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들의 죄를 구원하고 있는 겁니다"

“고야” 무대 사진_공연 시작 전, 인터미션까지도 계속 무대위에서 배회하는 듯한 검은그림자는 마을 사람들의 제사의식처럼 보이면서도 고야의 정신을 지배하는 정체불명의 모습으로도 보인다. /ⓒAejin Kwoun
“고야” 무대 사진_공연 시작 전, 인터미션까지도 계속 무대 위에서 배회하는 듯한 검은그림자는 마을 사람들의 제사의식처럼 보이면서도 고야의 정신을 지배하는 정체불명의 모습으로도 보인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건설된 마을은 ‘고야’의 공간과 무수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인어:그 때 왜 바다가 푸르지 않고 검었는지', '피그와 홀스' 등 다양한 사회현상을 독특한 예술세계로 표현하며 함께 오랜 호흡을 이어가고 있는 서종현 작가와 손현규 연출의 새로운 작품 '고야'가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짧은 여정을 마쳤다.

"고야" 공연사진_L(김설)은 마을시장 M(공재민)에게 마을 사람들의 상태를 보고하고, 계속해서 이렇게 해도 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우리가 한 일이 마을에 알려지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김기문(제공=창작집단 꼴)
"고야" 공연사진_L(김설)은 마을시장 M(공재민)에게 마을 사람들의 상태를 보고하고, 계속해서 이렇게 해도 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우리가 한 일이 마을에 알려지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사진=창작집단 꼴)

연극 '고야'는 지구의 종말 끝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이 구성한 마을의 이야기다. 피가 말라버린 마을이자 인간성이 말라버린 종말의 세계에서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건설된 마을은 ‘고야’의 공간과 무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 통로를 통해 인간의 가장 잔인한 피와 인간의 가장 고결하고 순수한 피가 섞인다. 마을 사람들은 고결한 피를 수혈받으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어리석은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검은 그림들 : 아들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출처=나무위키)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검은 그림들 : 아들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그림=Museo del Prado)

무대 위 희끄무레한 빛, 나무 밑에서는 망토를 입은 마을주민들이 제를 올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며 ‘사투르누스’를 주문처럼 되뇐다. ‘사투르누스’는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말년에 그린 그림으로 아들에게 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여 아들을 차례로 잡아먹은 로마의 신을 그렸다. 하지만 이 그림은 신의 격노,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간의 갈등과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시간으로서의 사투르누스를 보여준다. 

"고야"_인터미션 중 무대에서는 상반신을 탈의한 한 남자가 등장해 제를 올리는 듯, 춤을 추는 등한 몸짓을 계속한다. '그'는 누구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Aejin Kwoun
"고야"_인터미션 중 무대에서는 상반신을 탈의한 한 남자가 등장해 제를 올리는 듯, 춤을 추는 등한 몸짓을 계속한다. (사진=Aejin Kwoun)

 

"고야" 공연사진_어릴 적 일반사람의 몇 배의 피를 생산하는 고야(이재영)의 피로 살아난 시장의 딸 N(이다혜)은 유일하게 고야를 괴물이 아니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스스로 본인도 인간이 아닐지 모른다 여긴다. 고야의 주치의 J(조남웅)은 그저 고야를 실험체로만 여기는 듯 하다. /ⓒ김기문(제공=창작집단 꼴)
"고야" 공연사진_어릴 적 일반사람의 몇 배의 피를 생산하는 고야(이재영)의 피로 살아난 시장의 딸 N(이다혜)은 유일하게 고야를 괴물이 아니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스스로 본인도 인간이 아닐지 모른다 여긴다. 고야의 주치의 J(조남웅)은 그저 고야를 실험체로만 여기는 듯 하다. (사진=창작집단 꼴)

'고야'의 몽환적인 무대는 관객들의 허구에 대한 인식이 어디까지 가능할는지 그리고 예술성과 대중성이 만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계속 묻는 듯한 실험적 색채가 가득하다. 최연소 나이로 창작산실 대본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2020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에서 희곡상을 받은 서종현 작가는 “포괄적으로 현대 사회의 윤리적 이기주의를 도덕과 규범, 쾌락과 윤리, 희생과 살인, 공리와 개인,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명제를 하나의 심판대 위에 올려다 놓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손현규 연출은 “인간이라서 갖게 되는 ‘잔혹함’과 ‘고결함’이 끊임없이 충돌할 때, 우리는 ‘구원’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지 질문해보고자 한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고야"_L이 최선이라 선택한 U(유종연)은 선으로 포장된 더 끔찍한 이기주의의 선택이었다. /ⓒAejin Kwoun
"고야"_L이 최선이라 선택한 U(유종연)은 선으로 포장된 더 끔찍한 이기주의의 선택이었다. (사진=Aejin Kwoun)

매 작품 일상적 문체보다는 문학적 문체로 채우고 있는 작가와 연출의 심미주의적 색채는 이번 작품 '고야'에서도 역시 이어졌다. 그들의 독창적인 세계는 무대 위에서 배우마다 캐릭터와 묻어나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경계를 만들기도 한다. 대다수 관객에게 영원히 불친절하게 여겨지는 현대미술은 ‘완성작’이지만, 연극 무대는 언제나 ‘완성’을 향해 진행 중인 작품 같다. ‘예술성’을 최우선으로 추구한다는 그들의 작품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최우선이라 여기며 작업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었을지, 다음 작품에서는 어떻게 바뀔 것인지 궁금해진다.

“고야” 프로필&컨셉사진_‘어항’, ‘그남자그여자의사정’ 등의 단편영화에서 감각적이고 재기발랄한 영상과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김기문 연출이 사진과 영상작가로 참여해 작품 “고야”에 미학적 매력을 더해주었다. /ⓒ김기문(제공=창작집단 꼴)
'고야' 프로필&컨셉사진_‘어항’, ‘그남자그여자의사정’ 등의 단편영화에서 감각적이고 재기발랄한 영상과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김기문 연출이 사진과 영상작가로 참여해 작품 고야'에 미학적 매력을 더해주었다.(사진=창작집단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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