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장기창작지원사업 선정작

[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라이브 음악과 23명의 배우가 함께하는 구성진 강원도 사투리가 가득한 낭독극 '화전(火田)'이 단 하루 동안 관객들을 만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아리랑의 원조 ‘정선아라리’의 애절하고 서글픈 가락을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겨 주었다. 고려왕조를 섬기던 선비들과 정선지방에 화전을 일구고 살아가던 부락민들의 어색한 공존은 우리에게 불합리와 부조리와 비상식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실마리가 되어줄는지 모르겠다.

"화전" 낭독공연은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든 배우들을 무대에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사진=Aejin Kwoun)
'화전' 낭독공연은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든 배우들을 무대에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정선답사, 정선아리랑역사수업, 소리수업, 한국무용수업 등 몇 년에 걸쳐 준비했던 이번 낭독공연을 꼭 본 공연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사진=Aejin Kwoun)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2022년 신작으로 고려말 조선 초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 '화전'은 역사의 거울에 비추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의 현재를 반추해보고자 한다. 지난 1월 15일 한양레퍼토리 씨어터에서 다양한 매력을 지닌 배우들이 함께 독특한 낭독공연으로 펼쳐낸 이번 작품은 신분이 다른 두 집단이 공존하게 되면서 겪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펼쳐냈다.

"화전" 공연사진 /(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화전' 공연사진 | 두 임금을 모실 수 없기에 강원도 깊은 산골까지 향하기까지 그들의 여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어렵디 어렵게 살고 있는 화전민들과 함께 살게 되며 그들의 애환을 함께 하며 동화하며 무슨 생각들을 하였을까?  /(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1392년 초 늦겨울,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고려의 유신들이 집단으로 은거하던 두문동이 불길에 잿더미가 되고 난 이듬해, 강원도 정선 땅 서운산 깊은 골짜기, 열댓 채의 너와집이 옹기종기 터를 잡은 화전민 부락에 살고 있는 민초들은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하며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기고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꾸역꾸역 모아놓은 귀한 양식을 도난당하고, 도둑맞은 곡식을 훔쳐 간 이들은 행색으로 보나 말씨로 보나 높으신 분들이 틀림없다. 도적이지만 오갈 데 없는 외지인들을 받아들인 부락민들은 그들에게 축난 곡식만큼 마을 일을 시키도록 조치하면서, 정선 서운산 화전민들과 의문의 타지 사람들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된다.

"화전" 공연사진 /(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화전' 공연사진 | 임금이 바뀐들 그들의 생활은 실상 큰 차이가 없을는지 모른다. 정치를 논할 여유는 고단한 그들의 생활 속에 그리 중요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못 배우고 어렵게 사는 이들이라고 사람의 기본적인 도리를 모를리는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주 작은 마음의 생채기는 그들의 어우러진 공생을 깨뜨리고야 만다. /(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우덜은 사는 게 되다 싶으면 아라리 한 자락 풀어대면 고만이래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충절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시를 지어 부르는 것을 지방의 선비들이 듣고 ‘한시(漢詩)’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풀어 알려주면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정선아라리의 시초라 전해지고 있다. 풍자와 해학 속에 한탄과 체념, 애증이 담긴 정선아라리의 애절한 가락은 나라 잃은 비통함을 간직하고, 산속에 숨은 고려 유신들과 척박한 환경이지만 삶을 이어가는 화전민들의 애환을 가슴으로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화전" 공연사진 /(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화전' 공연사진 | 낭랑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해설을 이어가는 우혜민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그들의 생활과 모습은 눈 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제공=창작공동체 아르케)

화전민들은 삶의 역설을 체화한 사람들로 새 생명을 얻기 위해 산을 태우고, 그 산에 다시 새 생명을 피워내는 이들이다. 그들은 집착과 미련을 거두고 초연히 자연의 순리를 따라 기다리고, 거두고, 모든 걸 내려놓는다. 공고한 이념 대립의 시대가 저물고, 새 역사의 물결을 도도하게 기다리고 있는 이때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공동체의 갈등과 균열의 본질을 관객들과 함께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 이번 공연은 ‘공존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작지만, 꼭 필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화전"을 함께 만든 사람들_돌치(한동훈), 고랑(경미), 이랑(윤슬기), 촌장(지춘성), 전오륜(이해성), 전연(송현섭), 박서방(신욱), 김충한(이형주), 변귀수(박현민), 신안(이홍재), 갱내기(김성일), 갈근댁(조은경), 돌치 부(민병욱), 돌치 모(이경성), 덕보(홍상용), 마을사람1(이연우), 키보드연주/음악감독(공양제), 현감(민정오), 해금연주(강댜연), 고천우(이장순), 이수생(김성국), 김위(김태양), 마을사람2(김보라), 마을사람3(나푸름), 해설(우혜민) /(사진=Aejin Kwoun)
'화전'을 함께 만든 사람들_돌치(한동훈), 고랑(경미), 이랑(윤슬기), 촌장(지춘성), 전오륜(이해성), 전연(송현섭), 박서방(신욱), 김충한(이형주), 변귀수(박현민), 신안(이홍재), 갱내기(김성일), 갈근댁(조은경), 돌치 부(민병욱), 돌치 모(이경성), 덕보(홍상용), 마을사람1(이연우), 키보드연주/음악감독(공양제), 현감(민정오), 해금연주(강댜연), 고천우(이장순), 이수생(김성국), 김위(김태양), 마을사람2(김보라), 마을사람3(나푸름), 해설(우혜민) /(사진=Aejin Kwoun)

이번 작품의 희곡을 쓰고 개성 강한 여러 배우와 함께 무대를 연출한 김승철 대표는 “이번 공연은 배우들의 대사와 음악이나 음향 등 청각적인 이미지에 기대어 작품의 illusion을 만들어야 해서 그런 청각적인 이미지와 배우들의 대사가 주는 정보나 정서의 전달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관객 여러분들이 낭독공연을 보시면서도 공연이 무대에 올라간 작품을 보는 것 같은 그런 illusion을 상상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작품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낭독공연이지만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은 본 공연에서 어떤 무대를 만들어낼지 더욱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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