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칼럼] 친문진영은 윤석열이 승리할 경우 잃을 게 작아져

윤석열-문재인-이재명의 신(新) 3강 구도

윤석열, 이재명, 안철수 3강 구도로 흘러갈 듯싶던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판세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임박한 시점에서 윤석열-이재명 양강 구도로 재편되려는 찰나, 분위기에 급반전이 일어나며 다시금 세 후보가 치열하게 각축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2차 삼두정치’의 내용을 뜯어보면 ‘1차 삼두정치’와의 결정적 차이가 발견된다. 구성원에 변동이 생긴 것이다. 윤석열과 이재명은 그대로인데 2차 삼두정치에서는 1차 삼두정치가 한창 펼쳐질 당시에는 눈에 띄지 않던, 국민들에게는 매우 낯익은 인물이 등장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있던 곳에 문재인 대통령이 슬그머니 대신 들어섰기 때문이다.

필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무척이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고 판단하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극렬 지지층을 제외한 남한의 대다수 평범한 인민대중은 문재인 정권이 집권 기간 내내 집요하게 밀어붙인 적폐청산 드라이브가 ‘반대세력 숙청’과 ‘자기세력 강화’의 두 가지 목적만을 염두에 둔 잔인하고 파렴치한 정치공작에 불과함을 일찌감치 경험으로 뼈저리게 인식한 상태다. 적폐청산은 마케팅 교과서가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죽은 브랜드’에 해당한다.

신약성경에서 나사로를 되살리신 예수님도 도저히 소생시키지 못할 저주받은 존재가 바로 이 죽은, 즉 망한 브랜드이다.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돌이킬 수 없이 파산한 브랜드가 돼버린 적폐청산 기조를 청산의 대상만 달리해 윤석열 정권이 계속 이어받는다면 차기 정권 역시 처참히 실패할 운명을 면하기 어렵다.

예전과 견주어 크게 개선됐다고 하지만 윤석열은 정무와 법무를 섬세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혼동하는 한계를 여전히 종종 드러내고 있다. 정무는 장기적 시각의 국리민복을 증진하는 일이다. 법무는 당장의 사법적 정의를 구현하는 작업이다. 윤석열 후보가 아직도 거칠고 투박한 검사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핀잔 섞인 지적을 듣곤 하는 이유이다.

여기까지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오랜만에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었다. 그런데 한동안 뉴스에서 사라졌던 문재인 대통령이 뜬금없이 끼어들어 윤석열 후보와 공공연히 대립각을 세우면서 이재명 후보는 점수를 내기는 고사하고 아예 운동장 자체에서 존재감이 지워질 지경이다. ‘기호 0번 문재인’이 느닷없이 전면에 출현하는 바람에 더불어민주당 공식 대선후보가 문재인인지 이재명인지 도통 헷갈리는 상황이 초래된 탓이다.

이재명 대선캠프는 표면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명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나섰다고 해석하며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허나 표정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이재명 진영 인사들의 얼굴에선 조용필의 대표적 히트곡 「그 겨울의 찻집」 가사에 묘사된 바처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문재인 대통령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일까?

이재명은 문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문재인은 이재명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기색이다.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게 승리할 수가 있었던 주요한 원인은 이재명이 실제였던 아니면 단지 이미지만이였던 간에 문재인 대통령과 일정한 정도의 차별성을 꾸준히 띠어온 사실에 있다. 대통령이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바뀌는 것을 넓은 뜻에서의 정권교체로 간주한 국민들이 박근혜 정권 탄생에 일조했듯, 청와대 주인이 문재인에서 이재명으로 변화하는 사태를 광의의 의미의 정권교체로 해석한 상당수 부동층 유권자의 호응 덕분에 이재명은 친문세력의 열렬한 응원을 받아온 이낙연을 제압했다.

더욱이 칭찬을 받든 욕을 먹든 관계없이 출마한 후보자 본인이 대중에게 무조건 많이 노출돼야 하는 건 선거운동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호 1번 이재명과 기호 2번 윤석열이 팽팽히 경쟁하는 무대 위에 문재인 대통령이 ‘기호 0번 문재인’이라 쓰인 어깨띠를 두르고서 등단하는 순간 이재명을 비추던 스포트라이트의 절반은 그 즉시 문재인을 조명하게끔 돼있기 마련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정치보복' 예고 발언이 대선 정국에서 큰 파장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한 의지가 배신당했다"고 개탄했다.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5년 중 4년 가까이를 핵심 요직에서 보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정치보복' 예고 발언이 대선 정국에서 큰 파장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한 의지가 배신당했다"고 개탄했다.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5년 중 4년 가까이를 핵심 요직에서 보냈다. 사진=연합뉴스

이준석의 신속하고 절묘한 교통정리

현직 대통령이 여당의 공식 후보를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야당의 유력주자와 경기장 한가운데에서 맞장을 뜨는 광경에 제일 먼저 환호를 지른 인물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였다.

이준석은 윤석열의 중앙일보 인터뷰 답변 발언을 청와대가 ‘정치보복 선언’으로 긴급히 규정하자마자 문재인 대통령의 격노를 ‘대선개입 행위’로 명쾌히 정의함으로써 문 대통령에 의해 이미 한 차례 구석으로 쫓겨난 이재명을 대중의 관심권 밖으로 한 번 더 몰아냈다. 이준석은 현 여당의 대표선수가 이재명이 아닌 문재인이라고 아예 단호하게 못을 박아버린 셈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이 정권연장을 원하는 여론을 오랫동안 압도해온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대선구도가 투표일 한 달을 앞두고 ‘윤석열 대 문재인’ 또는 ‘문재인 대 윤석열’로 고착되는 현상은 국민의힘에게 결코 불리한 환경만은 아니리라.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문재인 대통령 배후에 포진한 친문세력은 이재명에게 정권은 물론이 당권까지 내줘야만 한다. 반대로 윤석열 후보가 승리하면 친문진영은 당권을 안전하게 유지ㆍ보전할 수 있다. 문재인도 알고 이재명도 그 정답을 잘 아는 간단한 초등 산수이다.

이재명 후보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기습적 대선등판이 가장 뼈아프게 느껴질 대목은 이재명 측이 울며 겨자 먹기로 추진해왔을 안철수 대표와의 ‘역단일화’가 거의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것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가운데에도 단연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한 연체동물이다. 김대중과 김영삼 불세출의 두 정치 거목은 현실정치로 불리는 이 징그러운 형태의 연체동물을 귀여운 애완동물 같이 항상 옆에 끼고서 수시로 어루만진 까닭에 3당 합당이란 기상천외한 묘수를, DJP 연합이라는 미증유의 승부수를 각각 던질 수 있었다. YS와 DJ가 오늘날의 이재명 처지에 놓여 있다면 그들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안철수와의 충격과 공포의 단일화를 어떻게든 성사시켰을 게다. 이 최후의 반전 카드를 문재인 대통령은 이재명 후보가 절대 꺼내들 수 없도록 인정사정없이 초를 치고 쳐버렸다.

‘김건희 리스크’가 ‘김혜경 리스크’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이재명은 이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안철수를 향한 구애에 절박하게 착수해야만 한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문재인의 돌발적 난입은 안철수가 지지기반으로 딛고 선 온건 중도층의 비중과 입지를 확 줄여버렸다. 그와 동시에 안철수를 발판 삼아 마지막 외연 확장을 시도하려던 이재명에게도 무자비하게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필자가 요번 칼럼을 작성하고 있는 도중에 윤석열과 안철수 양측이 후보 단일화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다는 소문들이 도처에서 쇄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갑작스런 대노가 없었다면 당연히 근거 없고 허무맹랑한 가짜 뉴스(Fake News)로 곧장 일축됐을 소식들이다. 이재명 후보의 무운을 또다시 진심으로 빈다.

* 글쓴이는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초대편집장,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이준석이 나갑니다> 공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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