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의 문인 한유(韓愈)/이미지 출처:나무위키
중국 당나라의 문인 한유(韓愈)/이미지 출처:나무위키

당나라의 문인 한유(韓愈)는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 ‘논회서사의상(論淮西事宜狀)’에서 이소(李愬)가 오원제(吳元濟)를 토벌할 때, 치청(淄靑)‧항기(恒冀) 지방의 관리들이 오원제를 구원할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겁 많고 나약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저 ‘허장성세’했을 뿐이라고 쓰고 있다. 이것이 ‘큰 소리로 떠벌인다.’는 뜻의 ‘허장성세’가 직접 거론된 대목이다.

병은 궤도다. ‘허장성세’도 병가에서 보자면 궤도의 하나에 속한다. 그 뜻은 가짜를 진짜로 혼란 시켜 적을 현혹한다는 것이다. 고대 전쟁에서 이것은 약세에 놓인 쪽이 자신을 보존하고 때를 기다렸다가 반격하는 계략으로 활용되곤 했다.

기원전 555년, 진(晉)이 제(齊)를 정벌하면서 치른 ‘평음(平陰) 전투’는 ‘허장성세’로 승리를 거둔 대표적인 사례에 속할 것이다. 그해 여름, 제군은 노나라의 북쪽 국경을 향해 진군했고, 진 평공(平公)은 원수 순언(荀偃)으로 하여 제를 정벌하게 했다. 10월, 진군은 동으로 황하를 건너 송(宋)‧위(衛)‧정(鄭)‧조(曺)‧거(筥)‧주(邾)‧등(藤)‧설(薛)‧기(杞)‧소주(小邾) 등 모두 합쳐 10국의 군대와 노나라 국경 안쪽 제수(濟水) 남안에서 합류하여, 곧장 제나라 국경을 향해 진군해 들어갔다.

이 소식을 접한 제나라 영공(靈公)은 몸소 대군을 지휘하여 적을 맞이했다. 쌍방은 평음성(平陰城-지금의 산동성 평읍) 아래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싸움 태세에 돌입했다. 제 영공의 부하들은 군사를 나누어 평음 이남의 험준한 요새인 태산(泰山)쪽을 지키고자 건의했으나, 영공은 듣지 않고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올리는 한편 참호를 깊이 파고 수비 태세에 들어갔다. 진군은 제군이 섣불리 나서 맞싸우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터라 주력군으로 평음을 공격하게 하고, 일부 부대는 노(魯)‧거 두 나라 국경을 우회하여 기몽산(沂蒙山) 지구를 넘어 제나라 수도인 임치를 습격하게 했다.

군대가 나누어지고 작전이 개시되었다. 진군의 사령관 순언은 중군의 부사령관 사개(士匃)에게 명령하여 평소 사이좋게 지내던 제나라 대부 자가(子家)에게 귀띔하게 했다.

“진은 노‧거 두 나라와 함께 이미 전차 1천 승(사실은 ‘허장성세’였다. 당시 진과 나머지 10국의 총 병력은 십만을 좀 넘는 정도였다)으로 노‧거 국경에서 곧장 제나라 수도 임치를 향해 질풍과 같이 달려가고 있다. 임치가 함락되면 제나라는 망하는 것이니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되지 않겠느냐?”

순언은 임치를 공격하는 병력을 크게 과장하여 말했다. 그 말을 입증시키기 위해 순언은 평음 이남의 산과 늪으로 둘러싸인 험준한 곳에다 가짜 깃발을 꽂아 마치 진지인 것처럼 꾸몄다. 또한 허수아비를 잔뜩 만들어 옷을 입히고 전차 위에 세워놓았다. 전차는 모두 왼쪽에 한 사람만 타게 했다. 나무를 베어 가지를 전차 뒤에 묶어 산길을 끌고 다니며 땅에 자국을 내서 진군의 수가 많다는 것을 과시했다.

순언은 상‧중‧하 3군을 좌‧중‧우 세 방향에서 평음성을 향해 진군하도록 격려했다. 제 영공이 평음 동북쪽의 무산(巫山-지금의 산동성 비성 서북)에 올라가 진군을 내려다보니 산과 늪지대의 험준한 요충지마다 모조리 깃발이 휘날리고 전차가 마구 왔다 갔다 하며 자욱하게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본 영공은 진군의 위세에 그만 겁을 집어먹고 즉시 철군 명령을 내려 그날 밤 동쪽으로 퇴각했다. 진군은 제군 쪽에서 말울음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다음 날 새벽 평음성에는 새떼들만 잔뜩 모여들었고, 제군은 이미 도주하고 없었다. 이리하여 진군은 평음성을 차지하고 맹렬한 공격전을 펼쳐나갔다. 철수하는 제군은 조직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데다가 내부에 알력까지 생겼다. 그러나 영공은 자신의 목숨만 돌보며 임치성으로 줄행랑을 쳤다. 12월 3일, 진의 주력군은 우회해서 온 부대와 임치에서 합류하여 공세를 펼쳤다. 사면에서 공격을 당하던 영공은 일부 병력으로 포위를 뚫고 우당(郵棠-지금의 산동성 즉묵현 남쪽)으로 달아났다.

평음 전투에서 진과 연합군은 수적인 면에서 우세에 있었지만 절대 우세는 결코 아니었다. 만약 제나라 영공이 부하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리한 지세와 넉넉한 병력을 이용했더라면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공은 군사 전략을 제대로 모르는 인물로, 그저 참호만 깊게 파고 적을 방어하는 전술을 취했고 또 적의 ‘허장성세’에 넘어가 성을 버리고 도주하고 말았다.

병은 궤도다, 반드시 의심해야 하지만, 잘못 의심하면 패하고 만다. 근거 없는 의심은 실패를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병은 속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이는 군사 투쟁의 커다란 특징이다. ‘허장성세’는 일종의 ‘기만술’이다. 상대를 의심하게 만드는 전술에 능하면 상대를 제압하지 제압당하지 않으며, 소수로 다수를 물리칠 수 있으며, 적은 대가로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상대를 의심하게 만드는 데 능숙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의심이 많아 적의 ‘시형법’에서 ‘실체’를 읽어내지 못하여 적에게 이용당하면, 병력이 적보다 많더라도 이기지 못한다. 총명한 지휘관이라면 ‘시형법’으로 적을 현혹하여 적을 착각과 오판에 빠뜨리는 데 능해야 하며, 또 분석에 능해서 하잘것없이 보이는 것을 보더라도 그 진위를 구별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허장성세’의 성공은 지휘관의 지능수준과 용병술의 수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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