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심장" 커튼콜 /(사진=Aejin Kwoun)
"개의 심장" 커튼콜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자연의 법칙을 파괴하고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였을 때 인간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작가 미하일 불가꼬프(Mikhail Bulgakov) 자신의 철학을 우회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작품 “개의 심장”은 1920년대 러시아의 시대 배경으로 인해 체제 비판적인 작품이라 해석되고 있지만, 얼핏 공상과학소설로 보이기도 한다.

"개의 심장" 공연사진_춥고 배고픈 떠돌이 개 샤릭은 이상한 사람에 끌려갈 뻔하거나, 한겨울 먹을 것을 찾지 못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다. /(사진=임종선)
"개의 심장" 공연사진_춥고 배고픈 떠돌이 개 샤릭은 이상한 사람에 끌려갈 뻔하거나, 한겨울 먹을 것을 찾지 못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다. (사진=임종선)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1일까지 단 3일간 고양 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에서 무대에 처음 올려진 작품 “개의 심장”은 인간 존재, 그리고 새로운 존재의 창조와 정체성에 관한 불가꼬프표 블랙 코미디이다. 인간의 노화 방지를 위해 뇌하수체 연구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개 샤릭에게 실험을 해 보던 중 개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점점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불안정하고 부자연스러운 존재는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개의 심장" 공연사진_소세지의 유혹에 필립의 집에  건강해지고 살이 찌던 어느 날, 죽은 인간의 뇌하수체와 생식관을 교체하는 의학실험을 당하게 된다. /(사진=임종선)
"개의 심장" 공연사진_소세지의 유혹에 필립의 집에 건강해지고 살이 찌던 어느 날, 죽은 인간의 뇌하수체와 생식관을 교체하는 의학실험을 당하게 된다. (사진=임종선)

선택적 생명존중 사상을 가진 의사이자 학자인 필립 역과 작품의 연출을 맡은 전중용 배우이자 연출은 창조주 필립의 존재론적 고민이 자신의 고민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2020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바 있는 전중용 배우는 쉽지 않은 작품의 연출로 배우들의 호흡을 맞추는 것과 더불어 수많은 질문을 상기시키는 필립 박사와 샤릭의 대치를 통해 원작 속 고민과 동시에 자신의 고민 또한 작품에 풀어냈다.

이 존재는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창조한 것인가? 이에 따른 책임은 무엇인가? 안정적이던 삶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재앙, 필립의 내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는 무엇인가? 피조물인 저 개를 창조주의 아들이라고 볼 수 있는가? 생명존중 사상이 자신의 위협을 무릅쓰면서까지 유지될 수 있는가? 인간의 내면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또 무엇일까? 변할 수 있는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의 구분은 평생의 과업은 아닐까? 모든 일이 끝난 후 필립은 뇌하수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인간의 욕망이 과연 쉽게 사그라들 수 있을까? 필립의 입장에서일지, 작품 연출의 입장에서일지, 필립을 맡은 배우의 입장에서일지 그는 수많은 질문을 작품 속에서 쉴 새 없이 자신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던진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손을 뻗치게 되는데….”라는 끝나지 않는 의문을 던지며 작품을 마무리한다.

"개의 심장" 공연사진_고위층과 인맥을 쌓고 있었던 필립은 다른 아파트 주민들과 달리 클리닉과 주거공간으로 7개의 방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주택관리위원회의 쉬본제르는 이를 문제 삼고 시비를 걸어온다. /(사진=임종선)
"개의 심장" 공연사진_고위층과 인맥을 쌓고 있었던 필립은 다른 아파트 주민들과 달리 클리닉과 주거공간으로 7개의 방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주택관리위원회의 쉬본제르는 이를 문제 삼고 시비를 걸어온다. (사진=임종선)

쉽지 않은 작품의 각색을 맡은 고진 각색가는 작업을 위해 깊이 파고들수록 그의 삶과 얽혀 다른 차원으로 다가왔다고 이야기한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영혼을 걸고 전체주의를 향해 작은 전쟁을 선포한 것은 존재의 자유가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의 반증이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해서 '그래도 되는 건' 아닌 것처럼, 그 누구에게도 다른 존재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가 없다는 것. 불가꼬프는 이 같은 메시지를 담기 위해 인물들을 완전히 선하거나 악하게 그리지 않았다"라며 작품의 해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다양하고 복잡한 존재가 우리'라는 키워드였다고 전했다.

"개의 심장" 공연사진_명랑하기만 했던 개 샤릭은 사회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간의 교활함을 갖게 된다. /(사진=임종선)
"개의 심장" 공연사진_명랑하기만 했던 개 샤릭은 사회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간의 교활함을 갖게 되며, 점점 인간으로서의 자격과 대우를 요구한다. 그에 따라 필립과 그의 조수 보르멘딸리는 개인간 태도와 발언들로 자주 부딪히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갈등이 반복, 심화된다. (사진=임종선)

인간의 뇌하수체와 생식기를 이식받으며 사람이 된 개 샤릭은 동시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이 되었지만, 개의 본성을 버릴 수 없다. 공상집단 뚱딴지에서 한 번씩 보여주던 동물 연기가 있었기에 조금은 익숙할 듯하던 이의령 배우가 연기하는 샤릭은 그에게도 개에게서 인간으로 변화하는 중간단계인 ‘개인간’의 표현은 쉽지 않았다. 작품의 인물 중 가장 생각이 없는 듯해 보이지만, 그런 샤릭을 그럴듯하게 넘어 샤릭 자체를 연기한 이의령 배우는 자신의 허들을 한 단계 넘은 듯 하였다.

의사 출신인 작가 불가꼬프는 당시 유행하던 화제, 즉 과학의 발달이 가져올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에 대하여 자연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관심은 작품 속에서 주인공 필립이 개 샤릭을 새로운 인간 샤리꼬프로 변경시키는 수술로 나타난다. 작품에서 작가는 개를 인간으로 변형시키는 비자연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수술을 볼셰비끼의 파괴적인 혁명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도 자연에서와 같은 법칙이 존재하며, 변화랑 과정을 무시해 버리는 혁명적 방법이 아닌 자연의 진화와 같은 점진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개의 심장"을 함께 만든 사람들_음악감독(배승혜), 각색(고진), 조명디자이너(이혜지), 보르멘딸리(김태훈), 지나(김지유), 쉬본제로(김마로), 협력연출(양정현), 조연출(김승덕), 기획(씩밝몽키), 음향감독(rainbow99), 바젬스까야(서현성), 필립/연출(전중용), 분장/의상(전주영), 분장어시스턴트(이혜인), 샤릭(이의령), 빼스뜨루히나(김지연) /(사진=Aejin Kwoun)
"개의 심장"을 함께 만든 사람들_음악감독(배승혜), 각색(고진), 조명디자이너(이혜지), 보르멘딸리(김태훈), 지나(김지유), 쉬본제로(김마로), 협력연출(양정현), 조연출(김승덕), 기획(씩밝몽키), 음향감독(rainbow99), 바젬스까야(서현성), 필립/연출(전중용), 분장/의상(전주영), 분장어시스턴트(이혜인), 샤릭(이의령), 빼스뜨루히나(김지연) (사진=Aejin Kwoun)

바람(wind)처럼 자유롭게 존재하며, 바람(hope)처럼 살고 싶은 연극집단 '극단 바람처럼'의 작품 "개의 심장"을 본 관객들은 자연을 거스르고 도덕적 관념을 위배하는 생물학적 돌연변이에 집중할 수도, 지금의 자유경제주의에 익숙해진 우리가 주택의 공동소유화에 대해 집중할 수도, 주택관리 위원회에 쉽게 선동되어 버리는 샤릭이 측은할지는지도 아니면 언론 등에 쉽게 동요하는 대중과 변화하는 샤릭을 동일시한 작가에게 불편함을 느낄는지도 모르겠다. 불가꼬프가 꿈꾸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지금 우린 필립이 되어 무언가에 메스를 대고 있는 입장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세상을 위해서 그 메스를 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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