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윤석열과 최재형, 태극기부대의 재림

[뉴스프리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29일 출마선언에 대한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진영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전문가 그룹이나 일반 네티즌 사이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만 있지 대안이나 비전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오히려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 사퇴시나 총장 재직시 국정감사장에서의 직설적이고 강단있는 모습에 비해 기자회견에서 발언할 때마다 고개 흔드는 습관으로 ‘도리도리’란 별명을 얻었을 뿐이다.  

윤 전 총장이 3월 4일 사퇴후 117일만에 국민앞에 나서 밝힌 ‘출마의 변’에는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무도, 독재를 지적하며 8번에 걸쳐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약탈’ ‘이권 카르텔’, ‘포퓰리즘’ 등 상당히 거친 단어들을 구사, 전체적으로 문재인 정부를 ‘부패완판’으로 몰아갔다. 문 정부의 부정을 넘어 전형적인 ‘문재인 때리기’로 일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16일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공정과 민생’을 중심으로 문 정부를 비판한 국회연설의 확장판에 불과할 뿐이다. 김 원내대표는 특히 일자리, 부동산 정책 등 정부 경제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경제위기를 모두 코로나 탓으로 돌리지만, 소득주도성장이 경제폭망의 시작이었다"고 주장했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입당 전이지만, 논리는 똑같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이나 김 원내대표나 이들의 논리 또한 태극기부대의 논리와 똑같다. 

태극기부대는 2016년 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 나타났다. 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농단이 밝혀지고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우자 이에 반발, 광장 한켠에서 노년층을 중심으로 시작하더니 ‘어버이 연합’과 우리공화당 등 박근혜 대통령 석방 및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연합체로 규모를 키웠다. 세불리기에 성공한 후에는 보수정당을 압박, 박근혜 탄핵무효, 현재는 석방운동까지 하는 중이다. 

이들의 힘이 결정적으로 과시된 것은 2019년 12월 16일 태극기부대 국회 난입 사건이다.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태극기 부대를 국회 경내로 끌어들였지만, 무질서와 분노 욕설로 그들만의 한계에 부닥쳤고, 그 결과 미래통합당 총선 참패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총선 참패 후 이들의 세력도 약화된다. 지지층 확대는 못한 채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 위주로 흘러가자 21대 총선 역시 영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참패했다. 태극기부대와 연결된 정치인은 대부분 낙선됐고, 이들을 대변한다는 우리공화당은 원외정당이 됐다. 중도층을 끌어 안아야 하는 전략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나 현재의 국민의힘이나 이준석 대표 등은 태극기부대와 강하게 선을 긋고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보수정당의 핵심지지층이자 민주당 적대세력인 태극기부대는 국민의힘이 끌어 않지 않아도 보수정당의 ‘집토끼’라는 전략이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태극기 집회를 알리는 우리공화당 보도자료는 다음과 같다.

좌파독재 악법 공수처 저지
우파궤멸 음모, 연동형 비례대표제 저지
죄 없이 불법 인신 감금 1000일, 박근혜 대통령 석방
문재인 좌파독재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자!

이 내용이 태극기부대 구성원, 이들을 대변한다는 우리공화당만 공유하는 인식일까? 

“박정희의 딸 박근혜 무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좌파독재정권 타도”는 지난 70년대부터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영남권력집단과 보수언론의 카르텔에 의한 프레임으로 선거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은 단골수법이기도 하다. 

태극기부대 구성원들은 누구인가?  

태극기 집회의 주된 참여자는 노년층이었다. 이들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던 존재들이었다. 결국 이들의 누적된 모멸감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는 촛불 집회를 계기로 결집되었다. 이 연구는 태극기 집회 주최 측과 태극기 언론은 모멸감에 내재된 노년층의 도덕적 신념을 강화시켜 집단적 저항에 참여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정을 위한 저항 : 태극기 집회의 감정 동학>(김진욱 허재영), 2018년 한국정치학회보 초록에서 발췌

이들에겐 아직도 박정희 시대가 잘살게 해줬다는 것, 미국이 아니었으면 공산화가 됐고, 김대중 노무현이는 빨갱이 였으며, 문재인은 북한에 퍼주고 중국에 굽신거리면서 나라를 팔아먹는 존재이며, 정치적으로 반일(反日)을 이용하는 세력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들은 광화문에 태극기와 성조기, 일장기(엄마부대 주옥순 주도)를 들고 나오며 때로는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드는 촌극을 보이고 있다. 

태극기부대의 분노에 찬 높은 목소리 이면에는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끊임없는 선동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은 이들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반영하며 전파한다. 광화문광장이나 서울역에서 성조기를 흔들고 분노에 찬 목소리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의 기본도 안되는 기사로 논설로 무한복제된다. 보수정당은 이를 정책 무력화로 이용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울 강남의 종부세 논란이다.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에 담긴 내용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보다는 문 정부의 실정과 비난에 더 많이 할애한다. 그 내용도 출마선언문 치고는 과격 그 자체였다.

여기서 지난 28일 자진사퇴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대한 평가가 떠오른다. 최 전 원장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 임기제 감사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기조를 흔들었고, 문 대통령이 제청을 요구한 김오수 전 법무차관(현 검찰총장)을 두 번이나 거절하면서 보수층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많은 국민들이 비정치적으로 알려진 인물의 정치적 행위에 놀랐지만, 그를 가까이 본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최 전 원장이 상당히 정치적 인물임을 일찍부터 간파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최재형, 윤석열과 앙시앙 레짐(구체제)'이란 제목의 글에서 최 원장을 향해 "구(舊)주류의 총아", "전형적인 태극기부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감사원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최 원장은) 애초 문재인 정부와 결이 많이 달랐다고 한다"며 "'요새 이런 이야기가 들려~' 하면서 최 원장이 먼저 정치 관련 얘기를 꺼내고는 했는데, 전형적인 '태극기부대'의 논리였다고 한다. 일본과 무역분쟁이 일어났을 때 '일본하고 이러다가는 나라 망한다'는 식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최 전 원장의 평소 소신, 무엇보다 “일본하고 이러다가는 나라 망한다”라는 논리는 윤 전 총장 기자회견장에서 밝힌 한일관계 답변에서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불행한 과거 일제강점기 하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 아룰 교묘하게 일본 국내정치에 이용한 스가(아베)정권의 경제보복과 독도침탈이 버젓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문 정부의 한일관계를 ‘이념 편향적 죽창가’로 망쳤다는 윤 전 총장의 몰역사적 인식이 황당하지만 ‘나라 망한다’는 최 전 원장이 발언을 생각하면 놀랍지도 않다. 김 의원의 표현대로라면 우리사회 구주류인 이들의 인식은 태극기부대 안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 시국에서 광화문광장이나 서울역에서 성조기와 일장기를 흔드는 태극기부대를 보기는 힘들다. 그들이 나서도 별 의미는 없다. 이제 그들이 나서면 역효과가 난다는 것은 국민의힘에서 태극기부대를 쳐낸것만 봐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태극기부대는 안보여도 그들의 공유한 구호는 사라지지 않는다. ‘박근혜 무죄, 문재인 좌파독재정권타도’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나설 필요가 없다. 정부 중요직을 차지하고 존재감을 알린 다음, 정장 차림에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그들의 구호를 대신 외쳐줄 선수를 찾았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의 등장, 태극기부대의 재림이 아닌가? 

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자임하고 나섰다.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민족의 생존이 걸린 남북의 평화교류,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자립 같은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흘러간 과거타령이나 하면서 ‘도리도리’하는 사람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마르크스는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의 출마가 한바탕 희극으로 끝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