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가족부! 역사속으로 사라질까?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새천년에 들어서야 신설된 매우 젊은 부서다. 제6공화국 세 번째 정부로 1998년 2월 25일,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제2정무장관실을 폐지하고 대통령 직속 산하에 ‘여성특별위원회로 만들었다. 앞서 10년전 1988년 제2정무장관실이 여성문제 전담기구로 등장했다. 제2정무장관실은 부서는 아니었기에 정책 권한상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다. 

사진: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오픈라운지에서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오픈라운지에서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가 여성부를 창설하기를 강권했다. 1999년 5월 3일, 양측은 극적 합의를 본다. 이에 2001년 1월 29일, 여성부 전격 출범은 국제적 흐름에 호응하려는 노력, 시민사회의 한결같은 염원, 정치지도자의 시대적 선견이 맞아떨어진 ‘여성 권익신장’의 일대 분수령이었다.  

이후로부터 21년이 지난 10월 6일 윤석열 정부는 대선 공약의 후속조치로 여가부를 폐지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했다. 이에 대한 대안 수립대책은 이렇다. 복지부 산하에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해, 여가부가 맡았던 가족과 아동·청소년, 노인 등 종합적인 생애주기 정책과 양성평등 정책을 맡기기로 했다. 여가부의 또 다른 기능이었던 여성 고용정책 관련 업무는 고용노동부로 이관된다.

독립 부처였던 여가부가 특정 부처의 본부로 위상이 낮아지게 된 건데,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장에게 장관급과 차관급 중간의 위상과 예우를 부여하기로 했다.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의 수장인 본부장에게는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처럼 장관보단 낮지만 차관보단 높은 지위를 부여하며, 장관급이 참석하는 국무회의에 배석한다.

한편, 여가부 폐지에 찬성하는 측의 핵심 주장은 “여성의 인권 신장을 통해 성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여가부의 비전은 여성에게만 편향돼 있으며 남성을 배제해 극심한 젠더 갈등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젠더 갈등은 해소되고 가족 정책이 정상화 될 것”이라며 “대립이 아닌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정조준한다.

● 여성가족부의 무한한 순기능

여가부가 단순히 여성만의 ‘인권과 평등, 복지’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인식을 소유하고 있다면, 이는 매우 큰 오해이자 혼동의 우려가 상당하다. 현재 한국 사회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심화와 이례적 저출산은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버거운 짐이다. 이와 함께 붕괴되어 가는 가정 안전핀의 보루로서 순기능적 역할의 구심점인 여가부의 무한 기여도는 한시도 과소평가될 수 없다.

행복한 사회 만들기 일환으로 일하는 남성도 자녀 양육을 위해 육아휴직을 할 수 있고, 아이를 기르는 엄마도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이끌며 일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친다. 청소년들이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나간다.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조손가족 등 다양한 가족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또한 여성과 청소년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쏟고 있다. 이처럼, 여가부의 입체적 다원적 폭넓은 활동 영역은 전방위적이다. 

전국 286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0월 4일 성명을 통해 “여성인권과 성평등 정책을 후퇴시키려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최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예로 들며, “여성들이 차별과 폭력 없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성평등 정책 전담부처인 여가부의 책무와 권한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방한 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9월 29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 분야의 여성 리더들을 만나 간담회를 갖고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저는 여성이 성공할 때 사회 전체가 성공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민주주의의 진정한 척도는 여성의 지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싶다면 우리는 성평등에 주목하고 사회, 경제, 안전 등 모든 부분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야망을 가지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 여가부 역할 재정의! ‘부처간 조정권한 강화’

여성의 노동 참여율, 성별 임금 격차, 고위직 여성 비율 등 수많은 지표에서 한국의 불평등은 여전히 위험수위이다. 2022년 여가부 예산은 정부 전체 예산의 0.23%인 1조 4115억 원으로 18개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적다.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놓았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지적이다. 여가부 예산의 대부분이 경력단절 여성, 미혼모, 학교밖 청소년 등 소수자를 지원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의 여성 인권 문제는 각종 지표에서 하위권을 차지하며, 예산규모는 형편없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여가부 폐지에 집착하는 건 정치적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는 김현숙 장관이 10일 여성계 간담회를 열고 여가부 폐지에 관한 의견을 모은다고 9일 밝혔다.간담회에는 김 장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여성경제인협회장, 여성유권자연맹회장, IT여성기업인협회장이 참석한다.여가부 폐지를 꾸준히 반대해온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불참한다.
사진: 여성가족부는 김현숙 장관이 10일 여성계 간담회를 열고 여가부 폐지에 관한 의견을 모은다고 9일 밝혔다. 간담회에는 김 장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여성경제인협회장, 여성유권자연맹회장, IT여성기업인협회장이 참석한다. 여가부 폐지를 꾸준히 반대해온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불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도 여성 전담기구가 있는 곳이 많고 오히려 이를 확대하는 추세이다. 캐나다, 프랑스, 스웨덴 등 9개국이 도입한 ‘페미니스트 외교정책’(Feminist Foreign Policy)은 성평등과 인권증진을 도외시하는 국가와는 외교적 동맹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여가부 폐지는 젠더 관점, 성평등을 중시하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기에,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 문제는 하루아침에 제도를 신설한다거나 폐기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 업무가 다른 부처로 흡수된다고 해도 여가부의 다양하고 세밀하게 정책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가부의 기능과 역할을 여러 부처로 이관시키면, 각 부처에서 일하는 젠더 전문가들은 해당 부처의 관심에 따라 부처 안에서 고립되거나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최근 유독 정치권이 남성혐오와 여성 혐오 현상의 성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헌법이 정한 소수자의 권리와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구조적 차별 문제를 부정하는 소모적인 논쟁은 이제 멈춰야 한다. 성평등을 위한 독립적인 정부 부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폐지 대신 여가부 역할을 재정의하고, 부처 간 조정 권한을 강화한다면 저출산이나 이혼 급증, 노인자살 수직상승 등 한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강력한 지원군이나 동맹이 될 수 있다. 특히 야당인 민주당이 국회 의석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국회에서 통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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