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트" 커튼콜_트레이시(강명주)와 신시아(송인성)의 포옹장면이 가슴 찡하게 느껴진다. /(사진=Aejin Kwoun)
"스웨트" 커튼콜_ 트레이시(강명주)와 신시아(송인성)의 포옹장면이 가슴 찡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포옹을 환한 미소로 바라보는 제시(문예주), 셋의 우정이 다시 영원히 이어지길 바란다.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평범한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묵직하게 풀어내는 안경모 연출의 작품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아래 스웨트)가 지난 18일부터 오는 7월 18일까지 한 달간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띤 땀으로 가득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해외연극계의 트렌드를 살펴보고 해외 최신 우수작을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하고자 매년 1~2편의 해외신작을 제작해 온 국립극단은 올해는 노동, 성차별, 인종차별, 경제 불평등 등의 이슈를 모두 담아 브로드웨이에 파란을 일으킨 화제작 “스웨트”를 선정하였다.

"스웨트" 공연사진_강명주 배우가 연기한 트레이시는 난독증으로 학습이 어렵지만 육체노동을 잘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피부로는 시대가 이상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원인 파악을 할 수가 없어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화풀이를 한다. 독일계 백인노동자라는 좀 더 우월한 지위에서 노동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한 번 허물어지면 더욱 극단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모순적이고 이중적이다. 그에 반면 신시아(송인성)는 흑인이라는 낙인 때문에 트레이시보다 좀 더 아래에서 시작했지만 항상 좀 더 나은 것을 꿈꾸는 인물이다. 술집에서 만나는 이 모든 인물들의 갈등과  반목은 노동자 간의 첨예한 갈등 문제를 시사한다.   /(사진=김신중, 국립극단)
"스웨트" 공연사진_ 강명주 배우가 연기한 트레이시는 난독증으로 학습이 어렵지만 육체노동을 잘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피부로는 시대가 이상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원인 파악을 할 수가 없어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화풀이를 한다. 독일계 백인노동자라는 좀 더 우월한 지위에서 노동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한 번 허물어지면 더욱 극단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모순적이고 이중적이다. 그에 반면 신시아(송인성)는 흑인이라는 낙인 때문에 트레이시보다 좀 더 아래에서 시작했지만 항상 좀 더 나은 것을 꿈꾸는 인물이다. 술집에서 만나는 이 모든 인물들의 갈등과 반목은 노동자 간의 첨예한 갈등 문제를 시사한다. (사진=김신중, 국립극단)

두 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린 노티지의 작품 "스웨트"는 미국의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소도시 펜실베니아에 자리잡은 철강산업도시 ‘레딩’을 배경으로 노동권을 지켜내기 위한 노동자들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 노동자와 사측의 대립, 노동자 간 분열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노동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경제난민의 유입과 경제적 불안정은 거의 모든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작품의 배경이 미국이지만 우리와 멀지 않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웨트" 공연사진_복역을 마친 제이슨(박용우)과 크리스(송석근)가 우연히 마주친다. /(사진=김신중, 국립극단)
"스웨트" 공연사진_ 복역을 마친 제이슨(박용우)과 크리스(송석근)가 우연히 마주친다. 백인우월주의 문신을 한 트레이시의 아들 제이슨과 불안해 보이는 신시아의 아들 크리스, 그 둘은 왜 그렇게 되어야 했을까? 흑인경찰 에반(유병훈)은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까? (사진=김신중, 국립극단)

IMF의 급속한 변화와 그 이후 2000년대 이야기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 "스웨트"를 연출한 안경모 연출은 “이 작품은 노동, 인종 이슈를 뛰어넘어 ‘인간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라며 “우리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인지, 노동 상실로 인한 사회활동의 파괴와 문화적 공황이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파괴하는지, 나아가 그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타인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연대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스웨트" 공연사진_모두가 만나는 공간인 bar의 스탠(박상원)은 인물 모두에 대한 지지자, 관찰자, 만인의 친구, 연인, 아버지 역할을 하는 어떤 상징적인 인물이다. /(사진=김신중, 국립극단)
"스웨트" 공연사진_ 모두가 만나는 공간인 bar의 스탠(박상원)은 인물 모두에 대한 지지자, 관찰자, 만인의 친구, 연인, 아버지 역할을 하는 어떤 상징적인 인물이다. 지난해 1인극 '콘트라바쓰'를 선보였던 박상원 배우는 "작년에 1인극을 오래 하다 보니 여러 배우들과 함께하는 작업이 너무 그리웠다. 연극계에서 인정받는 시즌단원, 젊은 배우들과 탄탄한 초청배우들과 40여일 간 작업을 하게 되어 배울 것도 많고 경계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원서와 번역본을 동시에 두고 치열하게 연습하고 있는 우리 공연의 땀을 기억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김신중, 국립극단)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포항제철에서 올해 일어난 노동자 6명의 사망사고가 문득 떠오르는 건, 철강산업도시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2014년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 그리고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급여의 70% 지급과 탄력적 유급휴업 등은 단지 포스코만의 문제일 수 없다. 작품 속 이야기가 끝이 나는 현시점에서도 글로벌 철강 시장의 생산설비 가동이 멈추고 있다. 물론 생산설비 가동 중단은 철강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스웨트”의 배경이 되는 ‘레딩’의 이야기는 먼 나라 미국의 이야기만이 될 수가 없다. 이 작품이 현재 우리 이야기이고, 우리 미래의 이야기이다.

"스웨트" 공연사진 /(사진=김신중, 국립극단)
"스웨트" 공연사진_ 성실히 일하던 노동자 브루시(김수현), 작품의 작가는 흑인 여성인 자신과 대척점에 서 있다고 여겼던 백인 남성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가장 놀라웠다 말했다. 그들의 서사가 어느새 오랜 차별과 소외로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흑인 청년의 좌절과 분노를 닮아가고 있기에, 이제는 인종과 젠더의 차이를 넘어 자연/인간 생태계를 파괴하는 자본의 무차별적 지배에 함께 대항할 제 3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사진=김신중, 국립극단)

갑작스런 변화를 감내할 여력이 없는 이들부터 스러지고 있다. 팬데믹의 여파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었고, 장기화되면서 일자리를 잃거나 가게를 잃고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이들의 피해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몇 달치 소득이 없어도 생계에 타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여력이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기업부터 개인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 임시직과 일용직 그리고 여성과 장애인,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정책에서조차 소외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년들은 고용시장에서 구직 활동을 쉬거나 단념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그들의 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스웨트" 공연사진 /(사진=김신중, 국립극단)
"스웨트" 공연사진_ 라틴계 이민가족에서 태어난 오스카(김세환)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여전히 이방인이다. 시간이 흐른 후 오스카는 스탠을 돌보고 있다. 안경모 연출은 여기서 돌본다는 것은 노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사람들에게 노동을 상실한다는 것 자체는 대단히 극단적인 심리적인 모멸감을 주는 것이고, 사회학자 칼 폴라니의 말을 빌리자면 삶의 동기가 사라진 '문화적 진공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전한다. (사진=김신중, 국립극단)

팬데믹이 오기 이전에도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는 수차례 있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가치의 모든 것"에서는 1975년에서 2015년 사이 미국의 실질 국내 총생산은 5.49조 달러에서 17.29조 달러로 대략 세 배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기간에 생산성도 60% 가량 성장했지만, 1979년 이래 미국 노동자 대다수의 시간당 실질 임금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하락했다. 그리고 많은 기업들은 이윤을 장기적으로 생산에 재투자하는 데 쓰기보다 단기적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데 쓴다. 그 결과, 2015년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62명이 소유한 부의 총합은 세계 인구 절반인 하위 35억 명이 소유한 것의 총합과 비슷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스웨트"를 연출한 안경모 연출, 스탠(
"스웨트"를 연출한 안경모 연출, 스탠(박상원), 트레이시(강명주), 신시아(송인성) (사진=Aejin Kwoun)

기업가들과 노동자들이 인식하는 '가치'의 차이는 경제학적 개념 뿐 아니라 정치적인 개념으로 그 지표들은 늘 중립적이지 않았다. 주주 가치 극대화 논리 속에서 '주주들은 가장 큰 투자 리스크를 감수하는 주체'라는 개념이 달라지지 않는 한, 노동자들은 언제나 교체할 수 있는 기기의 부품으로 전락할 것이다. 신자유주의경제에서 우리 시장의 노동자들은 '가치'의 창조자에서 배제되는 게 정말 맞는 것일까? 영국 일글랜드 출신의 고전학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노동자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게임에 들어선 처지"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스웨트" 무대사진 /(사진=Aejin Kwoun)
"스웨트" 무대사진_ 연극은 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공장이 아닌 술집을 주 무대로 선택했다. 도현진 무대디자이너는 이 무대가 인물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2000년과 과거의 그늘 아래 머물러 있는 2008년, 이후 세계의 흐름 그리고 이를 관람하는 2021년의 한국의 관객을 중첩하기 위해 틀과 구획된 면을 이용해 일상을 둘러싼 거시사회를 암시하고자 했다. (사진=Aejin Kwoun)

누군가를 위하고 배려한다는 것은 그가 그의 노동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끔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고, 진정한 화해는 내 입장이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사과할 때 가능하다 이야기하는 연극 "스웨트"는 결말에 이르러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느새 다인종, 다민족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도 노동의 가치 뿐 아니라 인종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까지 다양한 감정과 상충하는 입장들 사이에서 직접 갈등을 경험하면서 우리 내면을 차지하는 생각의 잣대를 가늠토록 만들고 있다.

국립극단은 ‘동반자 외 좌석 한 칸 띄어 앉기’ 예매시스템을 이번 “스웨트”부터 시범 운영한다. 일행끼리는 최대 4매까지 연속된 좌석을 선택할 수 있으며, 선택된 좌석 좌우로 한 칸 거리두기가 자동으로 지정되어 동반자 간 따로 앉을 수도, 같이 앉을 수도 있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일행 간 동반 관람을 쉽게 하고,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공연이 매진을 이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공연을 너무나 만나고 싶은데도 표를 구할 수 없어 관람하지 못하는 관객을 위해 거리두기 세부지침을 준수하면서 최대한 좌석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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