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선정국이 절정을 이루어서인지 가는 곳 마다 여야로 나뉘어 치열한 언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처세(處世)하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처세의 도는 <중도(中道)>’가 제일이라고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이지요.

유단취장(有短取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의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 : 1681~1763) 선생의 사물의 원리를 관찰한 <관물편(觀編)>에나오는 말이지요. 인간관계에 단점이 있어도 그 속에 있는 장점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든 장점만 갖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장점을 보려 하지 않고 보이는 단점만 지적하여 그를 나무라고 비난한다면, 그 사람의 장점은 빛을 잃고 더욱 의기소침 해질 것입니다. 성호 선생은 감나무 두 그루를 키우면서 관찰한 결과를 가지고,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감나무 한 그루는 열매가 많이 달렸지만 그 열매는 작게 열렸고, 또 한 그루는 열매가 적게 달렸지만 그 열매는 크게 열렸습니다.

어느 날 감나무 두 그루가 자라서 너무 그늘이 지기에 한 나무를 베어 버리려고 하니 도대체 어떤 나무를 자를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감이 크게 열리지만 몇 개 안 열리는 나무를 자를지, 아니면 감이 많이 달리지만, 열매가 작은 나무를 자를지를 고민하다가 결국엔 두 그루 나무를 다 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호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것이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단점만 보고 내치지 말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유단취장(有短取長)!’ 즉, 단점이 있어도 장점을 볼 줄 알고 취할 줄 알아야 한다. 라는 말이지요.

이렇게 성호 이익 선생이 들려주시는 양면을 모두 볼 줄 아는 것이 ‘통섭의 가치관’이라는 것입니다. ‘통섭(統攝, Consilience)’은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통합적 학문 이론을 말합니다.

그 옛날 최치원(崔致遠 : 857~?)은 신라말기 6두품 출신 학자로, 동아시아 최고 문장가이자 ‘유⸳불⸳선 3교 통합사상’을 지녔던 시대의 선구자였습니다.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등으로 불리었습니다. 고운은 유⸳불⸳도 3교 통합사상가였습니다. 3교 통합사상은 유교를 중심으로 불⸳도 사상을 받아들여 유⸳불⸳도에 대한 공통점을 찾아내는 사상입니다.

삼교사상은 ‘길은 각각 다르나 도착지는 같다.’라는 사상으로 모든 사상, 종교, 집단이 대립과 갈등 없이 서로 어울려 화목하게 되는 것을 이상으로 여깁니다. 이렇게 서로 어울려 화목하게 살아가자는 주의가 바로 <중도주의>인 것이지요. 중도주의는 우파와 좌파 혹은 보수와 진보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정책을 실시하자는 이념입니다.

그 내용은 『중도(中道) 중화(中和) 중용(中庸)』입니다. 중(中)과 화(和)는 중용의 두 가지 기본점이고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中’과 ‘和’를 연결시켜 ‘중화’라고 칭합니다. 공자도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編)>에서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썩은 과일을 도려내면 먹을 것이 남지 않고, 미운 사람을 걸러내면 쓸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욕을 많이 하다 보면 욕에 둔감해지고, 매를 많이 휘두르다 보면 상대방의 아픔에 둔감해지기 마련입니다. 소중한 나의 것이 남에겐 하찮을 수 있고, 소중한 남의 것이 나에겐 하찮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 비판하는 자가 저 비판받는 줄은 모르고, 남 비난하는 자가 저 비난 받는 줄은 잘 모릅니다. 남을 잴 때는 성인군자의 도덕적 잣대를 쓰고, 자신을 잴 때는 흉악범의 잣대를 쓰면서 비난과 비판을 합리화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매사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처세하며 사는 것이 ‘중도’입니다.

대산 종사의 법문 1집에 <처세의 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처세의도는 중도가 최상이니라.

둘째, 정성을 다하다가 어찌할 수 없는 경위에는 인위(人爲)로써 하지 말고, 천의(天意)에 맡기고 볼 것이다.

셋째, 독권(獨權)뒤에는 독한(獨恨)이 따르고, 전성(全盛)뒤에는 전 쇠(全衰)가 따르느니라. 그러므로 달인(達人)은 활짝 핀 꽃보다 절반 핀 꽃을 좋게 여기고, 가득 찬 달보다 반 윤월(半輪月)을 사랑하느니라.

넷째, 크고도 작은 것 같이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요, 알고도 모르는 듯이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며, 능(能)해도 불능(不能)한 것 같이 하는 것이 참으로 능한 것이다.

다섯째, 병맥진단을 잘못하였거든 약을 쓰지 않는 것이 중도가 되고, 확실히 모르는 것과, 필요치 않은 말은 오히려 침묵하는 것이 옳으니라.

어떻습니까? 이 다섯 가지가 중도 행(中道行)입니다. 우리 이 중도 행으로 처세를 하면 언제 어디서나 크게 실수는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 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2월 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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