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의 시사직격] '자유'를 향한 윤석열 대통령의 33번의 외침, 모두를 위한 자유이기를

대통령 취임사 35번, 광복절 경축사 33번 '자유' 외침,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그제 8월 15일, 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라는 단어를 33번 외쳤다. 지난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했다. 언뜻 보면 대한민국이 아직 자유를 쟁취하지 못한 나라인 듯 착각이 들기도 한다. 자유, 정말 중요하다.

자유는 민주주의와 쌍둥이다. 자유가 있는 나라는 필히 민주주의가 있는 나라다. 민주주의 국가는 필히 자유를 보장한다. 지난 2017년 연인원 천만 명이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독일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에버튼 재단은 한국의 촛불시민들에게 민주주의 인권상을 수여했다. 물론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촛불집회를 민주주의의 모범적 시민참여로 극찬했다.

거리의 상가들이 부서지고 도난당하며 차량들이 화염에 휩싸이는 유럽이나 미국의 집회현장에 비하면 그야말로 모범 중에 모범이었다. 흔히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국가들이다. 대한민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둘 다를 쟁취한 나라로 평가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물론 불평등과 양극화, OECD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최장의 노동시간, 세계1위 자살률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며 극복해야 될 과제이다. 87년 체제 이후 제도적 관점에서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여느 나라 못지않게 확보되었다. 이제 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고도화 과정이 남았다. 그런 면에서 촛불시위를 기점으로 하여 흔히 ‘시민의식’으로 일컬어지는 민주적 참여와 제도정치의 상호적 반응이 과거에 비해 조금씩 성숙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집권세력의 과도한 권력 남용이 절차적 민주주의와 질적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검찰조직으로 대표되는 과거부터 공안정부에 협조적이었던 관료집단과 출신이 집권여당 대통령이 된 오늘의 보수정치는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15일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유'였다.경축식의 타이틀도 '위대한 국민, 되찾은 자유, 새로운 도약'으로 잡았다.옅은 하늘색 넥타이에 태극 문양 행커치프를 단 윤 대통령은 약 13분간 읽어내려간 경축사에서 '자유'를 총 33회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15일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유'였다. 경축식의 타이틀도 '위대한 국민, 되찾은 자유, 새로운 도약'으로 잡았다.옅은 하늘색 넥타이에 태극 문양 행커치프를 단 윤 대통령은 약 13분간 읽어내려간 경축사에서 '자유'를 총 33회 언급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는 구체성이 없다.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가 발표한 ‘2020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 2020)’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0점 만점에 8.01점을 받았다. 이는 2014년 이후 5년 만에 ‘결함 있는 민주국가(flawed democracy)’에서 ‘완전한 민주국가(full democracy)‘ 대열에 복귀한 것이었다. 평가 대상 167개 국가 중 23위였다. EIU지수는 선거과정과 다원주의, 정부기능, 정치참여, 정치문화, 국민자유 등 5개 영역을 평가해 민주주의 발전수준 지수를 산출한다. 한국 바로 앞에는 스페인(22위)과 일본(21위)이 있다. 객관적 지표를 보면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력 10위, 국방력 6위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 있다.

지난 해 7월에는 유엔무역개발회의(운크타트, UNCTAD)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에서 195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한국의 지위가 기존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됐다. 1964년 운크타드 창설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나라는 대한민국이 처음이고 유일하다. 한국의 K-Pop과 K-Drama는 전 세계 차트를 수차례 석권했다. 적어도 대한민국은 꽤 위상을 갖춘 나라가 됐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았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기록이다.

보수세력의 '자유'는 생존 본능에서 나온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 논리일 뿐

이런 와중에 보수당 대통령과 일부 정치인들은 연일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하며 자유를 정권창출의 목표와 명분으로 삼았다. 분명 위에서 나열한 세계순위와 국가 위상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메시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름 아닌 북한과의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얻어지는 ‘자유‘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되어 냉전 이데올로기 투쟁이 연속되고 있는 전쟁 중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를 자처하는 국민의힘에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하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 선거 때면 등장하는 북풍이슈가 대표적이다.

책 「반공자유주의」를 쓴 김동춘 교수는 한국정치를 대결적인 전장으로 만들고 사회 전체를 이데올로기적 진영논리로 귀결시키는 문제의 근원을 반공자유주의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 현대사에서 자유주의의 역사적 근원을 추적하여 ‘자유’가 어떻게 보수의 핵심 전투력과 가치가 되었는지, 또 반공자유주의가 어떻게 신자유주의와 결합되었는지를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를 33번이나 외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이 외치는 자유가 어떤 자유인가. 김동춘 교수는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이 외치는 자유는 투쟁을 통해 수립된 것도 철학적 성찰이 담긴 것도 아니라며 오로지 그들의 생존 본능에서 나온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 논리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의 일반 이념을 ‘상처받은 자유주의’라고 정의한다. 오로지 공산주의 반대를 위해서만 설명되어지는 자유인 셈이다. 그래서 ‘빨갱이’와 ‘색깔론’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외친 33번의 자유에는 노동자가 배제된 친기업(재벌) 중심의 자유로 점철되어 있다. 대중의 자유는 그곳에 없다.

조경일 작가
조경일 작가

오늘날 보수주의자를 자청하는 집권여당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은 반공주의가 전제된 ‘자유’이다. 하지만 보수정당의 역사적 전통은 이승만 정부와 유신정권 박정희 군사정부, 전두환 신군부 정권 등 국가목표를 위해 대중의 자유를 기꺼이 억압했던 정권에 태생적 뿌리를 두고 있다. 역사적 아이러니다. 정작 군사독재 시절 자유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싸웠던 이들은 지금은 586 기득권으로 질타의 대상이 된 운동권이 주축이었다. 물론 운동권만 있지는 않았다. 자유를 위해 싸우다 군부독재에 희생된 수많은 이들이 있었고, 이때 정통 보수주의자들이 극우반공주의에 보수의 자리를 빼았겼다. 김구, 함석헌, 문익환 등 민족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다.

‘자유’를 억압했던 이들의 최대 가치가 ‘자유’가 된 오늘의 보수정당, 그리고 이들에게 반(反)자유, 반(反)지성의 집단으로 지목된 민주당의 모습은 어색해도 한참 어색하다. 민주주의를 위해 그렇게 싸웠지만 결국 강력한 반공주의 담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당의 무능함 또는 무기력함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다시, 윤석열 대통령의 보수여당이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33번의 자유에 기업의 자유만이 아니라, 시민과 노동자들,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 탈북민과 사회적 소수자들, 제도권 밖으로 흩어져버린 수많은 조각난 이들을 위한 자유도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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