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한국사(근현대사) 수업 102→80시간 방안 논의, 강화 아닌 역행

[ 고승은 기자 ] = 교육부가 이달 중 발표할 2022 개정 교육과정 주요 사항 중엔 고등학교의 한국사 수업 시수를 감축하는 방안이 논의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교육과정은 중학교에서는 근대 이전 역사를, 고등학교는 근현대사를 수업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고등학교 과정이 일방적으로 감축될 시 현대사 부분에 대한 수업이 매우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지난 10월 22일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한국사 필수이수학점 감축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오는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시행됨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도입함으로써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교육부는 지난 10월 22일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한국사 필수이수학점 감축안을 발표한 바 있다. 고등학교에선 근현대사를 수업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현행 102시간에서 80시간으로 축소한다는 내용이다. 그럴 경우 교과서의 뒷부분, 즉 현대사 수업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
교육부는 지난 10월 22일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한국사 필수이수학점 감축안을 발표한 바 있다. 고등학교에선 근현대사를 수업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현행 102시간에서 80시간으로 축소한다는 내용이다. 그럴 경우 교과서의 뒷부분, 즉 현대사 수업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발표된 방안 중에는 기존 6단위의 고등학교 한국사 시수를 5단위로 감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에 따르면 고등학교 3년간 102시간 수업에서 80시간으로 축소, 즉 근현대사 수업이 20% 이상 감축된다. 그럴 경우 교과서의 뒷부분, 즉 현대사 수업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보통 교과서 진도를 나갈 때 뒷부분은 마저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시험 범위에서도 빠질 가능성이 크다. 

현대사는 고대사나 중세사에 비해 우리 삶과 깊게 관련돼 있다. 특히 최근 시기로 올수록 더욱 그러하다. 가장 실생활과도 밀접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에 대한 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정상일텐데, 도리어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민주화단체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5‧18기념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16일 공동 성명서에서 "교육부의 이번 감축안은 사회적 합의로 어렵게 마련한 교육과정 체계를 흔들고 있는 것으로, 교육부의 안대로 실행된다면 한국 현대사 교육, 특히 민주화운동 관련 수업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라나는 청소년이 올바른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현행 한국사 시수를 유지하기를 바란다"고 교육부에 촉구했다. 

앞서 전국 23개 대학 역사교육과에서도 지난 8일 성명서를 내고 “현행 한국사 6단위는 지난 정부에서 집중이수제와 국정교과서 시도로 황폐화한 한국사 교육을 정상화하고 충실한 역사교육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라며 “명분 없는 한국사 시수 감축은 이러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더 큰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질타한 바 있다.

5‧18기념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16일 공동 성명서에서 "자라나는 청소년이 올바른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현행 한국사 시수를 유지하기를 바란다"고 교육부에 촉구했다. 사진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사망자 가족들이 슬퍼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5‧18기념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주4‧3평화재단은 공동 성명서에서 "자라나는 청소년이 올바른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현행 한국사 시수를 유지하기를 바란다"고 교육부에 촉구했다. 사진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희생자 가족들이 통곡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국역사교사모임도 지난 9일 2천1백여명의 역사교사가 참여한 실명선언을 발표하며 한국사 수업시수 감축안 폐기를 촉구했다. 이들은 " "감축안이 시행되면 실제 수업 시수가 줄어드는 과목은 한국사가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시행을 위해선 한국사를 포함한 국영수 등 모든 과목의 시수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영·수 과목 또한 필수(최소) 이수 단위를 현행 10단위에서 8단위로 축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 국영수는 현 기준보다 2~3배 이상 수업이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선 국영수 중심의 '수능'이 입시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에 학교로서도 거의 필연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교육부의 이번 방안이 그대로 시행될 시 현대사 수업의 대폭 축소만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교육부에서 논의되는 '현대사 수업' 축소 논란에, 과거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강행에 반발한 사람들 입장에선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역사교사들의 경우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데 적극 앞장선 바 있는데, 이들 입장에선 현재 '한국사 수업 축소' 논란에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5년 대다수 반대 여론에도 밀실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밀어부치며 과거로 회귀했다. 여기엔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미화해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이른바 '역사 쿠데타'가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5년 대다수 반대 여론에도 밀실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밀어부치며 과거로 회귀했다. 이른바 '역사 쿠데타'라는 비판이 쏟아졌었다. 당시 제1야당(새정치민주연합,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표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국정교과서에 대해 "원천무효" 선언과 함께 '국민불복종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5년 대다수 반대 여론에도 밀실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밀어부치며 과거로 회귀했다. 이른바 '역사 쿠데타'라는 비판이 쏟아졌었다. 당시 제1야당(새정치민주연합,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표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국정교과서에 대해 "원천무효" 선언과 함께 '국민불복종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사진=연합뉴스

당시 제1야당(새정치민주연합,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표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국정교과서에 대해 "원천무효" 선언과 함께 '국민불복종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며 '즉각 폐기'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각계에서 1년 이상 거세게 이어졌다. 

결국 밀실에서 강행한 국정교과서는 박근혜 정권이 국정농단으로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약대로 폐기처분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한국사 수업 축소' 구설에 휩싸이면서, 6년 전 그 일들은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 아닌지 물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