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을 사람 없다"…표심은 안갯속

대전은 민심의 바로미터이자 대표적인 스윙보터 지역으로 꼽힌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역대 일곱 차례 대선에서 모두 대전민심이 선택한 인물이 대통령이 됐다. 지방선거, 총선, 대선 등 굵직한 전국 단위 선거마다 대전 유권자들은 지지 정당을 바꿔왔다. 어느 한 진영이나 정당으로 몰아주기·묻지마식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부터 4년간 치른 지방선거, 총선에선 현 여권인 더불어민주당 독식이었다.

코로나19와 경기침체 속에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이 지역 민심의 풍향계는 어디로 향할까.

대선을 29일 앞둔 8일 하루 동안 대전 표심을 직접 돌아봤다.

(왼쪽부터) 이재명 - 윤석열 - 심상정 - 안철수(왼쪽부터) 이재명 - 윤석열 - 심상정 - 안철수[국회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자료사진]
(왼쪽부터) 이재명 - 윤석열 - 심상정 - 안철수 [국회사진기자단 ]

◇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일단 민주당이 밉다"

아직 냉기가 가득한 겨울의 끝자락에 확인한 대전 곳곳의 민심은 차가웠다.

이날 오전 대전역에 내려 바라본 동구 중앙로 구도심은 어둡고 활기를 잃은 모습이었다. 대전역과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채 늘어선 낮은 건물들의 외벽은 낡았고, 철문이 굳게 닫힌 점포들도 눈에 띄었다.

대전역 주변 줄지은 노점상도 세 점포 걸러 하나꼴로 문을 열었다.

마스크를 써 표정을 읽기 힘든 상인들은 말없이 생선 상자를 나르고, 불판 위 알밤을 굴렸다. 거리엔 행인도 드물었다.

대전역 광장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는 이성래(60) 씨는 '누구를 뽑을지 정했느냐'는 질문에 "지금 대선 생각할 기분이 아니다"라며 퉁명스럽게 뱉었다. 이씨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구둣방을 닫았다가 열흘 만에 열었다고 했다.

대전역 인근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이연숙(65) 씨는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하루 평균 손님은 30명 남짓,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4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그는 "누구를 뽑을지 결정하기 힘들다"면서도 "일단은 민주당이 싫다.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너무 밉다"라고 말했다. 그는 2020년 총선에선 민주당에 투표했다고 했다.

지지자에게 인사하는 이재명 대선후보
지지자에게 인사하는 이재명 대선후보

구도심 대표 재래시장인 중앙시장과 역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오전 10시가 다 되도록 문을 열지 않은 점포들이 줄잡아 절반 이상이었다. 인근 공사장에서 며칠째 작업이 없어 덩달아 시장 상권도 타격을 입었다고 한 상인은 전했다.

중앙시장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은 "(경기도) 계곡 잡상인 단속할 때 보니 이재명이 한다면 한다는 것 같다. 윤석열과 안철수가 단일화하는 것은 관심 없다"고 말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40대 남성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싸잡아 "두 후보 다 번갈아 안 좋은 얘기가 많아서 지켜보고 있다. 아내 문제도 있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안철수는 한창 안풍(安風) 불었을 때 이후 관심 없다. 지난 대선 보면서 대통령 하시기엔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권교체와 정권유지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느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 "진짜 모르겠다. 내 마음이 갈팡질팡한다"고 했다.

대전역 안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37세 여성 김모 씨는 "누구를 뽑으면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보다는 덜 우려되는 사람을 뽑아야 할 것 같다"며 "토론을 보니 이재명은 공격적이고 거칠고, 윤석열은 준비가 하나도 안 됐다. 안철수가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차라리 안철수로 단일화됐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전 중앙시장에서 즉석연설
윤석열, 대전 중앙시장에서 즉석연설

◇ "李는 문제가 많고 尹은 국정운영 능력이 없고"…'투표 거부' 의견도

대전역 앞 줄지어 선 택시 중 한 대를 타고 관공서가 밀집한 서구로 이동했다.

택시기사 김재정(69) 씨는 코로나로 손님이 없어 빈 차로 왔다 갔다 하며 기름만 쓴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무조건 정권을 바꿔야 한다. 운동권 사람들이 잘못해도 '잘못했다'고 하는 것 봤나? 조국이 자기가 잘못했다고 했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청 앞에서 만난 50세 직장인 남성 A씨는 자신을 '샤이 이재명'이라고 소개하면서도 "이재명은 문제가 많고 윤석열은 국정 운영 능력이 없이 무능해서 누굴 찍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이번 대선은 최악"이라고 말했다.

A씨는 부동산 정책 실패 등을 이유로 한 정권심판론엔 동의하지 못한다고 했다. A씨는 "제 나이 또래 중엔 문재인 지지자가 많다. 그 영향이 이재명 지지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국민의힘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만약 안철수로 야권 단일화가 되면 이재명이 아닌 안철수를 찍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갤러리아 백화점 내 남성복 매장에서 일하는 43세 남성 직원은 "예전에 분당에 살았다. 성남시장으로 일하는 것부터 지켜보니 이재명으로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그는 "대장동이나 아내 문제 해명 과정도 다른 후보들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의류 매장에서 일하는 여성 곽모(45세) 씨는 "지난 총선 때는 민주당을 찍었지만 이번엔 절대 투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고 말했다.

곽씨는 "이재명 후보 주변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대장동 사건이 터지는 것을 보면서 이 후보에게 마음이 갔다가도 의심이 가 투표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윤석열과 안철수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이 없다. 열외"라고 했다.

G3 디지털경제 강국 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안철수 후보
G3 디지털경제 강국 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안철수 후보

◇ 대학가 "정치 관심 없다" 외면 속 안갯속 표심

충남대, 카이스트, 한밭대 등 대학들이 있는 유성구에선 주로 20대 청년층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뽑을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정치에 관심 없다"며 차갑게 외면했다. 방학 중인 충남대 캠퍼스 안은 조용했지만 캠퍼스 밖 카페는 혼자 공부를 하거나 전공과목 과외를 받는 학생들로 붐볐다.

충남대 경영학과 합격증을 받은 이은혜(20) 씨는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 다 고만고만한 이상한 사람들"이라며 "안철수가 똑똑한 것 같기는 한데, 그나마 윤석열이 제일 나은 것 같다. 단일화는 안 해도 윤석열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안기현(23·통계학과)·조승원(23·통계학과) 씨는 "지금은 잘 모르겠다. 뽑을 후보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가 잠시 생각한 뒤 "차악이 안철수다. 나머지 둘을 뽑기가 싫다"라고 부연했다.

취업준비 중이라는 25세 여성 B씨 "확 끌리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후보들을 호감도로 평가해달라'는 거듭된 질문에 "다른 사람들은 결점이 두드러지는데 안철수는 그런 게 없어 보인다"라고 했다.

안철수 후보의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율이 최종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엔 "은근히 지지율이 올라오고 있어 좀 더 두고 보겠다. 끝까지 당선권이 아니어도 찍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전공 유명한(23) 씨는 '여가부 폐지·병사월급 200만원'을 언급하며 "이 공약을 계기로 윤석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했고, 화학신소재학과 C(23)씨는 "토론을 보니 윤석열은 아는 게 없다. 이재명과 안철수 중에선 이재명이 낫다. 대장동 의혹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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