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막상 이렇게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이란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는 “선(善)을 행하면 그 복이 자손에게 간다.” 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선악과(善惡果 : forbidden fruit)’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선악과(善惡果)'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이지요. 하느님이 아담에게 따먹지 말라고 명령한 유일한 열매이기도 합니다.

창세기에는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이 과실을 따 먹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래도 정답은 없으며 선과 악도 명백히 정의 내릴 수 없지요. 사람마다 대답이 다르거나, 문제가 잘못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선과 악을 이기적 행위와 이타적 행위로 분류할 수도 없습니다.

설령 개인의 이기심 추구는 악이요, 이타적 행위를 선으로 가정한다고 해도, 악만이 개인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개인의 이기심에 대한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개개인이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 수도 없고, 그렇게 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자신의 이기심을 만족스럽게 채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어느 대학에서 강의 시간에 교수가 칠판에 ’선과 악(Good and Bad)‘ 이라 써 놓고 강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부부가 유람선 여행을 하던 중, 지중해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다가 큰 폭풍우로 해난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그 배에 비치 돼 있는 ’구조정‘에는 자리가 하나밖에 없었다.

이때 남편은 침몰하는 배에 부인을 남겨두고 혼자 구조정에 올랐고 부인은 가라앉는 배 위에서 떠나는 남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교수는 여기까지 말하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지요.

“여러분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부인이 남편을 향해 무슨 소리를 질렀을까요?” 얘기를 듣던 학생들은 모두 흥분과 격분으로 여기저기서 떠들며 대답했습니다. “당신을 저주해요!” “당신을 남편으로 선택한 내 눈이 삐었지!” “어디 얼마나 잘 먹고 잘사나 두고 봐라.”하는 등, 남편을 마구 욕하는 여러 가지 대답이 여기저기서 이어졌습니다.

이때 교수의 눈에 한 학생이 한마디도 안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학생에게 다가가서 나지막하게 물었습니다.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러자 그 학생에게서는 의외의 대답이 튀어나왔습니다.

“교수님 제가 생각했을 때 부인은 아마 ’우리 아이들 잘 키워달라‘며 울부짖었을 것 같아요.” 교수님은 깜짝 놀라며 물었지요. “너 이 얘기를 어디서 들어 봤니?” 학생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어릴 때 저의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에요.” 교수님은 그 학생의 말에 감동하며 다시 교단에 서서 말했습니다. “정답이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배가 침몰한 뒤 남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자녀 둘을 잘 키웠고, 그 남편도 몇 년 후 병으로 죽었다. 그 후 그 자녀들이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아빠의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아빠와 엄마가 함께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엄마는 이미 고칠 수 없는 폐암 말기로, 아빠와 함께 세상을 떠날 마지막 위로 여행 중이었다. 그때 마침 큰 폭풍우를 만나 사고가 발생했고, 아빠는 자식을 위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유일한 기회를 버릴 수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빠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보 미안하오. 그때 당신이 나의 등을 떠 밀어 내보내지 않았더라면 나도 당신과 함께 바다에 빠져 죽었을 것이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소. 우리들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자식들 때문에, 당신만 깊고 차가운 바닷속에 잠들게 할 수밖에 없었소. 천국에서 당신과 다시 만날 그날 만을 고대 하며 당신 몫까지 아이들을 잘 키우겠소.』

교수가 이야기를 끝내자 그렇게도 흥분하여 떠들던 학생들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교실은 한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무겁고 숙연한 교실 분위기 속에 학생들도 이미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는 것을, 교수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만 선과 악의 상태를 가볍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숨어있는 깊은 뜻은 모른 채 눈에 보이는 모습 만으로 ‘선과 악(Good and Bad)’을 판단해서는 오류(誤謬)를 범할 수 있습니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선은 들추어낼수록 그 공덕이 작아지고, 악은 숨겨둘수록 그 뿌리가 깊어지니, 그러므로 선은 숨겨두는 것이 그 공덕이 커지고, 악은 들추어내는 것이, 그 뿌리가 얕아 지나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굳이 선과 악을 구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마음 잘 쓰면 선이고, 한 마음 잘못 쓰면 악입니다. 따라서 우리 선은 숨겨두고, 악은 들추어내어 무량공덕을 쌓아가면 어떨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33년, 원기 107년 6월 3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