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그 누구보다 굳건히 나무와도 같이 무대를 지켜온, 연기 인생 50년을 앞둔 배우 윤석화가 고향과도 같은 소극장 산울림의 무대로 돌아와 자신의 첫 산울림 무대 ‘하나를 위한 이중주’, 임영웅 연출과의 첫 작업 ‘목소리’, 장기공연의 신화를 이끌어낸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감동을 재현하는 아카이브 공연 “자화상Ⅰ”의 첫 번째 포문을 열었다. 이번 작품에서 윤석화 배우는 이러한 작품들의 연출, 구성, 출연으로 참여하여 하이라이트를 연기, 노래, 안무 등을 통해 자유롭게 재해석하며 풀어내 본인의 무대 위의 삶을 되돌아보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윤석화 "자화상 Ⅰ" 커튼콜 /(사진=Aejin Kwoun)
윤석화 "자화상 Ⅰ" 커튼콜 | 스스로 '고향'이라고 부르는 산울림의 무대에서 임영웅 연출을 비롯한 산울림의 단원들과 동고동락하며 수많은 관객들을 맞이해 왔던 무대에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그는 변치않는 모습과 열정으로 다시 한번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Aejin Kwoun)

지난 10월 21일부터 11월 20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는 이번 작품은 무대 위에서 온 힘을 기울이는 윤석화 배우의 그 불꽃 같은 열기와, 관객과 소통하며 연극에 생기를 불어넣던 그 유쾌한 입담과, 극장을 나선 후에도 전율처럼 남겨지던 그 강렬한 여운. 배우도, 관객도 나이를 먹고 어쩌면 희미한 기억 속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들을, 윤석화 배우는 관객들과 함께 마주 보며 대답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그리웠던 시간을 선물해 주고 있다.

​윤석화 "자화상 Ⅰ"_박상원 배우  | 공연 기간 윤석화 배우를 위해 배우들이 자처해 일일 하우스매니저를 하며 관객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주고, 공연 시작 전 공연 안내를 하며 그의 무대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사진=Aejin Kwoun)
​윤석화 "자화상 Ⅰ"_박상원 배우  | 공연 기간 윤석화 배우를 위해 배우들이 자처해 일일 하우스매니저를 하며 관객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주고, 공연 시작 전 공연 안내를 하며 그의 무대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사진=Aejin Kwoun)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하여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연극계의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하기까지 배우 윤석화를 통해 살아 숨 쉬던 그 수많은 인물을, 그와 함께 울고 웃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마주하는 이들도 무대 위 과거 영상에 대한 추억 또는 처음 접하는 모습과 지금 무대 위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연극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나를 위한 자화상' 공연사진 /(사진=소극장 산울림)
'하나를 위한 자화상(1998.12.14~1989.4.30)' 공연사진 | "음악은 일종의 천국이예요. 음악은 인간을 일상생활로부터 끌어올려 다른 세계로 데려가줘요. 바로 그것이 저의 승리죠.". 의사로서의 의지와 치료에 대한 확신을 가진 펠트만 박사(목소리 김상중)와 자신의 좌절감을 부정하며 상대방에 대한 공격과 냉소주의로 맞서 치료를 거부하는 스테파니(윤석화)는 갈등과 불협화음을 극복하고 삶에 대한 애정과 가치를 회복하는 이중주를 연주할 수 있을까? /(사진=소극장 산울림)

톰 켄핀스키의 원작을 윤석화 배우가 번역과 주인공인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파니 역을 맡아 절망과 구원 사이를 오가는 섬세하고 열정적인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그가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의 심리적 변화가 두드러지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30년 만에 “하나를 위한 이중주”의 스테파니를 새롭고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목소리' 공연사진 /(사진=소극장 산울림)
'목소리(1989.10.27~1990.1.31)' 공연사진 | "꿈을 꿨어요. 깊은 바다에 잠겨 오직 가느다란 공기관으로 연결 되어 있는 
꿈...결국, 당신이 이 전화를 끊으면 그 공기관이 끊어지는 것이네요".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싸우는 이 여인(윤석화)은 원치 않는 죽음과 싸우는 에우리디케이며, 그 여인에게 고문을 가하는 전화는 콕토가 상상하여 무대 위에 투사한 지옥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소극장 산울림)

무대에 능숙한 배우조차 긴장하고 주저하게 했던 장 콕토의 1인극 “목소리”는 그와 임영웅 연출과의 산울림 첫 작업이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전화기 하나에만 의존한 채 배우 한 명이 오롯이 무대를 감당하며 다양한 표현을 해내야만 한다. 70~80년대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지금에는 조금은 답답하게 여겨질는지 모르지만, 전화기 너머 누군가에게 토해내는 그의 절규, 죽음과도 같은 사랑,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그 순간의 감정은 관객들의 가슴 속 깊숙이 감춰왔던 순수했던 시절을 상기하게 만들고 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공연사진 /(사진=소극장 산울림)
'딸에게 보내는 편지(1992.3.20~1992.12.6)' 공연사진 | "내 딸아, 난 노력하고 있어. 생각은 잘 못하지만 난 노력하고 있어. 난 애써서...다시 태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어. 문제는...너무 늦은걸까?". 35세의 가수 멜라니(윤석화)는 사랑하는 딸 마리카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딸이 엄마보다는 더 나은 여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진심을 담아, 멜라니는 세상을 향한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사진=소극장 산울림)

단 한 번의 암전도 없이 90분 동안 무대에서 열연하고 노래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신의 아그네스’ 이후 대중에게 각인된 배우 윤석화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전설적인 공연이었다.  아놀드 웨스커의 원작을 임영웅 연출가가 연출한, 생명과도 같은 딸에게 솔직하게 가감 없이 건네는 어머니의 편지는 모녀지간이기 전에 여자이고 한 사람으로서의 어머니란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커튼콜 인사가 끝난 후, 본공연에서 더해지던 노래와 영국 공연을 위해 준비했던 노래를 들려주는 그의 노래는 여느 가수보다 매끄럽진 않을지 몰라도 배우 특유의 감성 가득한 노래로 관객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고 있다.

윤석화 "자화상 Ⅰ" | 오랫동안 연극인 윤석화의 진정한 팬이자 장르를 넘는 우정을 지속해온 예술가 조덕현이 이번 공연을 위해 '윤석화 오마주'를 제작하였다. 총 3부 작품에 맞춰 3면화(triptych)로 1930년대 헐리웃 스타의 클리셰 스타일을 차용한 이 그림이 씌워진 차막 너머 조명 아래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다. /(사진=Aejin Kwoun)
윤석화 "자화상 Ⅰ" | 오랫동안 연극인 윤석화의 진정한 팬이자 장르를 넘는 우정을 지속해온 예술가 조덕현이 이번 공연을 위해 '윤석화 오마주'를 제작하였다. 총 3부 작품에 맞춰 3면화(triptych)로 1930년대 헐리웃 스타의 클리셰 스타일을 차용한 이 그림이 씌워진 차막 너머 조명 아래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다. /(사진=Aejin Kwoun)

1985년 3월 개관하여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연극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소극장 산울림은 35년이 넘도록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며 좋은 무대만을 고집해오고 있기에, ‘산울림’이라는 이름은 관객들에게 그 자체만으로 믿을 수 있고, 봐야만 하는 공연으로 각인되고 있다. 한편 ‘윤석화 아카이브’는 아카이브Ⅰ-소극장 산울림을 시작으로 하여, Ⅱ, Ⅲ이 계속될 예정이다.

그가 계속해서 들려줄 아카이브가 벌써부터 궁금하고 궁금해진다. /(사진=Aejin Kwoun)
그가 계속해서 들려줄 아카이브가 벌써부터 궁금하고 궁금해진다. /(사진=Aejin Kw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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