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고난 없이 성공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난을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고난 환영’을 외쳐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어린 학창 시절 때부터 작고 연약한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중앙시장에서 쌀장사를 시작으로, 말 못 할 고난을 이겨내며 어린 동생들과 집안을 이끌어 왔습니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고난을 이겨낸 얘기를 가장 많이 하지요. 특히 남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입니다. 왜 그렇게 밤새워 이야기해도 끊임이 없을까요? 그것은 바로 군대에 있을 때가 가장 고난과 어려운 일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옛날 여인네들의 시집살이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추 당 추보다 맵다는 시집살이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고난의 역사가 숨 쉬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여정(旅程)에 걸림돌과 장벽이 없다면, 얘기기 거리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성인(聖人)이나 위인(偉人)들의 삶에 이야기가 많은 것은 고난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프랑스의 역사가인 ‘가브리얼 대니얼(1646~1728)’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난은 인생의 소금이다. 좋은 선장은 육지에 앉아서 될 수 없다. 바다에 나가 거친 폭풍을 만난 경험이 유능한 선장을 만든다. 격전의 들판에 나서야 비로소 전쟁의 힘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의 참된 용기는 인생의 가장 곤란한 또는 가장 위험한 위치에 섰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미국인 ‘달렌 피터슨’의 ‘청소의 기적’에도 이런 말이 나옵니다. “고통을 포용하라. 내 경험에 의하면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때는 바로 역경, 상실, 그리고 실수로 점철된 시기이다. 역경은 당신을 단련시킨다. 아무도 패배나 고통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경이 없다면 우리는 너무 안이해질 것이다. 성장을 위한 확실한 길은 고통을 통해 나타난다.”

그렇습니다. ‘역경’을 뒤집으면 ‘경력’이 됩니다. 걸림돌에 걸려 넘어졌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디딤돌로 바꿔 다시 일어선 사람만이 자신만의 스토리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자기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를 듣고 말할 뿐입니다.

이렇게 걸림돌을 디딤돌 삼아 넘어서는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뒤늦게 인생에 꽃을 피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걸 우리는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이라고 합니다. ‘삼국지(三國志)’의 <위지 최염전(魏志 崔琰傳>에 ‘대기만성’형의 얘기가 나옵니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란 풍채 좋은 유명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촌 동생인 ‘최림(崔林)’은 외모가 시원치 않아서인지 출세를 못 하고, 일가친척들로부터도 멸시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최염만은 최림의 인물됨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지요.

“큰 종(鐘)이나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대성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하는 그런 형이야. 두고 보라고.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테니…….” 과연 그 말대로 최림은 마침내 천자(天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도, 대기만성 얘기가 나옵니다.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 25∼57)때, 마원(馬援)이란 명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변방의 관리로 출발하여 복파장군(伏波將軍)까지 된 인물인데, 복파장군이란 전한(前漢) 이후 큰 공을 세운 장군에게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마원이 생전 처음 지방 관리가 되어 부임을 앞두고, 형인 최황(崔況)을 찾아가자 그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너는 이른바 ‘대기만성’형이야. 솜씨 좋은 대목이 산에서 막 베어낸 거친 원목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좋은 재목으로 다듬어내듯이 너도 네 재능을 살려 꾸준히 노력하면,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부디 자중(自重)하라.”

그렇습니다. <노자(老子)>에도 ‘큰 네모(四角)는 모서리가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 진다(大方無隅 大器晩成)’는 말이 있습니다. 큰 인물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괴로움의 골짜기를 건너야 행복의 정상(頂上)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실패의 고배를 마신 후에야 성공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고뇌를 넘어서야 환희에 도달합니다. 분투와 노력의 피땀을 흘린 뒤에야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있는 것이지요. 모든 값있는 것은 땀의 산물이요, 노력의 결실인 것입니다.

인생 도처에 고뇌의 가시밭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가시밭길을 용기와 인내로써 헤쳐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낮만 있고 밤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고통을 인생 수업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인 행동만이 인생의 성공을 이룰 수 있는 단초가 됩니다.

세상 이치가 양(陽)이 지나면 음(陰)이 되는 것이 섭리(攝理)입니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도 겨우 7세 때부터 우주의 진리에 대해 의문을 품으시고 폐인(廢人) 취급을 받으시면서 도를 닦아 20여 년 만에 대원정각(大圓正覺)을 이루시고 마침내 부처의 위에 오르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어제가 4월 28일이 원불교 최고 경절(慶節)인 <원불교 열린 날>입니다. 우리 고난을 포용합시다. 늦어도 곧 환희가 따라올 것이니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4월 2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