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숙희" 공연사진_1987년 1월 9일 김포공항에서 2차로 기자회견을 가진 윤태식(극중 이상석). 당시 대한민국 언론들은 이 사건을 "북한 여간첩이 미인계로 순진한 남편을 꼬드겨 홍콩에서 월북시키려다 남편이 가까스로 탈출한" 사건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국가기관이 범죄자가 면피를 위해 짠 시나리오를 정권의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무고한 피해자를 간첩으로 몰고 유족들의 삶까지 파괴한 초유의 사건이 있었다. 지난 1987년 ‘여간첩 수지 김’ 이야기로 피해자는 억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 당시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당시 드라마에 ‘수지 김’이라는 여간첩 배역이 등장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당시 홍콩에서는 ‘수지 김은 간첩이 아니며, 윤태식에 대한 납치 흔적은 없다’라는 보도가 계속 나왔지만, 인터넷이 없던 당시 한국에서는 그런 진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숙희" 공연사진_ 허위사실로 결혼을 하고 결국 부부싸움 끝에 김옥분(극중 김숙희)을 살해한 윤태식(극중 윤상석)은 이틀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을 찾아가 망명을 시도하지만 거부당한다.  /(사진=Aejin Kwoun)
"숙희" 공연사진_ 허위사실로 결혼을 하고 결국 부부싸움 끝에 김옥분(극중 김숙희)을 살해한 윤태식(극중 윤상석)은 이틀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을 찾아가 망명을 시도하지만 거부당한다. /(사진=Aejin Kwoun)

당시 정부가 배상한 손해배상 사건 중 유례가 드물 정도로 큰 금액이었던 42억 배상금, 수습조차 할 수 없었던 유해, 천인공노할 윤태식의 만행 등에도 불구하고 공소시효가 1~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관련자 대부분을 형사 기소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프로젝트38은 1987년 시대의 희생양으로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썼던 故 김옥분 님과 그 가족들을 기리기 위해 그리고 국민이 있기에 국가는 존재하며,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구상하였다.

"숙희" 공연사진_이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북한의 공작원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했으며, 아내는 북한의 간첩이었다" 주장하지만 현지주재관은 그의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사진=Aejin Kwoun)
"숙희" 공연사진_이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북한의 공작원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했으며, 아내는 북한의 간첩이었다" 주장하지만 현지주재관은 그의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사진=Aejin Kwoun)

지난 9월 29일부터 10월 10일까지 극장 동국에서 펼쳐진, 부르면 눈물부터 나는 그 “숙희”의 이야기는 우리의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일 것이다. 1987년 싱가포르 한국 대사관에 북한에 납치를 당할 뻔했다가 기적적으로 탈출을 한 ‘윤상석’이 한국 대사관을 찾아온다. 그의 납치 공작을 기도한 사람은 그의 아내인 ‘김숙희’. 이 사건 뒤에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숙희" 공연사진_장세동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장은 당시 전두환의 군부 동재 정권의 정권 유지를 위해 간첩 조작 사건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사진=Aejin Kwoun)
"숙희" 공연사진_장세동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장은 당시 전두환의 군부 동재 정권의 정권 유지를 위해 간첩 조작 사건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사진=Aejin Kwoun)

작품 속 그녀뿐 아니라 수많은 그들이 있다. 금정산 공비 사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동백림사건, 민청학련 사건, 부림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혐의 사건, 아람회 사건, 오송회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 등... 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가해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수많은 그들의 대부분은 조사조차 받지 않았을뿐더러 훈장이나 포장을 받고 반납이나 박탈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숙희" 공연사진_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시작했던 김옥분(극중 김숙희)의 불행의 시작은 홍콩에서 만난 윤태식(극중 윤상석)과 결혼한 것 뿐일 것이다. /(사진=Aejin Kwoun)
"숙희" 공연사진_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시작했던 김옥분(극중 김숙희)의 불행의 시작은 홍콩에서 만난 윤태식(극중 윤상석)과 결혼한 것 뿐일 것이다. /(사진=Aejin Kwoun)

수많은 가해자를 정당하게 만들었던 것은 민주주의와 반대로 역행하는 ‘국가보안법’의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의 치안 상태 및 국민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이라는 이유로 날치기 통과는 물론이고 인신구속을 남용케 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심정 형법은 국제인권기구 특히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지속적인 폐지 권고에도 불과하고도,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있는 현재에도 대한민국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라 주장하는 논리적 모순을 당당하게 자행하고 있다.

"숙희" 공연사진_그의 가족들은 대를 이어 고통을 당하였다. 국가안전기획부와 윤태식은 아내를 죽인 것도 모자라 그녀의 가족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고, 가까운 친척마저 지옥으로 떨어뜨렸다. 그들의 고통과 울분은 누가, 어떻게 달래 줄 수 있을까? /(사진=Aejin Kwoun)
"숙희" 공연사진_그의 가족들은 대를 이어 고통을 당하였다. 국가안전기획부와 윤태식은 아내를 죽인 것도 모자라 그녀의 가족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고, 가까운 친척마저 지옥으로 떨어뜨렸다. 그들의 고통과 울분은 누가, 어떻게 달래 줄 수 있을까? /(사진=Aejin Kwoun)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국민적 합의 없이 절차적 정당성을 결한 채 이뤄진 존재 근거가 빈약한 반인권적 법인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숙희”를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숙희’를 만든 사회를 바꾸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바꾸기 위해 움직여야만 할 것이다.

아래는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기에 함께 사실을 알아가길 소망하고 있는 프로젝트38의 대표이자 이번 작품의 연출가인 최현섭 대표와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쉽지 않은 이번 작품을 쓰게 된 배경 그리고 작품을 쓰면서 느꼈을 여러 감정을 듣고 싶습니다.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사건은 언젠가 꼭 다루고 싶다는 생각으로 메모장에 적혀 있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연극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작품은 커튼콜 때 손뼉 쳐주시는 게 조심스러울 정도로 가장 원초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관객분들을 모시고 싶었습니다.

스토리 그리고 전달하고 싶은 스토리텔링도 잘 느껴지던 이번 작품에서 한 명 한 명 캐릭터들이 살아있어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배우들의 캐스팅 과정과 디렉팅 과정이 궁금합니다.

출연하시는 배우분들 중에 같이 작품을 했었던 배우분들도 계시고, 아닌 분들도 계시는데 저와 관계가 다 있었던 배우분들이시고 꼭 함께 작품을 하고 싶었던 배우분들이라 한 분 한 분에게 사명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설명해 드리며 대본을 건네 드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하하 아무래도 1987년을 다루는 작품이다 보니 정서나 대사들이 그 시절과 어긋난 부분들은 없는지 배우분들과 하나하나 고증해가며 진행했던 기억들이 납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프로젝트38의 차기작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성당 배경으로 공연을 해보고 싶은 모티브가 메모장에 적혀 있습니다.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인데 내년에는 꼭 올려보고 싶습니다.

"숙희"를 함께 만든 사람들 /(사진=Aejin Kwoun)
"숙희"를 함께 만든 사람들_대사관 직원2역 외(김성진), 안기부 직원(한상철), 윤상석(송현섭), 안기부 차장(박윤호), 대사관 직원1역 외(한동완), 연출(최현섭), 숙영(맹선화), 숙희/오퍼레이터(민아람), 숙희 부(김영웅), 숙희/오퍼레이터(전혜영) /(사진=Aejin Kwoun)

역사와 연극을 접목한다는 꿈을 가지고 프로젝트38을 이끄는 최현섭 대표는 ‘두 번째 달’을 이은 이번 작품 “숙희”로 그의 꿈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국가라는 커다란 굴레가 만든 공포는 개인의 의식을 멋대로 굴절하게 만들고 있음에도 커다란 굴레에 갇혀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프로젝트38의 꿈은 그들만의 꿈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모두 그들과 함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나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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