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까지 아트사이드에서 동시전시
송진아, 나무조각 ‘내면아이’ 치유기록 보는듯
이수경, 무(無)에서 오는 편안함 화폭에 담겨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탄탄한 작업을 통해 오가면서 연결시켜 나름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는 두 여성작가의 전시가 18일까지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린다.

송진아는 오래전 그의 이 첫 전시가 열리던 날의 풍경이 여전히 아른거리는 작가다. 한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펑펑 목놓아 울었다. 그냥 눈물이 난다고 했다. 칼을 쥔 여인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런 작품앞에서 눈물이라니... 공감의 치유가 이뤄지고 있던 풍경이었다. 누구나 우리는 ’내면아이‘를 가지고 있다. 어린시절 정서적 학대등 치명적인 상처가 성인이 되어서도 ‘어른아이’로 남게된다면 불행의 씻앗이 된다. 치유를 통해 ‘놀라운 아이’가 되면 창조적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 된다. 송진아 작가가 그렇다.

가만히
가만히

“꿈을 꾸었다. 작업실을 등지고 푸른 녹색의 옷을 입은 여인이 대여섯살쯤 되어 보이는 딸의 손을 잡고 차도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가로수 아래 모래 더미에 발을 반쯤 묻고 서성이는가 싶더니 좌우살핌도 없이 당당히 길을 건너갔다. 자라지 못한 어정쩡한 아이들을 15년쯤 만들다 보니, 여자임이 불편한, 손가락을 빨던 내 속의 어린아이를 온전히 나이를 먹여 떠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비로소 여자 성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울지도 말고 묻지도 않는 아름다운 날들을 위하여!“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의 작품이 따듯해졌다. 위트가 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의 감정을 담고 있다. 버려진 나무, 돌, 쓸모를 잃은 일상적 사물들이 관람객과 소통함으로서 다시금 의미를 갖도록 한다. 나무조각에서도 나무결을 그대로 살린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주변 생태계와 공존하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자 한다.

아름다운 날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날들을 위하여

작가는 사회적 성 역할에 대한 반감으로 혼란을 겪었던 시기를 건너 내면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수용하게 된다. 개성 넘치는 여성조각가의 신작을 볼 수 있는 자리다.

이수경은 추상화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작가다. 세잔에서 그 전통을 찾고 있는 프랑스 추상미술은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 칸딘스키의 뜨거운 추상으로 정의되며 그 정점을 맞이하였다. 이 후 많은 작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재해석 되면서 프랑스 추상회화의 전통과 맥을 이어왔다. 현대 프랑스의 추상회화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장르들과 섞여 현대 추상회화의 다양한 면모들을 보여주고 있는 양상이다.

프랑스, 벨기에, 한국 등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수경 작가는 순간의 직감과 무의식에서 오는 흔적들을 선의 겹침과 반복을 통해 추상적인 기법으로 캔버스에 표현한다. 작가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조형적 요소들을 불규칙적으로 마치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그리는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진 듯 다양한 색과 면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행위의 결과들을 작가의 조형적 감각으로 다시 추상한다. 색을 직감적으로 고르고 거기서 파생된 기분을 손이 가는 대로 그려보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반적인 관념들을 버리고 실재하는 순수한 시각과 감정들을 표현하여 그림에 투영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추상미술을 지향한다.

”나의 행위는 익숙한 제스처의 반복이 아니라 한 순간 순간의 직감에서 나오는 흔적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첫 단계의 시작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또한 변형시키고 행위에 행위가 겹쳐지고 다른 형태를 덧붙이며, 이렇게 쉴 새 없이 캔버스를 드나드는 동안 예상치 않은 형상들이 천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의 시각과 행위의 왕복은 어떠한 특정한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행위는 캔버스 평면이 주는 범위에 대한 인식, 그 구조, 비율 등을 고려하며 조형화 되어간다. 미리 기획된 선험적 생각으로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기대하지 않고 상상하지 않은, 일상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들의 발견과 만남을 통해서 하나하나 형상화되어 간다.

앞서 언급한 형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름을 지어줄 수 있는 그런 형태들은 아니다. 이들은 확실한 색깔들로,간 혹 대조적이기도 하고 조화롭기도 하며 두껍게 또는 얇게 칠해지기도 한다. 또한 마치 평면에 붙은 듯 하기도 하고 꼭 걸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서로 어우러지기도 한다. 이렇게 껄끄럽고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파라독스(Paradox, 역설적 상황)을 형성한다. 이러한 특이한 조형적 형상들은 한 평면에서 각각 스스로 존재하면서도 함께 공존한다.

이렇게 많은 의문의 순간들이 쌓여서 작품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이번 전시는 몇 년 전부터 한국과 프랑스 를 오가며 작업한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이 기회를 통해 새로운 타인의 시각과 함께 많은 의구심을 나누며 소통해 보고 싶다.“

그의 작품에서는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무(無)에서 오는 편안함이 담겨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을지 모르는 새롭고 자유로운 무의식의 감정을 통해 늘 반복되는 생각의 흐름을 잠시나마 멈추고 휴식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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