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쁜 일이 결코 나쁘지만 않고 좋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지요. 이와 비슷한 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도 있고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古事)도 있습니다.

전화위복은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새옹지마는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출전은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입니다.

옛날에 중국 북쪽 변방에 사는 노인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 낙심하였는데, 얼마 뒤에 그 말이 한 필의 준마를 데리고 와서 노인이 좋아하였습니다. 이후 그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말에서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어 다시 낙담하지만, 그 일 때문에 아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고 목숨을 구하게 되어 노인이 다시 기뻐하였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까지 3백 년 동안 인도 북부를 통치한 이슬람 왕조인 무굴제국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굴제국의 아크바르 왕에게는 ‘비르발’이라는 신하가 있었지요. 비르발은 힌두교도이지만 지혜를 인정받아 회교도인 왕의 재상이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늘 함께 다니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비르발에게는 왕의 신경을 건드리는 습관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모든 일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아크바르 왕이 검술 훈련을 하다가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잘렸습니다. 모든 신하가 공포에 휩싸였지만 비르발은 아무 동요 없이 서 있었지요.

그것을 보고 왕이 말했습니다. “내 엄지손가락이 잘려 피를 흘리는데 그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서 있군.” 비르발이 “당연히 염려가 됩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결과적으로는 다 좋은 일입니다.” 아크바르는 자신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데, 비르발의 말이 철학에만 관심을 갖는 것에 화가 나 소리를 칩니다.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내가 죽기를 바라는가? 이 자를 당장 지하 감방에 가두어라!” 호위병들에게 끌려가며 비르발이 한 마디 합니다. “이 또한 이유가 있어서 저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궁극적으로 좋은 일입니다.”

왕은 손가락 절반을 잃고 곧 부상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얼마 후 아크바르는 밀림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호위병들보다 앞서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순간 매복해 있던 원시 부족이 왕을 덮친 것입니다. 아크바르는 그물에 휘감긴 채 밀림 속 광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부족들은 그가 누구인지도 신경 쓰지 않았지요.

단지 밀림의 신에게 바칠 희생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희생 의식에 맞게 포로의 옷을 다 벗기고 알록달록하게 장식을 했습니다. 포로가 제단으로 끌려가는 길목에서는 부족민들이 춤을 추며 괴성을 질렀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왕은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지도 못했습니다.

부족의 사제(司祭)가 긴 칼을 휘두르며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원을 그리며 포로의 둘레를 돌면서 여러 각도에서 몸을 살폈지요. 신에게 바치려면 완벽한 희생물이어야 했습니다. 갑자기 사제가 왕의 잘려진 손가락을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이 자는 신에게 바치기에 부족하다. 흠집 있는 자를 신에게 바칠 순 없다.” 안타까운 탄식이 군중 속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사제가 포로를 묶고 있던 넝쿨을 단칼에 끊었습니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발로 차 밀림 밖으로 추방시켰지요. 죽기 직전에 가까스로 풀려나 왕궁으로 돌아온 아크바르는 비르발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겪은 일을 설명하며 말했습니다. “그대가 옳았소. 내가 손가락 하나를 잃은 것은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야만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 돌아올 수 있었소.”

그러고 나서 비르발에게 물었습니다. “내 경우는 그렇다 치고, 그대는 내가 감방에 가뒀을 때 왜 자신에게 좋은 일이라고 했는가?” “세상에 다 나쁜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좋은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만약 제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았다면 오늘 저는 당연히 폐하와 함께 사냥을 나갔을 것이고, 함께 야만인들의 포로가 되었을 것이며, 당연히 손가락이 온전한 제가 희생물로 바쳐졌겠지요.” 아크바르는 그의 지혜에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그렇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는 것은 진리이다.”

어떻습니까?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이 전 생애에 걸쳐 그려 나가는 큰 그림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나쁜 일이 좋은 일’이라는 격언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불행은 일어날 때부터 이미 그 안에 행운의 부적을 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삶에 일어나는 나쁜 일들은 ‘불행을 가장한 기쁜 일(blessing in disguise)’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먼 훗날 우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결과를 얻기 위해 그때 그 일이 일어난 것이었어. 그 일은 선물이었어!” 나쁜 일이 좋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지금 힘들더라도 좋은 날이 오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9월 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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