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 칼럼] "집무실 이전, ‘행정절차’의 문제... 속전속결 추진 이유 없어"

대통령 집무실과 제왕적 대통령은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조경일 작가/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
조경일 작가/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

대선이 끝난 지 3주가 지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자 신분으로 처음 꺼낸 개혁 아젠다는 ‘코로나 극복’도 아닌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정부로 거듭나겠다며 현재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다는 내용이다. 온 나라가 갑론을박이다. 왜 이것이 당선자의 첫 번째 추진공약이어야 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또한 윤석열 당선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집무실’이라는 ‘공간의 문제’로 등치 시킨다. 과연 그런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청사로 이전하여 신축하는 걸로 결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광화문 청사를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집권 이후 여러 기능적인 이유로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가 예산은 물론 안보적 측면과 기능적 측면 등에서 효율적이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당선자는 5월 10일 임기 시작 전까지 이전한다고 못박고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고있다. 추진력만 보면 놀라울 정도의 추진력이다. 문제는 임기시작도 전인 당선자 신분에서 추진한다는 점과 이해할 수 없는 ‘속전속결’ 추진 이유와 명분이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어느 대통령이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옮길 수 있는 사안이다. 정부에서 이전 추진을 결정하면 국회에 예산을 올리고 의회가 통과시키면 되는 행정 처리 절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3주 동안 온 나라가 갑론을박 할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집무실 이전이 정치화 돼버렸다. 물론 윤석열 당선자가 무리하게 스스로 공을 쏘아 올렸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완강하게 추진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밀어부치고 있다. 명분도 분명하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제왕적 대통령제에 문제가 있음을 수 차례 말해왔다. 그 동안의 대통령들이 제왕적 대통령이 된 것은 국민 가까이에 있지 않은 청와대라는 공간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언뜻 들으면 그럴 듯 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심각하게 왜곡된 논리에 불과하다. 왜 그런가.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씩 파헤쳐보자.

집무실 이전, ‘행정절차’의 문제…속전속결 추진할 이유 없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정말 두 달밖에 안 되는 인수위 기간 안에 끝내야 하는 문제인가. 정말 이렇게 시급한 문제란 말인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문제다. 정부 공공기관 하나를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도 수개월에서 수년 걸리는데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것을 임기 시작도 전에 추진하는 것은 무리한 추진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빌딩 사무실만 옮기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완벽한 보안과 통제시설, 방호시설, 정보시설 등 모든 인프라를 통째로 옮기는 것이다. 임기 시작 이후에 추진해도 임기 내에 옮길 수 있다. 이렇게 논란을 만들면서까지 무리하게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는 핵심개혁도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국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온 나라가 갑론을박하게 만드는 것은 국민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5월 9일 자정까지 대통령 임기를 수행해야 하는 현 대통령이 업무를 볼 수 없도록 하는 심각한 문제도 있다. 24시 이삿짐 센터에서 하룻밤에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절차적으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졸속추진’에 어떤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합리적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공간이 제왕적 대통령을 만든다는 옅은 개혁인식에 우려

윤석열 당선자는 오는 5월10일 취임과 동시에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입주할 계획을 발표한 뒤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으로, 조선 총독부터 100년 이상을 써온 곳"이라고 말했다. 언뜻 보면 꽤 그럴듯한 명분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듯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이 되는 것이 공간 탓이라는 심각하게 왜곡된 주장이다. 국민들을 쉽게 설득하려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실제 윤석열 당선자와 인수위가 대선 이후 논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및 국방부 이전'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국정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전혀 파악조차 못하는 모습이다. 이는 어떠한 소통도 의견수렴도 없이 강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당선자와 인수위가 대선 이후 논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및 국방부 이전'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국정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전혀 파악조차 못하는 모습이다. 진정 소통을 원한다면 언론 앞에 자주 서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대통령제는 윤석열 당선자의 표현대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맞다. 심각하다 못해 병들어서 당장 개혁해야 할 제1의 과제로 인식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당선자는 개혁의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대통령제의 문제를 공간에서 찾는 것은 백분의 5정도나 될듯한 부차적인 문제를 본질로 인식하는 오류이다. 대통령제는 말 그대로 제도, 바로 권력구조라는 제도의 문제다. 그런데 이 제도의 문제를 공간 탓이라고 말하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무리해서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다고 해도 기존 공간에서는 벗어날지는 몰라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윤석열 당선자의 “결단 안하면 제왕적 대통령 못 벗어난다”라는 주장은 국민들의 눈을 가리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물론 폐쇄적인 공간이 어느 정도 영향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본질이 아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꽤 철학적인 화두를 꺼냈다. 흡사 공간구조 건축철학자의 ‘공간과 의식의 관계’에 대한 해석처럼 들린다. 물론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된 여러 연구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공간구조 건축자가 아니라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는 국민의 대리인이다. 정치인은 국가와 사회의 법과 제도를 만들고 국가의 주춧돌과 기둥과 지붕이 되는 입법과 사법, 그리고 행정에 빈틈이 없도록 구조를 잘 설계 하는 정치제도를 건축하는 사람이다. ‘공간’이 아니라 ‘제도’가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위임 받은 한 사람의 의식을 제왕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공간타령’은 적어도 대통령 당선자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는 아니다. 

대통령제는 권력구조의 문제다. 지금처럼 양당이 번갈아 독식하는 체제에서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제왕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제왕적이 되느냐 안되느냐는 전부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제왕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5년 임기 안에 어떻게든 성과를 내고 족적을 남기려고 한다. 현행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다시 신임을 물을 필요도 기회도 없다. 임기만료 5년 뒤엔 은퇴해서 자택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업적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한 일만 중요해진다. 어차피 재신임을 받을 일이 없으니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도, 사유화해도 견제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탄핵이라는 최후의 견제수단이 발휘되기도 했으나, 이것은 국민들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드는 불행한 헌법적 장치일 뿐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임기 내 집무실 이전을 결단하지 말고 진짜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권력구조 개혁에 대한 결단을 해야 한다. 민주당은 윤석열 당선자의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에 대한 의지를 적극 흡수해서 당장 개혁 모멘텀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다. 여전히 과반의석이 넘는 민주당이 받아서 정치개혁 제1의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진짜 소통은 ‘집무실’도 ‘출퇴근’도 아닌 언론 앞에 나서는 것 

윤석열 당선자는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며 출퇴근하며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 좋은 취지다. 청와대가 국민들을 위한 여가의 공간이 된다면 좋은 일이다. 대통령이 직접 굳이 출퇴근을 하겠다는데 안될 게 뭐가 있겠는가. 문제는 집무실 이전의 명분이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것이라는 윤석열 당선자의 주장이 쉽게 공감이 되질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때 ‘광화문 청사시대’를 열겠다며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다. 물론 모든 대통령은 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을 해왔다. 자, 그럼 ‘소통하는 대통령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보자.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소통의 행보란 무엇인가? 국민과 가까운 집무실이 있는지 여부인가, 출퇴근 하는 대통령의 모습인가? 일부분 이런 모습에 대한 기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적어도 이게 본질은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이 아무리 시내 한복판에 있어도, 아무리 대통령이 출퇴근을 해도 국민들과 직접 만나지는 못하며, 국민들이 자유롭게 대통령에게 말을 걸고 소통할 수가 없다. 만약 소통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대통령 경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광화문이 된다고, 또 용산이 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언론 앞에 자주 나타나면 그것이 소통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전통적인 방법, 그러나 여전히 효율적인 방법이 바로 언론 앞에 서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 할 수가 없다. 대통령도 국민들에게 직접 답변 할 수가 없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언론이 국민들을 대신해서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대통령이 언론 앞에 나서서 국민들에게 답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의 소통방식이고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이다.

보통 우리는 소통하는 대통령을 말 할 때 대통령이 얼마나 언론 앞에 자주 나타나는지 대통령 기자회견 횟수로 비교한다. 역대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를 보자. 김영삼 대통령은 5회, 김대중 대통령 150회(추정), 노무현 대통령 150회, 이명박 대통령 20회, 박근혜 대통령 5회, 2020년도 임기 4년차 문재인 대통령은 4회였다. 민주정당인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압도적인 ‘소통왕’으로, 보수정당 대통령들은 ‘불통왕’으로 기록됐다. 보수정당 대통령들과 비슷한 횟수를 기록한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행보는 같은 당 출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비하면 굉장히 초라하다. 어느 대통령보다도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신경을 썼던 점을 생각하면 의외의 성적표다. 임기 한 달 정도 남은 현 시점에서 봐도 10회도 안된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도 ‘불통왕’으로 기록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윤석열 당선자의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제왕적 대통령을 벗기 위해서” 집무실을 옮긴다는 설명은 빈약하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더 나아가 “대통령 집무 노출이 민주주의를 앞당긴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발언은 단언컨대 민주주의 본질과는 큰 연관성이 없는 말이다. 민주주의는 제도이다. 민주주의는 사상도 공간도 아니다. 3년째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위한 진정한 개혁이 무엇인지,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파하는 진정한 개혁이 무엇인지 정치인들은 심각히 고민해줄 것을 당부한다. 

* 조경일 작가·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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