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화살표 20주년 기념공연

"준생" 사진 /(사진=Aejin Kwoun)
"준생" 사진 |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두 사람은 누구일까? 무슨 이유로 서로에게 이렇게 하는 것일까?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안중근의 역사와 타임슬립, 팩트와 픽션이 만난 팩션 연극 “준생”이 안중근 서거 111주년 극단 화살표 20주년 기념공연으로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선돌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안중근의 미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권리장전2020친일탐구’의 첫 번째 공연으로 관객들과 진지한 고민을 나누었던 이번 작품은 안중근과 안생의 조금 더 인간적인 면모와 주변 인물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준생"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준생" 공연사진 | 이번 작품에 새로이 합류한 준생 역 서진원 배우는 극 초반부터 강렬한 압도감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사진=Aejin Kwoun)

안중근 장군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당일 새벽,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그의 은신처에 숨어든다. 그 남자는 안중근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면 참혹한 미래를 만들 것이라며 거사를 포기할 것을 종용한다. 안중근의 영웅적인 거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과 대한의 미래는 참혹하기만 하다. 안중근 장군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조국의 참혹한 미래를 알고도 과연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준생" 공연사진 | 한치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촛불만을 의지해 주변을 살피는 한 남자의 뒤로 새까만 그림자가 보인다. /(사진=Aejin Kwoun)
"준생" 공연사진 | 한치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촛불만을 의지해 주변을 살피는 한 남자의 뒤로 새까만 그림자가 보인다. 다양한 역할의 코러스를 연기한 진초록 배우와 진정윤 배우는 그들의 매력이 더해진 역할해석으로 극에 몰입감을 더해주었다. /(사진=Aejin Kwoun)

‘망설임의 윤리학’을 저술한 우치다 타츠루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뒤틀려’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국가와 국기에 대해서는 ‘애착과 반감’을, ‘자부심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 근대국가 국민의 자연스러운 실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미국인, 스탈린주의를 경험한 러시아인, 비시 정권을 경험한 프랑스인, 나치즘을 경험한 독일인, 문화대혁명을 경험한 중국인...(일본 저자는 주권침략을 경험한 한국인에 대해서는 열거하지 않았다) 어느 국민이건 모두 똑같다.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온 여러 어리석은 짓들. 그것과 동시에 국가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여러 위업들. 그 양쪽을 동시에 응시하려고 하면 우리 마음은 ‘뒤틀려’ 버리는 게 당연하다 그것을 어느 한쪽으로 정리하려고 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시대를 넘나들며 무수한 위정자들의 작은 선택 하나로 민중들은 크나큰 고통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숨을 위시한 크나큰 선택까지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선택도 모두의 행복을 얻을 순 없다. 그렇기에 영웅들의 일대기를 들을 때마다 항시 그 가족들의 생각과 선택 그리고 원하든 원치 않든 짊어지게 될 짐이 떠오르게 된다. 국가를 생각하면 드는 '뒤틀려'있는 감정으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준생" 커튼콜 사진 /(사진=Aejin Kwoun)
"준생" 커튼콜 사진 | 공동작가이자 안중근을 연기한 임기정 배우의 고민과 새로이 합류한 배우들의 여러 고민들이 무대에서 전해오는 느낌을 받은 이번 공연이 더욱 탄탄해져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플랫폼을 다가오는 열차 소리를 들으며 안중근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준생은 무엇을 위해 그를 막고 싶었던 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커튼콜 장면... /(사진=Aejin Kwoun)

‘첩과 향락을 즐기는 데 편리했던 조선어의 절멸을 바란다. 나는 생명의 원리를 파악한 말로써 일본어를 사랑한다’, ‘조선인이 향상·발전해서 일본 내지인처럼 훌륭하게 될 때, 이 예술의 세계도 실현될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조선인은 심지어 여급이나 창부로부터도 환영받지 않는다(문학사 현영섭)’, ‘좋은 일본인으로서의 대동아의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 단계의 조선의 교육 방향이라고 생각한다(이화고녀교장 신도순)’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에 수록된 내용은 당시 소위 엘리트들이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쓴 글이다. 이 글들을 읽으며 느껴지는 거부감과 부끄러움은 ‘애국’이라는 이름의 감정일까?

개인의 수양을 통한 삶의 행복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만을 강조한 것이라면,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에게 사회의 행복이라는 것을 함께 겹치우며 개인과 사회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고민은 고고한 철학자들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사회에 순응하며 의식주 고민 없이 살아가는 것은 행복일까?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생에게 도덕적인 굴레를 씌운다는 것은 후대 우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거부감과 부끄러움이 들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아래는 이번 작품의 공동작 및 연출을 맡아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정세혁 연출과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지난 권리장전 때 보았던 작품과 이번에 다시 만난 작품은 여러 변화가 보였습니다. 연출적으로 이야기들에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초연 이후) 지인들, 연극인들이 좋은 작품이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과분한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좀 더 확장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씀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권리장전 때 공연에서 코러스들(공연에 드러나진 않지만, 저희 대본에는 ‘기사’역과 ‘회생’역으로 구분하였습니다)이 단순히 어떤 마녀 같은 이미지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준생의 그림자·후회·연민·트라우마 등 여러 이미지와 동시에 여러 역할을 겸하면서도 중근, 준생과 잘 어울려 가길 희망했습니다. 극적으로 더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길 원했습니다. 과유불급이 아닐까 걱정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고, 좋은 평가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준생과 안중근 그리고 코러스들의 캐스팅 과정과 연출디렉팅 에서 가장 중요히 여겼던 점이 궁금합니다.

준생 역 캐스팅은 나이와 경력이 많은 선배 배우를 캐스팅하기를 희망했고, 잘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준생이 안중근보다 나이가 많으니까요.

코러스들은 중성적인 이미지의 여배우들을 캐스팅하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는 배우를 원했습니다.

연출디렉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각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기를 원했습니다. 중근, 준생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코러스들의 다양한 역할들 속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드러나기를 바랬습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극단화살표의 차기작 소식을 알려주세요.

10월에 우리 극단이 주최 주관하는 단막 연극제. ‘제2회 일편단심 연극제’가 3개월간 단막극장에서 열립니다. 우리 극단은 12월 마지막 주에 김환일 작가의 ‘양팔저울’을 공연합니다.

11월 셋째 주에 극단 화살표 20주년 기념공연 2탄. 제가 직접 쓴 작품 ‘팩트FACT’를 후암스테이지 2관에서 공연할 예정입니다.

"준생"을 함께 만든 사람들_연출(정세혁), 준생(서진원), 중근(임기정), 조연출(신그린), 기사(코러스, 진초록), 기사(회생, 진정윤), 조연출(김소윤) /(사진=Aejin Kwoun)
"준생"을 함께 만든 사람들_연출(정세혁), 준생(서진원), 중근(임기정), 조연출(신그린), 기사(코러스, 진초록), 기사(회생, 진정윤), 조연출(김소윤) /(사진=Aejin Kwoun)

2001년 창단하여 창단 20주년을 맞이한 극단 화살표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전진하고 있다. 20여 년간 끊임없이 창작과 실험과 시도로 예술적이고 혁신적이면서도 대중적이고 즐거운 공연 문화의 창출을 목표로 동시대 작가들과 예술적 비전을 공유하고, 여러 페스티벌에서 타 극단, 동시대 연출들과의 교류를 통해 동시대성을 획득하려고 하는 한편 이번 작품과 ‘팩트 FACT’등의 작품으로 역사와 현시대 사회성을 작품에 담으며 관객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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