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칼럼] 윤석열과 열린우리당의 유혹 ⑧, 지지율 하락중 이준석 내칠 수 없어

레닌의 귀염둥이 부하린의 때늦은 후회

“잘했어, 부하린. 정말 잘했어!”

니콜라이 부하린이 레프 트로츠키를 탄핵하는 장황하고 격정적인 연설을 마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부하린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 다음 열렬한 박수갈채를 쳐주며 큰소리로 이와 같이 극찬했다고 한다.

스탈린은 평소에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남자였다. 그런 스탈린이 부하린에게 뜨겁고 요란한 찬사를 공개적으로 보냈을 정도면 레닌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적군, 곧 붉은 군대의 창설자에 대한 카프카스 출신 신학교 중퇴생의 증오와 적대감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 쉽사리 짐작할 수가 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창건된 이래 당과 정부와 군부에서 누려온 권력과 지위를 전부 상실하고 끈 떨어진 야인 신세로 전락해 자택에 유폐되다시피 한 트로츠키를 그로부터 몇 년 후 한 사나이가 조용히 찾아왔다. 사내는 30대 후반의 나이라고는 도무지 믿겨지지 않을 지경으로 폭삭 늙어 있었다. 아마도 어떤 무시무시한 일로 무척이나 마음고생이 심한 탓인 듯했다.

“스탈린은 칭기즈칸 못잖은 인간백정이요. 녀석이 우리 볼셰비키들 모두를 결국에는 죽일 거요”

트로츠키 앞에서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현직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을 맹비난한 인물은 다름 아닌 부하린이었다. 트로츠키 제거 작업에 앞장섰던 부하린이 토사구팽 격으로 이번에는 본인이 숙청당할 차례에 다다르자 옛 혁명동지이자 정적을 은밀히 방문해 지금이라도 조지아의 도살자를 권좌에서 축출할 방법이 있는지를 읍소하는 목소리로 간절하게 물어왔던 것이다.

트로츠키는 부하린에게 아무런 뾰족한 답변도 해줄 수 없었다. 그는 스탈린에 의해 조만간 신생 터키공화국(현 튀르키예)의 프린키포 섬으로 추방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레닌의 이름을 딴 화물선 「일리치」호에 강제로 승선돼 소련에서 쫓겨난 트로츠키는 그가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선도하고, 적백내전을 승리로 이끈 조국의 땅을 살아생전 다시는 밟을 수 없었다.

이상은 폴란드 태생의 소련공산당원 아이작 도이처가 총 3부작으로 구성된 「트로츠키 전기」에서 묘사한 1920년대 크렘린 안팎의 음산한 풍경들이다.

부하린이 실제로 트로츠키를 찾아와 눈물로 회개했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방도가 없다. 분명한 사실은 트로츠키라는 토끼를 사냥하는 목표가 계획대로 달성되자 스탈린은 충실한 사냥개 구실을 맡아온 부하린을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이 물이 펄펄 끓는 커다란 솥단지 안으로 홱 던져버렸다는 점이다.

스탈린은 생전의 레닌이 볼셰비키의 막내라고 부르며 무척이나 귀여워한 부하린을 제국주의자들의 간첩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누명을 씌워 총살시켰다. 부하린의 시신은 수많은 다른 대숙청 희생자들의 주검과 마차가지로 한 줌의 재로 즉각 화장돼 강물에 버려진 후에 차가운 북극해의 얼음물 속으로 허망하게 흘러들어가고 말았다.

스탈린은 강했지만 윤석열은 약하다

현재의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자본주의 제도에 기초한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를 당의 공식 강령으로 채택해 신봉하고 있다. 자본주의 타도의 기치 아래 탄생한 소련 공산당과는 이념적으로 극과 극인 셈이다. 그러나 당 지도부에서 권력투쟁이 전개되는 형태와 양식은 100년 전의 소련공산당 수뇌부를 꼭 빼닮은 양상이다. 무엇보다 소련공산당도, 국민의힘도 정권창출의 일등공신을 해당행위자로 분류해 온갖 모욕과 망신을 주고서 잔인하게 내쳤다.

트로츠키는 1917년 10월 혁명 시기 동궁을 점거하는 작전에서도, 그 후 도처에서 발생한 백군의 반혁명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트로츠키는 당의 인사권과 재정권을 실질적으로 틀어쥔 스탈린과 일찍부터 대립각을 세워왔다. 스탈린이 당의 기간조직을 접수하는 데 주력할 때 트로츠키는 일반대중을 상대로 화려한 언변을 뽐내며 당내 인사들을 겨냥한 거칠고 모진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이로 인해 트로츠키는 민심에서는 이겼지만 당심에선 졌다. 과두제와 관료제가 기묘하게 혼종돼 지배하는 소련 공산당에게 민심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공산당에서 민중의 여론의 동향은 발가락의 무좀균의 번짐과 줄어듦만도 못하게 무시해도 괜찮은 가볍고 하찮은 요소였다.

당대표 이준석이 윤석열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혁혁하게 기여했음은 부인하지 못할 진실이다. 일각에서는 이준석의 잦은 돌출행동으로 말미암아 윤석열이 대선국면에서 수시로 위기로 내몰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허나 만약 이준석이 아닌 나경원이나 주호영이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됐었다고 가정해보자. 윤석열은 하등의 우여곡절도 없는 아주 원만하고 무난한 대선캠페인을 펼쳤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원만하고 무난하게 이재명에게 패배했으리라. 낙선한 윤석열과 그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지금쯤 검찰과 공수처와 경찰을 피의자 자격으로 바쁘게 들락날락하고 있었을 게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사진=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윤리위 징계중 13일 광주 무등산을 방문, 호남에 대한 구애를 지속하면서 향후 대응전략을 다듬고 있다. (사진=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이준석은 성과가 있건 없건 민심을 잡고자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녔다. 반면, 이준석을 당 윤리위원회의 심판대에 세우는 교묘한 방식으로 숙청한 윤핵관 즉 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들은 대선 전에도, 대선 후에도 당을 장악하는 데만 집요하게 골몰해왔다. 그들 대부분은 영남과 강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보수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자면 막대기를 꽂아놔도 뽑아주는 곳들이다. 윤핵관들이 옛 소련공산당의 정치국원들 이상으로 민심을 의식하지 않고서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으로 당을 운영할 수가 있었던 배경이자 근거다.

그러므로 국민의힘에서는 무조건 당심을 잡는 게 시쳇말로 장땡이다. 참다운 민심과 괴리된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당심의 위력은 박정희 시대 신민당 이철승 전 의원의 딸이 빨간 투피스를 입고 나타나 이준석에게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의 엽기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원님재판'을 한 블랙코미디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준석 징계가 본질적으로 토사구팽의 성격이 다분한 ‘극우세력의 정치공작’에 불과함은 국민의힘의 차기 당대표로 이준석을 가장 선호하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확연히 입증되었다. 용산 대통령실의 공공연한 비호와 윤핵관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안철수 의원은 2위에 머물렀다. 국민들이 안철수를 이제는 새정치의 대표주자가 아닌, 낡고 구태의연한 여의도식 밀실정치의 대변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선명한 표시라고 하겠다.

러시아에서 추방된 트로츠키는 전 세계 곳곳을 전전하며 스탈린에 대항할 세력 규합에 나섰다. 제4 인터내셔널은 스탈린의 소련이 맹주가 되어 조직된 제3인터내셔널, 약칭 코민테른(COMINTERN)의 대안이자 대항마를 자처했다. 물론 조직의 규모와 같은 현실적 힘의 층위에서 제4인터내셔널은 코민테른의 적수가 결코 되지를 못했다.

이준석은 지금 한반도 남쪽 곳곳을 낮은 자세로 잠행하며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있다. 1985년생 이준석이 트로츠키가 창안하고 구사한 정치투쟁의 전략전술을 학습·터득했을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최고권력자와 그 심복들이 책동한 음모에 부주의하게 걸려들어 불의의 낙마를 당한 정치인이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은 외곽에서 지지자들을 모아 권토중래를 도모하는 것뿐이다.

트로츠키는 재기에 실패했다. 트로츠키가 약했다기보다는 스탈린이 너무 강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종신집권자 스탈린과는 다르게 5년 임기의 한시적 권력만을 행사할 수 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자신이 대선운동 기간에 유권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약속했던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하는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행위들을 쉬지않고 남발해온 후과로 취임 두달여 만에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반대 응답이 지지 응답의 2배 가까이 나오는 데드크로스의 수렁 속으로 나날이 빠져들고 있다. 스탈린의 트로츠키 숙청은 성공했지만, 윤석열의 이준석 토사구팽은 실패로 귀착될 개연성이 점점 더 농후해지는 까닭이다. (⑨회에서 계속됨…)

* 필자는 '메시지버스' 운영자(공희준.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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