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 일자리 생기면 천국 하나가 등장하고 한 개 일자리가 사라지면 지옥 하나가 나타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이 1930년대 대공황으로 피폐한 미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 등장한 문구다. 이 소설은 대공황에 경제적 궁핍에 맞딱뜨린 주인공 톰 조드의 험난한 인생여정을 잘 그려냈다. 실업자 캠프에 수용된 조드와 그의 가족에게 삶은 행복이 아닌 질곡의 연속이었다. 스타인벡은 당시 미국사회 분위기를 “굶주린 사람 눈에는 패배의 빛만 보이고 영혼 속에는 분노의 포도가 가지가 휘도록 무르익어 간다”고 묘사했다.

그로부터 80여년이 지난 지금을 대공황 당시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두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는 실업문제다. 특히 우리의 경우 청년실업이 최대 화두다.

대학 졸업을 앞둔 조카로부터 귀동냥하는 요즘 대학가 풍속도는 삭막하기 그지없다. 낭만이 넘치는 캠퍼스에서 학우들과 인생관과 철학을 논하는 분위기는 옛 얘기가 된 지 오래다. 친구와 만나는 시간조차 아까워 식사를 홀로 해결하는 ‘혼밥족’이 등장하는가 하면 청년 구직난에 ‘5포(연애·결혼·출산·취업·주택 포기)세대’를 지나 꿈과 희망마저 포기한 칠포세대라는 자조적 유행어마저 등장하지 않았는가.

청년 체감실업률이 23%를 넘는 암울한 현실에서 뭐든 혼자하는 인간 ‘호모 솔리타리우스’(Homo Solitarius)가 우리의 신(新)인류로 등장했다는 보도에 씁쓸한 입맛을 다셔야 했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가 주장한 ‘인지부조화이론’처럼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어 암울한 시절을 보내는 청년들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해 빚어낸 슬픈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청년층에게 일자리 한 개가 사라진다는 것은 불행 한 개의 씨앗이 뿌려지는 것이며 정치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잠재적 뇌관이다. 청년 일자리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나라 명운을 좌우하는 문제라는 얘기다.

이제 공은 정부와 기업 코트로 넘어갔다. 정부는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을 끌어올리고 비정규직 보호장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취업난을 해소하기에 태부족이다. 이렇다 할 천연자원 없이 인적자원 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로서는 젊은층이 질 좋은 일자리를 얻어야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지 않는가. 필요하다면 정부가 청년 취업을 지원하는 ‘청년일자리 청(廳)’이라도 만들어 청년실업과의 전쟁에 나서야 한다.

기업 역시 청년실업에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수백 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투자를 기피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계경제가 뚜렷한 회복조짐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국내기업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 가운데 하나가 내수시장이다. 인구 73억명의 글로벌 시장에 비하면 내수규모가 작지만 전세계적으로 인구 5000만명이 넘는 국가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젊은층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고 내수시장에서 돈을 써야 디플레이션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요즘 회자되고 있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에도 너무 아깝다”고 설파했다. 그만큼 화려해야 하는 게 청춘이다. 국가 미래가 곧 청년임을 상기할 때 청년층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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