하게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조명의 색과 방법, 프레임을 결정하였다. 난 다만 그들과 한바탕 즐겁게 놀 뿐이었다.”

그가 사진작업을 하면서 느낀게 있다. 슬픈 나무를 만드는 것, 행복한 나무를 만드는 것, 아픈 나무를 만드는 것 모두 인간임을 깨달았다. 나무는 오직 하나인데 인간에 의해 의미가 덧씌워졌다.인간에 의해 추앙받고, 인간에 의해 버려졌으나 나무는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하였다.

나무를 버림으로써 버려진 것은 결국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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