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래전부터 ‘연꽃’을 유난히 좋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실에도 연꽃 그림, 또 연꽃 사진, 연꽃 도자기 등이 꽤 있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보며 항상 ‘연심(蓮心)’ ‘연화정신(蓮華精神)’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제가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歸依)한 지 5년 만에 첫 수필집을 발간했습니다. 그 첫 작품의 이름이 <진흙 속에 피는 꽃>입니다. 젊어한 때, 진흙탕 같은 권투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제가 <일원대도>를 알고부터 5년간 우러나온 인생의 환희를 서툰 글로 쓴 책임지어요.

벌써 35년의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때, 이 책의 원고를 읽어보시던 홍익출판사의 이승용 사장이 눈물을 흘리며 쾌히 출판을 결심하셨다는 말씀은 가히 충격이고 감동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연꽃 같은 인생을 살아가느라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한순간도 한눈팔지 않았습니다. 일직 심으로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제가 지닌 모든 정열을 쏟고 또 쏟았습니다. 이제 제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되돌아보니 여간 감개무량한 것이 아닙니다. 과연 저는 연꽃 같은 인생을 살았는가요? 그 연꽃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며 얼마나 더 닦아야 부처가 될지 가늠해 봅니다.

연꽃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는 ‘처염상정(處染常淨)’입니다. 더러운 곳에 있어도 항상 깨끗하다는 의미이지요. 탐 ‧ 진 ‧ 치(貪瞋痴) 삼독(三毒)에 물든 중생들이 사는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도 깨달음의 향기를 잃지 않는 것이 연화(蓮花)입니다. 바로 이 연꽃이 불교와 원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지요.

네팔에 있는 룸비니동산에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났다는 ‘평성(平石)’을 보았습니다. 어머니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가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합니다. 불교의 시작이 이렇게 연꽃과 함께 한 것이지요.

아기 부처님과 연꽃의 인연은 후대인들이 각종 벽화나 불화(佛畵)에 연꽃을 그려 넣었습니다. 지금도 사찰 벽화나 불화 등에는 아기 부처님이나 동자들이 연꽃 위에 앉아 있거나, 뛰어노는 모습을 표현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불상(佛像)을 봉안하는 좌대를 연화대(蓮花臺)라고 합니다.

또 불상 뒤 대부분의 ‘광배(光背)’도 ‘연화화생(蓮華化生)’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원상(一圓相)》 부처님께 귀의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면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왕생(往生)할 때, 연꽃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이 연화화생입니다. 즉 광배를 연화화생으로 표현하고 연화대에 불상을 모시는 것은 곧 불가(佛家)에 귀의해 수행정진 하겠다는 원력(願力)의 표현이지요.

《화엄경(華嚴經》 <탐현기探玄記)>에는 연꽃의 덕을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향(香, 향기)이고, 둘은 결(潔,고결)이며, 셋은 청(淸, 맑음)이고, 넷은 정(淨, 깨끗함)입니다. 비록 중생이 사는 세간이 무명(無明)과 탐욕으로 얼룩져 있지만,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은 청정하고 깨끗하여 맑은 향기를 전한다는 의미이지요. 이런 까닭에 부처님이나 불교 관련 성보(聖寶)를 모시는 자리를 연꽃으로 장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꽃을 불가(佛家)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진흙 속에 피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더러운 곳에 있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꽃을 피웁니다.

둘째, 진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연꽃은 꽃잎이 필 때 씨방도 함께 여뭅니다. 즉, 꽃이 자랄 때 꽃잎과 씨방이 같이 자랍니다. 인과를 상징하고, 과거, 현재, 미래, 삼세(三世)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셋째, 불성(佛性)이 있기 때문입니다.

꽃을 활짝 피운 연꽃은 씨앗이 떨어져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습니다. 그렇게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다 인연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진흙에서 피는 꽃’은 중생이 무명을 걷어내고, 불법(佛法)을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성인(聖人)은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또 슬픔도 인색함도 성인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연꽃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듯이, 성인은 보고 배우고 사색한 어떤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지요.

제가 그동안 펴낸 책이 ‘진흙 속에 피는 꽃’부터 무려 14권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제 카페지기도 내려놓고, 마지막 죽음의 길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안 되네요. 도반 동지들이 마지막으로 <진흙 속에 피는 꽃> 후편을 내놓고 떠나라 합니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고 가듯이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하지만 결코 책 발간이 쉬운 일이 아니라 어깨가 무겁습니다. 수도인의 상징은 연꽃입니다. 우리 모두 ‘맑고 밝고 훈훈한 진흙 속에 피는 연꽃의 길’을 함께 가면 여한이 없겠네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5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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