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 매진 행렬 이어가며 뜨거운 성원 중
[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연극 “타자기 치는 남자”가 2021년 초연 당시 띄어앉기로 인한 이른 매진으로 아쉽게 보지 못한 관객들이 많았던 만큼 제43회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으로 다시 관객들을 찾아온 이번 작품은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 이 작품은 관객들의 호평뿐 아니라 2021년 대산문학상 희곡부문을 수상하며, 평단에서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지난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조명을 하고 있는 명작옥수수밭의 이번 작품은 지난 7일부터 15일까지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1983년을 배경으로 대공 담당 형사 최경구가 글짓기 학원의 김문식에게 보고서 작성을 위한 글짓기를 배우러 왔다가 문학 수업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근현대사 재조명 시리즈의 일환으로 양면적 감정이 혼재하는 1980년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마주한 딜레마에 대해 사실적이고 강렬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번 작품의 재공연을 준비하면서 최원종 연출은 오랜 기간 함께 호흡을 맞춰오고 있는 차근호 작가의 주제가 보다 잘 드러나도록 노력하였다. 차근호 작가는 “신군부가 등장한 1980년 초반의 한국 역사는 아픈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딜레마에 놓인 인간'을 다룬다. 1983년 권력에 의해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소시민의 삶을 통해, 시대의 딜레마 앞에서 과연 한 개인의 올바른 선택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우리는 선택 앞에 놓여있다”라고 이번 작품을 포함하여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근현대사 재조명 시리즈에서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인 1980년대는 5공화국 시기, 최고의 경제 호황으로 기억되는 시대임과 동시에 군부독재가 통치했던 야만의 시대이기도 하다. 작품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호황, 복종과 저항, 사실과 거짓 등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소시민의 삶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을 통해 1980년대의 실상이 얼마나 부조리한 역사적 상황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주목한다.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희곡 속 "극작가의 임무는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라는 대사처럼 이번 작품은 계속되는 질문으로 모르지 않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던 진실에 대한 고민을 끄집어낸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톨스토이의 ‘부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은 경찰 최경구의 해석은 기상천외하지만, 그가 진실이라 믿던 세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일 법도 싶다. 문학 수업의 두 번째 수업에 등장한 책들은 관객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칸트의 ‘시학’,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을 권한 문식은 그에게 어떤 기대를 했다기보다는 스스로 나가떨어지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를 아우르며 핵심을 찌르는 경구의 해석은 단지 책을 많이 읽었다고 착하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경구의 인식으로 시작된 세상에 대한 자각을 그는 깨달음만으로 끝내지 않았다. 체화하고 행동하며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결정은 가방끈이 긴 소위 ‘지식인’들 중 대부분이 속 빈 강정이라 여겨지게 만든다. 하지만 경구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그저 자신의 자리를 놓은 것뿐인 겁쟁이일 수도 있는 경구의 선택조차 존중하고, 자신의 행동을 만들어낸 스승으로 인정한다.
평소 고전이나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이 찾았거나, 전공 관련 서적으로 치열하게 읽었을 그 책들 속에서 우린 무엇을 찾고 무엇을 행동하였을까?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놓은 자유경제체제 속에서 우린 무엇을 추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까?
대한민국은 사회라는 체제 속에서 울타리 안에 갇혀 울타리를 친 이들이 만들어 놓은 규율을 따르는 것이 익숙해진 민족이라 이르는 이들도 있다. 스스로 얻은 민주주의가 아니기에 반절의 민주주의에 만족한다고도 한다. 2002년 1월 27일 MBC에서 방영되었던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버려진 인생, 삼청교육대’ 편을 본 이들은 모두 울분을 금치 못하였을 것이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또한 기억하고 있을 많은 이들의 울분은 어떤 행동으로 이어졌을까?
내가 살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세상이라 느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거꾸로 뒤집힌 세상을 인식하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느끼는 무력감도 가볍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하루하루 수많은 선택 속에 그저 우리의 세계를 지켜가는 것만이 진리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번 더 만나고픈 웰메이드 공연과 관객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제43회 서울연극제는 극단 파수꾼의 '7분(5/19~28)',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심청전을 짓다(5/19~28)', 극단 여행자의 '베로나의 두 신사(5/20~28)'의 세 개의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이번 연극제는 2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폐막식을 끝으로 내년을 기약할 예정이다. 내년에 만나볼 작품들 또한 어떤 작품들일지 기대가 모아진다.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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