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도 ‘RE100’과 ‘EU택소노미’의 정확한 뜻을 몰랐다. 물론 그 내용을 조금 알고 있긴 했다. 여러 글로벌기업들이 탄소연료를 일체 쓰지 않고 완전 재생연료로만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과, EU가 탄소연료를 사용하는 외국기업들에 대해서는 세금을 엄하게 매기거나 아예 거래를 못하게 할 계획이라는 것 정도이다.

어느 정도 사회적 책임에서 벗어난 칠십 가까운 나이에 이만큼이라도 아는 것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타고 난, 혹은 오랜 기자생활을 하며 길러진 호기심 내지는 탐구심 덕분이라며 뿌듯하게 여긴다.

그런데 대통령후보 토론회를 보면서 내 지식이 지극히 불완전한 것임을 알게 됐다. ‘RE100’의 의미를 대충 알긴 알았는데 RE가 내가 짐작했듯 recycled energy의 약자가 아니라 renewable energy의 약자라는 걸 부랴부랴 사전을 찾아보고야 알았다. 택소노미taxnonomy가 그린 에너지 분류체계인 것은 전혀 몰랐다. 그러니 핵에너지를 그린에너지에 포함시키려는 논의가 EU 집행위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알턱이 없지.

나는 그저 택소노미가 tax+economy의 합성어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정도에 따라 세금을 매겨 재정을 운용하는 체계인 줄로만 알았다. 이처럼 중요한 개념을 몰랐던 것이 부끄럽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솔직히 나는 저 개념을 꼭 알아야 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럴 나이도 아니다. 몰랐던 것을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지금이라도 이 문제가 우리나라에, 아니 전 지구적으로 얼마나 사활적인 문제인지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이 다행스럽기만 하다.

나는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골탕 먹이려는 것이 아니라,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묻고 토론하고 싶어 ‘RE100’이며 ‘EU택소노미’를 꺼냈다고 본다. 나 자신 나중에 이 개념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EU가 저런 식으로 핵발전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우리도 핵폐기물 처리 및 보관문제를 해결한다는 전제 아래 핵발전문제를 좀 더 전향적으로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비로소 이재명 후보가 질문한 의도를 알게 된 것이다.

이 후보 질문에 윤 후보가 “모른다. 가르쳐 달라”고 답변했을 때 나는 그의 솔직함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곧 그가 ‘RE100’이 가능하지 않다고 무지를 드러내며, 핵발전소를 지으면 어디에 지을 것인지,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한계(무능 무지 무책임)를 재확인했다.

어쨋든 토론에서는 내용보다 태도가 더 점수를 딴다는 이론에 따르면 윤 후보는 잃은 것(답변의 부실함) 보다 얻은 게(태도의 솔직함) 많았는지도 모른다. ‘무조건 원전’을 부르짖는 보수주의자들로부터는 내용으로도 점수를 땄는지 모르지.

나는 언론이 이 지점(‘RE100’ ‘EU택소노미’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이 문제들에 대한 두 후보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윤 후보의 의외의 솔직함이 준 영향까지)을 분석하고 보도했어야 한다고 본다.

이재명 후보의 질문에 초점을 맞추어 “이즈백은 아는데 알이백(RE100)은 모른다.” “대선 토론회가 무슨 장학퀴즈냐”는 식으로 빈정댈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이 후보를 때리고 윤 후보를 감싸는 언론 풍토가 또 한번 발현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기자들이 무식했기 때문이다.

단언컨데 기사를 쓴 기자나 데스크나 제목을 단 편집기자나 ‘RE100’과 ‘EU택소노미’를 처음 듣고 (나처럼) 뭔 소리인 줄 몰랐던 것이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할 줄만 알고 모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부끄러움을 불러온 사람에게 반발하고 앙가품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고마워하고 즐거워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아는 것이 많을수록 좋긴 하지만 뭐든지 처음부터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묻고 전하는 것이 직업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묻지도 못하면서 듣고 알게 된 것 마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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