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들어가 체육부에 발령받고 처음 담당한 종목 중 하나가 태권도였다. 별로 기사감이 나오지 않는 마이너 종목이었음에도 여러 해 큰 흥미와 애정을 갖고 취재했다. 해외여행 하는 것이 극히 어려웠던 81년도에 처음 외국(미국 멕시코) 구경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태권도를 열심히 취재한 덕분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해외 태권도 취재를 다녔는데 그때마다 외국에 진출한 태권도 사범들이 대한민국의 국위를 드높이는데 큰 활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태권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경기장에서의 태권도 뿐 아니라 무도 태권도의 역사와 인맥까지 취재하게 되면서 태권도가 한국 고유의 무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70년대, 80년대 태권도는 지금처럼 통일된 단체(국기원 WTF  태권도협회 등)가 아니라 무덕관 지도관 송무관 등으로 갈라져 있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학생이나 기술자, 노동자로 일본에 갔던 사람들이 공수도를 배웠다가 해방 후 각 지방에 문파를 만들어 각자 자기가 일본에서 익힌 자기 류의 기술과 운동방식을 보급했기 때문이다.

태권도란 이름 자체가 일본 주오대에 유학하면서 공수도를 배운 고 최홍희가 이승만 시절 ‘다리 跆’ ‘주먹 拳’을 따붙여 만든 것이다. 이렇게 태권도의 역사를 설명하면 어떤 이는 나를 영락없는 친일파로 몰지 모른다. 어떻게 우리의 고유 무술이고 국기이며 국위선양의 일등공신이기도 한 태권도의 뿌리가 일본에 있다는 것이냐며 부르르 떨지도 모른다. (실제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각 스포츠의 종주국이 어디냐고 따지며 거기에 온통 명예와 자존심을 거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 따로 없다.(음식도 마찬가지)

축구 종주국은 영국이지만 남미 사람들이 더 열광하며 펜싱 종주국은 프랑스 이탈리아 아랍 등이지만 요즘은 한국사람들(내 손녀들 포함)이 더 열광한다.

어떤 스포츠(무도)는 원형이 그대로 지켜진 채 내려오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원형이 확 바뀌어 전혀 새로운 스포츠(무도)로 재탄생하기도 한다.(음식도 마찬가지. 한국에 와서 팔자 고친 고추를 보라)

일본 공수도(가라데)도 오키나와데를 수입 가공한 것이며 오키나와데도 중국의 쿵푸를 수입 가공한 것이다. 그래서 공수도 역시 수입 당시에는 당수도(중국 당나라 무술이란 뜻)라고 소개됐는데 나중에 중국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당唐’ 과 발음이 같은 ‘공空’으로 바꾼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 무도인들은 나름 공수도를 쿵푸와는 전혀 다른 무도로 발전시켰고 한국 태권도인들은 쿵푸는 물론 공수도와 전혀 다른 무도를 재창조했기 때문에 오늘날 올림픽 등 각종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의 태권도, 일본의 공수도, 중국의 쿵푸, 각각의 종목으로 기량을 겨루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떠드는 것은,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감이 있긴 하지만) 음식 평론으로 인해 터무니없는 친일 프레임이 덮어씌워질 뻔 한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선생의 분노에 지극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3족을 멸해야 마땅한 대역죄에 해당하는 친일 혐의를 아무한테나, 아무 때나 덮어씌우면 안 된다.

황 선생은 음식에 관해 자기가 아는 진실을 이야기했다. 불편한 진실이라면 맞닥뜨려 이겨내야지, 국뽕에 취하거나 집단주의에 휩쓸려 (사실 나도 종종 국뽕에 취하기는 하지만) 피하거나 숨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더구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진실을 왜곡까지 해가면서 상대를 공격해서는 안 될 일이다.

황교익 선생에 대한 공격 중에서 그가 중앙대를 나왔기 때문에 중앙대 나온 이재명 지사가 그를 임명하면 안 된다는 논리도 있는 것에 놀랐다. 내 평생 서울대 나온 이가 서울대 나온 동문을 뽑는 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좀 사람답게 살자. 건국대 나온 내가 다 창피하다. 나는 음식평론가 황 선생은 아주 오래 전 알았지만 그의 출신 대학은 이번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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