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칼럼] 윤석열과 열린우리당의 유혹 ⑥이준석은 이제 집으로...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생긴 일

2022년 1월 6일 목요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자리한 국회의사당 건물 안에서 개최된 국민의힘 의원총회에는 매서운 겨울바람보다도 더 차가운 섬뜩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의원총회에 총집결한 국민의힘 소속 현역 국회의원들은 윤석열 대선후보와 사사건건 갈등과 마찰을 빚으며 대립해온 이준석 대표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확실히 요절을 내겠다고 단단히 별러온 터였다.

무겁고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귀엣말을 나누고 있는 의원들과는 달리 이준석은 만면 가득히 미소를 띠고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거대 주요 정당 초유의 30대 젊은 당대표의 정치생명이 완전히 끝장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오직 당사자인 이준석만이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그러나 연단에 올라 당대표 자격으로 최후의 진술에 나선 이준석의 얼굴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기 어린 모습이 돌연히 가뭇없게 사라졌다. 그는 때로는 격정적 어조의 사자후로, 때로는 차분한 음성의 설득으로 30분이 넘게 계속된 긴 연설을 이어나갔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배현진 최고위원의 인사를 거부하며 손을 내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적 고립, 국민의힘에서 퇴출 수순 밟은 이준석 대표가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배현진 최고위원의 인사를 거부하며 손을 내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준석의 연설에 처음에는 냉랭한 반응을 보이던 의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씩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연설이 마무리 단계에 다다랐을 즈음 장내에는 우렁찬 함성과 갈채소리가 요란히 울려 퍼졌다. 이날의 의원총회에서 이준석에게 뜨거운 응원의 환호성을 보낸 인물들 중에는 윤석열도 포함돼 있었다.

자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객들의 손에서 비수가 아닌 장미꽃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이준석은 상기된 기색으로 그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었을 속내를 연설 말미에 흉금 없이 공개적으로 털어놓았다.

“우리가 대선에서 패배하면 여기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윤석열 후보님과 저 두 사람만 집에 가게 될 겁니다.”

이준석의 사자후와 윤석열의 따봉

윤석열은 오랫동안 검사로 생활하며 피의자들을 두둔하고 용의자들을 감싸 안는 별의별 무수한 변론들을 법정에서 들어왔다. 그는 내로라하는 유명 변호사들이 개진하는 온갖 현란하고 정교한 변론들을 무력화시키며 수많은 범죄자들에게 유죄 선고가 떨어지게끔 해왔다. 이준석의 변론술은 베테랑 특수부 검사로 잔뼈가 굵은 윤석열마저 정치적 재판대로 마지못해 끌려나온 한 전도유망한 청년 정치인의 정치적 무죄를 확신하도록 만들었다.

이준석이 보여준 30여 분의 기나긴 열정적 연설은 야성적이고 자유분방한 사자후가 사라지고, 각종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판치는 단답형의 순치되고 무의미한 재치문답만이 을씨년스럽게 덩그러니 남은 오늘날의 한국정치의 기준에서 평가하자면 극히 이례적 사건이었다. 이준석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윤석열은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우뚝 치켜세우며 한국 정당사에 유례없는 30대 젊은 당대표에게 열렬하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로써 이번 대선의 분수령을 이룬 올해 1월 6일 국민의힘 의총의 최종 승자는 당대표 이준석임이 공식적으로 추인된 셈이었다.

단하의 윤석열이 단상의 이준석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한민국 제20대 대선의 결과는 사실상 결정되었다. 이준석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세대연합의 틀이 대통령 선거 투표일 당일까지 확고히 유지될 것임이 천명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0년간 전가의 보도로 고수해온 고루하고 퇴영적인 지역연합이 윤석열과 이준석이 쌍끌이로 구축한 장년세대와 청년세대가 손을 잡는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세대연합 앞에 마침내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허나 비상상황이 종료된 즉시 윤석열 후보를 자신이 직접 운전하는 전기자동차에 서둘러 태우고 경기도 평택의 어느 냉동창고에서 발생한 화재의 진화작업을 하던 도중에 순직한 한 소방관의 빈소로 내려가던 이준석은 미처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윤석열은 물론이고 의원총회 현장에 모여든 국민의힘 내의 닳고 닳은 노회한 기득권 구태 정치인들은 모두 속으로 이런 음흉하고 권모술수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는 점을….

“대선 이기면 너 혼자만 집에 가.”

그렇다. 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무산됐다면 윤석열과 이준석 둘이 서초동과 상계동의 각자의 집으로 귀가하는 걸로 국민의힘의 20대 대선은 마침표를 찍었을 게다. 두 사람 중 윤석열은 지금쯤 더불어민주당 정권에서 그 권한과 위상이 한층 더 강화됐을 검찰을 그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와 나란히 피의자 신분으로 허구한 날 드나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준석은 「가로세로연구소」를 위시한 여러 극우 저질 유튜브 상업방송들에 의해 하루도 빠짐없이 조리돌림을 당했으리라.

국민의힘이 정권을 탈환한 사태는 한 사람만 집에 가도 되는 것으로 구도를 단순하게 정리했다. 토사구팽이라고, 토끼사냥이 끝났으니 사냥개인 이준석이 당연히 홀로 집에 가야 하는 차례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준석은 순순히 집에 가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이준석의 극렬한 저항이 권력의 역린을 건드린 용납 못할 하극상이라고 판단한 윤석열 정권 수뇌부는 1979년 가을에 벌어진 부마항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한 박정희 정권의 김영삼 신민당 총재 총재직 제명 공작을 방불하게 하는 비열하고 끔찍한 추태를 불사하고 있다. 윤핵관, 즉 윤석열 핵심 관계자가 다름 아닌 윤석열 본인임을 드디어 커밍아웃한 대통령 스스로의 공공연한 진두지휘 아래 이준석을 겨냥한 대대적 압박과 조직적 망신주기가 여당과 경찰과 용산의 대통령실을 망라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한국정치에 관해 별다른 기초 지식이 없을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현재 정국지형을 관찰한다면 어떠한 인상을 받을까? 이준석이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달아 승리로 견인한 집권 여당의 당대표가 아니라 전임 문재인 정권에서 국정원장 같은 요직을 역임한 인물로 착각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으리라. 피도 눈물도 없고, 인정도 의리도 없는 권력의 비정한 생리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금년 1월 6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의 무시무시한 후일담이었다. (⑦편에서 계속됨…)

* 필자는 '메시지버스' 운영자(공희준.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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