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당 스님 자서전 ‘가시밭도 밟으면 길이 된다’ 15일 출간기념회

혜당 스님.누구 영어하는 사람 없습니까?” 1980년 5월21일 광주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취재하던 외신기자의 질문을 받은 한 시민이 물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지만 용기를 내 광주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 사실을 통역했다. 그리고 외신기자들을 시민들의 주검들이 안치된 옛 전남도청 앞 상무관으로 안내했다. 자신이 통역한 광주의 상황이 <뉴스위크>에 실린 뒤 광주를 떠나야만 했던 그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스님이 됐다. “무도한 세상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영어하는 승려로 알려진 혜당 스님(77·사진·속명 황승우)이 자신의 일생을 담은 자서전 <가시밭도 밟으면 길이 된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소박한 향학열을 토로하는 노 스님의 고백서다.

그는 시인 황지우(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노동운동가 출신의 저술가 황광우씨의 장형이다. 한국전쟁 때 해남 북평면에서 소년기를 보낸 그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고등공민학교에서 영어를 처음 배웠던 그는 “처음엔 혀를 꼬부려 따라 읽으려면 어찌나 기분이 어색한지 내키지 않아 소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했다. 소작농이던 아버지를 따라 광주에 온 뒤 그와 세형제는 극한의 궁핍에 시달렸다. 채소 노점상을 하던 아버지를 대신해 그는 가장의 짐을 지었다. 혜당스님은 “동생 지우의 베갯 속에 든 좁쌀을 장사 밑천 삼아 행상에 나선 아버지는 제주도까지 다니며 화장품을 팔았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영어가 그의 배움의 끈을 이어줬다. 그는 “그냥 책을 통째로 외우며 영어에 몰두했다”고 한다. 독학으로 고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광주사범학교에 입학해서도 여관을 돌며 행상을 하다가 5·16 때 무허가 잡상인으로 붙잡혀 그만둬야 했다. 통역장교로 입대한 그는 65년 군에서 영어교사 자격 시험에 합격했고, 제대 뒤 광주일고, 전남고 등에서 영어교사를 하다가 학원을 열어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청담 스님이 쓴 책을 읽고 불교를 알게 됐고, 불교에 귀의했다.” 전남 담양군 수북면에 움막집을 짓고 금타선원이라고 이름지은 그는 승주 선암사 태고종에서 승려가 됐다. 평생 화두는 “내가 뭘꼬?”였다. 마흔일곱의 나이에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 입학해 석사과정을 마쳤던 그는 선암사 토굴을 찾아 수도하던 중 60일째 되던 날 깨달았다. “아! 없는 나를 있었다고 착각했구나.”

그는 91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의 교환교수로 초청받아 강단에 섰으며,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등 국외에서 영어로 불교의 참뜻을 알렸다. 젊은 시절 “독학한 영어로 그들(영어권 사람들)을 가르치리라”던 꿈을 이뤘다.

한편, 혜당 스님의 자서전 출간을 기념하는 잔치가 15일 오후 4~6시 국립광주박물관 교육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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