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nter Stage of Korea #1"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1993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으로 초연한 작품으로 3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남정호 안무가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국립현대무용단의 "빨래"를 지난 3월 말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보다 더 탄탄해지고 풍성해진 무대로 지난 27일 단 하루 MODAFE 2021 "Center Stage of Korea"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무더운 한여름 밤, 잠 못 이루는 여인들이 함께 모여 빨래를 한다. 남정호 예술감독의 대표 레퍼토리인 “빨래”는 동시대적 시각으로 여성의 노동과 연대감,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깊게 조명해왔다. 빨래터는 단순히 빨래만을 하는 장소보다는 방망이질과 담소를 통해 애환을 풀던 장소였기 때문일 것이다.

초연 후 프랑스와 러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초청받아 공연을 선보이며 “다양한 의미를 지닌 장면 배치는 평범한 빨래의 과정을 고결한 장면으로 승화시켰다”(러시아 Kommersane Daily)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올해 작품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박인선 이수자가 전통 탈춤에 나오는 ‘미얄할미’ 역을 맡으며 새로운 등장인물로 추가됐다. 강령탈춤은 황해도 봉산의 옆동네 강령 지역에서 유래된 가면극으로 화려한 의상, 활달한 춤사위가 특징으로 박인선 이수자가 맡은 미얄할미는 재담과 노래로 여성들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아주고 지혜를 주는 캐릭터이다.

작품 속 빨래라는 노동은 어느 순간 신명난 놀이의 모습과 겹쳐지며, 하얀 천이 흩날리고 빨래바구니에서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고 건네주며 함께 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탄성을 자아내었다.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그리고 씻어내고 말리는 행위는 정화의 의식으로 이어진다. 유연하며 강한 힘을 지닌 개성적인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상의를 탈의하는 장면은 마치 신성한 의식마냥 서로의 고단함을 털어주며 씻겨내주며 독특한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국립현대무용단은 2010년 창단한 국내 유일의 현대무용 국립단체이다. 창작역량을 지닌 예술가들과 함께 춤을 통해 동시대의 역사와 사회, 일상에 관해 이야기하며 지역과 세대를 아울러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한국적 컨템퍼러리 댄스를 지향하는 창작 전문단체로서 동시대 다양한 가치를 무용 작품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고유한 예술관을 가진 안무가를 초청하고, 각 작품에 최적화된 프로젝트 무용수를 선발하여 공연을 올리고 있다. 또한, 창작자들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무용단의 안정된 시스템에서 자유롭게 개성을 표출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춤을 가깝게 경험함으로써 국민의 삶이 현대무용을 통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도모하고 있다.

다채롭고 섬세한 작품 "빨래"의 남정호 안무가는 1980년 프랑스에서 장-고당 무용단(Cie Jean-Gaudin)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귀국 후 부산 경성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현대무용단 줌(Zoom)을 창단해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당시 기존 틀을 벗어난 남정호의 춤은 미국 스타일 위주였던 한국 현대무용에 새로운 길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이 설립된 이후에는 창작과 교수로 위촉되어 2018년에 정년으로 퇴임하기까지 국내 현대무용 인재를 양성하는 데 이바지했다. 독창적인 안무가이자 무용수로 무대를 지키는 것을 넘어, 교육자로서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 현대무용의 지속적 발전을 추동하고 있다.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빨래"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현대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 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누군가는 구태의연하다고 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빨래터가 그저 빨래만 하는 장소가 아니였듯 '빨래'라는 행위를 통한 외로음, 슬픔 등 아픈 기억의 승화를 작품 전반에 아름답게 함축하고 있기에 현시대 관객들도 무언가 해방되는 느낌을 받으며 감동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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