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칼럼] 박스에 갇힌 ‘40대 꼰대들’ 세대가 박스권에 갇힌 후보를 만들어

2030의 주적이 된 40대들

필자는 2030 남성들이 이용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몇몇 인터넷 웹사이트를 자주 둘러보는 편이다. 반면,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 주로 드나드는 온라인 공간에는 여간해서는 접속하지 않는다. 왜냐? 관음증에 중독된 변태 아저씨로 자칫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 피력된 필자의 분석과 견해는 젊은 남자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관찰에 기초했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젊은 남성들이 주축을 이루는 곳에서 적잖이 발견되는 게시물이 있다. 바로 이전세대에 해당하는 40대 중년 사내들의 위선과 표리부동함을 겨냥한 조롱과 야유다.

이를테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내용을 자세하게 꼬치꼬치 인용해가며 야당 정치인들의 불법적 비리와 도덕적 해이를 입에 침을 튀기며 신나게 욕하던 40대 후반 연령대의 부장이 식구들에게 사줄 물건을 회사 법인카드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천연덕스럽게 결제하더라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2030 청년세대에게 우리 사회의 허리로 간주되는 인구집단일 1970년대생 중년세대는 한국의 악의 축이자 앞 다르고 뒤 다른 ‘내로남불’의 진정한 화신들로 인식되는 셈이다.

교회를 나가다 그만둔 사람들에게 신앙생활을 중단한 까닭을 물어보면 열 중 아홉은 기존 신도들이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지나치게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광경을 목격한 일에서 비롯된 충격과 실망감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교인들이 싫어서 교회도 덩달아 싫어졌다는 설명이다.

교회를 더불어민주당에, 담임목사를 공식 대선후보 이재명에, 기성 신자들을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1970년대생 40대들에, 2030 청년세대를 이런저런 인연과 동기로 새롭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초신자들의 위치에 각각 대입해보면 이재명 후보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왜 유달리 인기가 없고 지지율이 낮은지 쉽사리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2030은 이재명 자체를 반대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에 못잖게 그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기성세대인 40대에 대한 환멸과 염증으로 말미암아 그를 외면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포용하고 같이 살아야 한다. 갈라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소위 '세대포용론'을 제시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남녀로 편갈라서, 수도권과 지방으로 편갈라서 싸우고 있다"며 "그들이 왜 싸우겠나? 기회가 적어서 그렇다. 저성장 때문이다. 경제적 기회가 부족한 게 문제"라고 짚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포용하고 같이 살아야 한다. 갈라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소위 '세대포용론'을 제시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남녀로 편갈라서, 수도권과 지방으로 편갈라서 싸우고 있다"며 "그들이 왜 싸우겠나? 기회가 적어서 그렇다. 저성장 때문이다. 경제적 기회가 부족한 게 문제"라고 짚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의 40대는 더불어민주당의 충실한 집토끼이다. 이재명은 40대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집토끼가 산토끼들을 쉬지 않고 쫓아내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집토끼라는 점이다. 2030 세대에게 40대는 그들이 빈번하게 마주하는 꼰대이고, 퇴물이고, 구태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들에서 40대 유권자들로부터 전폭적 응원을 받고 있는 이재명이 2030 세대의 시선에 고루하고 낡아빠진 인물로, 케케묵은 시대착오적 정치인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를 혐오하고 경멸하는 경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서 세계사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그러한 역사적 맥락을 감안할지라도 현재의 남한 땅에서 40대에게 겨눠진 2030의 불만과 분노는 유례없을 지경으로 격렬하고 폭발적이다.

필자는 그 원인이 대한민국의 40대가 선배세대로부터 정확히 잘못된 습성만 선택적으로 물려받은 데 있다고 판단한다. 자기도 못하는 일을 남들에게 강요하는 일그러진 꼰대 근성 말이다.

허나 40대의 직계선배인 50대는 최소한 일관성 하나만은 나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후배세대에게도 무례하고 거칠었지만, 선배들한테도 싹수없고 무지막지했다.

40대는 선배들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떡고물을 나눠주는 윗세대에게는 푸들처럼 비굴하게 꼬랑지를 흔들지만, 자기네의 밥그릇을 위협할지도 모를 아랫세대를 향해선 목줄 풀린 도사견 같이 사납게 이빨을 드러낸다. 강자에게는 어떻게든 다리를 놓으려 시도하고, 약자에게는 필사적으로 성을 쌓으려 광분한다.

박주민과 고민정은 40대의 자화상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당찬 기백을 의협심이라고 부른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잔망스러운 처세를 기회주의로 통칭한다. 힘센 선배들에게는 한없이 고분고분 굴종하면서, 아직은 강력한 권력과 인맥과 자산을 구축하지 못한 후배들에게는 오만하고 권위주의적으로 군림하는 약육강식 기질이 뼛속까지 체질화된 얍삽한 세대. 2030 세대가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40대들의 평균적 특성이다.

이와 같은 1970년대생 중년세대의 부정적 인상은 하필이면 이재명 후보가 몸담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40대 정치인들의 인류학적 좌표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겹쳐지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리한 대선판세를 일거에 만회하고자 야심차게 제기한 50대 용퇴론이 당 안팎에서 어째서 별다른 호응과 반향을 얻지 못하겠는가? 586 중진들이 퇴장해 생겨난 권력의 공백을 채울 것으로 예상되는 김용민, 박주민, 이탄희, 고민정, 이재정 등의 1970년대생 국회의원들이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간도 쓸게도 없이 권력에 맹종하는 비루한 추태를 숱하게 빚어온 탓이다.

이들 제씨들은 작금에는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목표로 뛰고 있다. 그렇지만 여당의 40대 현역 국회의원들이 입을 열 때마다 청년들의 표가 도리어 우수수 떨어져나가고 있음은 작년인 2021년 4월 7일에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이미 확실히 증명된 상태다.

한국정치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은 전통적으로 세대교체의 선봉에 서왔다.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던 박정희의 군부독재는 김대중과 김영삼 쌍두마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과감하게 동을 뜬 40대 기수론의 대두를 계기로 심각한 균열과 내상을 겪었다. 40대 시절의 YS와 DJ는 불이익은 참아도 불의는 못 참는 의롭고 대범한 정치를 펼쳤다. 이재정은, 고민정은, 이탄희는, 박주민은, 김용민은 양김씨와는 정반대로 불의에는 의연히 버텨도 불이익은 잠시도 못 견디는 영락없는 월급쟁이형 정치꾼 행각을 이어왔다. 저들이 40대 기수는 기수이되 ‘40대만의 기수’가 된 연유이다.

종교가 평범한 인민대중의 믿음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도 신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각성해야 한다. 마찬가지다. 이재명 후보가 2030의 신뢰를 확보하려면 40대의 반성과 자아비판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러나 쉰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후배들로부터 벌써 꼰대 소리를 듣고 있는 한국의 ‘40대 K-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성찰하고 변화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전무하다. 그러므로 이재명 후보는 경쟁자인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실수에 수반될 반사이익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박스권 안에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갇혀 있어야만 하는 처지이다.

그럼에도 이재명은 너무 낙담할 필요가 없다. 그는 박스권 안에 혼자 외롭게 갇혀 있지 않다. 후배들에게 어떠한 긍정적 영향과 정당한 권위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40대 중년세대 역시 박스권 안에 옹색하게 갇혀 있기 때문이다. 50대 중반인 필자보다도 정신적으로 수십 년은 더 경직되고 노쇠한 기색이 역력한, 완고하고 꽉 막힌 티가 완연한 남조선 40대들의 무운을 빈다.

* 글쓴이는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초대편집장,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이준석이 나갑니다> 공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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