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연출 '조치원-새가 이르는 곳',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장기 창작지원사업 선정작

[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4대 비극 중 가장 유명하고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작품 ‘햄릿’의 출간 당시 원제목은 ‘덴마크왕자 햄릿의 비극(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였다. 덴마크의 왕자가 충청남도의 조치원에서 다시 살아나 제4회 벽산희곡상을 수상했던 한국판 햄릿 ‘조치원 해문이’는 또 다른 질문을 이어나가고 있다.

‘조치원 해문이’의 프리퀄로 햄릿의 숙부인 클로디어스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 '조치원-새가 이르는 곳'은 20여 년간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작가와 연출가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이철희가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2021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초연 당시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공연사진 | 길게 드리워진 긴 그림자는 긴 무대 위에 그의 뒷 모습이 더욱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지게 만든다. /(사진=김솔, 극단코너스톤)
공연사진 | 길게 드리워진 긴 그림자는 긴 무대 위에 그의 뒷 모습이 더욱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지게 만든다. /(사진=김솔, 극단코너스톤)

한국판 클로디어스라 불리는 이번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장기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난 1월 7일부터 오는 23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두 번째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선왕을 살해하고 형수와 결혼하는 햄릿의 클로디어스에 해당하는 만국 역으로 초연에 이어 이번 앵콜 공연에도 이대연 배우가 참여하고 있다. 이대연 배우는 지난 공연보다 더욱 섬세하고 밀도 있는 연기로 형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만국의 인간적인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내며 1차원적 희곡 속 인물을 우리 옆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인물로 만들어내고 있다.

커튼콜 /(사진=Aejin Kwoun)
커튼콜_언년1(정다함), 언년3(곽성은), 언년2(최나라) | 작품 속 언년이라는 인물은 세 명의 여배우가 연기하고 있다. 이철희 연출은 "한 인물을 세 명으로 구성함으로써 만국이 고향을 등지게 되는 트라우마를 강조하고 싶었다. 결국, 고향을 등지게 되는 결정적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함이다."라고 그 이유를 전하였다. /(사진=Aejin Kwoun)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의 깊이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의 횡으로 길게 사용함으로써 극장의 구조와 극 속 기차의 공간을 절묘하게 이루어내고 있는 이번 작품에서 이철희 연출은 관객들을 만국의 서사에 완전히 동화시킨다는 목표가 초연과 달라진 점이라 이야기한다. 불 꺼진 관객석 사이에 길게 뻗은 무대는 주변에 기댈 데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온 만국의 인생을 보여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볼 새 없이 야간 기차 안에서 앞만을 바라보고 있는 승객 중 유일하게 만국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들어주는, 자신을 시인이라 말하는 이는 그를 바라보고 지켜보는 관객들의 시선과 같을는지도 모르겠다.

공연사진 /(사진=김솔,극단코너스톤)
공연사진 | 아버지의 장례식...복수에 물이 차 흥건한 물을 뱉어내던 아버지의 사체...만국 기억 속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다... /(사진=김솔,극단코너스톤)

아름답고 유려한 언어나 형식을 걷어버리고 하나의 이야기에 자신의 철학과 배우들의 매력을 녹아내며 구수하지만 무뚝뚝한 듯한 충청도 사투리로 인간의 비정함을 보여주고 있는 이철희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인간은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다. 하지만 그 마땅한 사랑이 결핍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끝은 무엇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 속에 자신의 생각을 덧입히고 있다.

공연사진 /(사진=김솔, 극단코너스톤)
공연사진 | 마음 기댈 곳 없이 편히 이야기 할 이 없는 듯한 만국과 대화를 이어가는 시를 짓고 싶어하는 한 남자...우리의 인생 하나하나가 규격화 할 수 없고 정의할 수 없는 하나의 '시'일는지도 모르겠다.  /(사진=김솔, 극단코너스톤)

“조치원-새가 이르는 곳”의 만국은 가족에 대한 비관적 정서가 일견 독특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기형도 시인의 시와 겹쳐진다. 이철희 연출은 초반에는 만국과 기형도라는 인물의 구도를 팽팽하게 설계하였으나, 만국의 서사를 중심에 두고 마치 새의 둥지가 새를 감싸듯 기형도라는 인물의 시가 만국의 서사를 침범하지 않고 감싸주기를 의도했다고 전한다.

CAST /(사진=Aejin Kwoun)
CAST_성국,용학(김문식), 남자(장찬호), 홍익회/공장주/어린해문(정홍구), 언년1/엄마(정다함), 당숙/부원(김승환), 만국(이대연), 언년2/추자/현화(최나라), 언년3/당숙모(곽성은) /(사진=Aejin Kwoun)

집을 짓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놓는 기초석이라는 의미를 지닌 극단 코너스톤은 자신들만의 색채를 지닌 독특한 작품들로 차곡차곡 멋진 집을 만들어가고 있다. 서울시립극단 정기공연에 참여할 예정인 극단 코너스톤이 어떠한 집을 만들어 가는지 하나하나 지켜보며, 그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은 관객들에게 지루하지 않은 신선함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17일 추가 발표된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1월 18일 화요일부터 '방역패스' 의무 적용 시설에서 공연장이 제외됨에 따라 관객들은 '방역패스(음성확인제)'가 아닌 코로나19관련 다중이용시설 전자출입명부(K-PASS)를 위해 QR스캔이나 전화체크인(안심콜) 후 입장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공연장 확산 방지를 위한 마스크 착용과 체온 측정, 손 소독제 사용은 이전과 동일하게 시행된다. 이번 일요일까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조치원-새가 이르는 곳'은 관객에게 감사함과 아쉬운 마음을 전하며 전석 50% 굿바이 타임세일을 진행하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