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다고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나를 기억해 줘!"
[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유쾌하고 발랄하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꽂히는 듯한 작품 “지하 6층 앨리스”는 ‘가슴 아프지만 대단하지 않은 것’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청소노동자 ‘앨리스’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수학교수였던 루이스 캐럴이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되어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이 보는 나와 나 자신이 다르지 않다고 상상하라’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게 하는 이번 작품은 참 가슴 아리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그들이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세상을 이상하지 않게 여기는 우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지난 12일부터 21일까지 연우소극장에서 75분간 펼쳐진 일상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 즉 ‘그림자 노동자’들을 이야기하는 작품 “지하 6층 앨리스”의 희곡을 쓰고 연출한 극단 기지의 대표 박주영 연출가는 “앨리스의 모험을 통해 스스로 사라지고 싶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고 누워있던 시절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같은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새로운 첫걸음을 응원하고 싶다”라고 이야기하며 기묘하고 이상한 동화 같은 이야기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하였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틈에 숨어 사라지고 싶었던, 아주 특별하고 보편적인 존재 앨리스는 지하 6층에 살고 있다. 그는 ‘누워있는 학생’의 제안으로 토끼 ‘로잘린’과 함께 지상층으로 모험을 떠나 카우보이(주차안내원), 망태 할아범(경비원), 경자 씨(지상층 청소노동자), 박스병(택배원)을 만나며 희미했던 자신의 존재를 점점 인식하게 된다. 작품 초반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앨리스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한 대사가 반복될수록 관객들은 앨리스는 왜 지하층에 머무르며 지워내고 청소하는 일을 반복해 왔는지, 가슴 아프지만 대단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간다.
20세기 후반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우리의 노동이 왜 이토록 고되고 지루하며 우리의 꿈과 늘 대립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그림자 노동자들은 그나마 급여를 받는 노동자라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작품 속 노동자들은 노동계 안전망 밖으로 밀려나 있는 ‘약한 고리’이면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필수노동자’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의 환경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바꾸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한 것일까?
KERIS(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펴낸 ‘아직 두렵다면? 교사를 위한 인권교육!’에서는 ‘하루 종일 음악을 크게 틀고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벽돌 기술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하종강,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고 말하는 네덜란드 중학생이 있을 수 있었던 데에는 숙련된 벽돌공의 수입과 일반 대학교수의 수입에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본인의 능력과 재능, 적성과 흥미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자유는, 각 직업이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때야만 진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을 방법은 노동운동을 통해 개개인의 권리는 보장받을 때 가능하다.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어 저임금 문제가 해결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과 대우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될 때, 비정상적으로 경쟁적인 입시제도와 교육제도의 문제 또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효과음인 듯한 소리가 들리면 앨리스가 이동한다. '눈에 띄면 안 되는 존재'인 앨리스를 발견하는 이들은 역시 같은 그림자들 뿐이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 모자장수, 공작부인을 만나 방해를 받거나 도움을 받는 것처럼 그림자로 존재하는 이들과 소통하고 이야기하고 위로를 주고 받는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보람을 이야기하며 감사하다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왜 이리 아프게만 들릴까? 나는 다르다고, 갈 곳이 없다고 슬프게 울며 말하는 지친 그들의 손을 잡고 응원해 줄 수는 없을까? 사는 것이 무섭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는 없을까? 그래서 그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며 웃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가슴 아프지만 대단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2020년 연출가 모임 플럭스프로토콜 ‘창작산재-올해의 신작’을 시작으로, 2021년 ‘창작산재-올해의 레퍼토리’로 규모가 작은 창작집단들이 모여 함께 공연을 올리는 소규모 공연예술축제는 국내 가장 큰 문화예술 사업으로 가치 있는 창작을 선보이고 있는 창작산실과 규모는 다를지언정 내실 있는 작품들로 관객들과 함께하고 있다. 올해는 극단 기지,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에스메이커가 함께 하였으며 내년에는 어떤 극단이 어떤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보일지 기대가 모아진다.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