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가 해체된 시뮬라크르의 공간으로서 추상회화
모더니즘 추상이후 한국 추상회화의 방향성 가늠

인터뷰하는 조동균 작가 (사진= 노익희 기자)
인사동 사거리 '더원미술세계 갤러리보아'에서 인터뷰하는 조동균 작가 (사진= 노익희 기자)

[서울=뉴스프리존] 노익희 기자= ‘조동균 초대전_Whispering Lines’가 5일부터 10월 17일까지 12일간 ‘갤러리보아’에서 열리고 있다. <더원 미술세계>는 재창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모더니즘 이후 한국 추상회화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조동균 작가를 초대해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다. 10일 인사동사거리에 위치한 미술세계 갤러리보아에서 조동균 작가를 만났다.

- 개인전을 축하드립니다. 전시회의 의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네, 원형(原形)에 대한 탐색에서 출발한 조형실험은 ‘선’에서 시작하여 ‘선’으로 귀결됩니다. 이 ‘선’에 대한 이해를 작품에 담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 길을 가다 우연히 찌그러진 깡통을 주운 적이 있어요. 녹슬고 납작해진 깡통인데, 원래 원기둥 형태였겠지만 지금은 몇 개의 선으로만 보이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죠. 대상을 환원시키면 최종적으로 ‘선’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그 ‘선’의 조합을 통해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아네, 깡통에서 얻은 영감으로 시작한 추상회화로 이해할 수 있군요. 선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신다면?

“‘선’은 하나의 실재라기보다는 시간성을 함의하는, 즉 ‘운동’을 암시하는 일종의 기호체계로 작동한다고 인식하게 했습니다. ‘선’을 대하는 존재론적 인식은 처음 캔버스에 색면을 만들고, 이 색면 위에 ‘선’을 사용하여 한 겹씩 색면을 가려나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회화조각’이라고 일컫는데, 기존의 회화의 제작과정이 물감층을 덧씌우는 포지티브 방식이라면, 저의 회화는 처음 색면에서 이 색을 순차적으로 깍아들어가는 네거티브 방식입니다. 드러내거나 구축하는 방식이 아닌 가리거나 허무는 방식입니다”

Whispering Lines
Whispering Lines

- 조 작가님의 작업이 끝나면 캔버스가 테이프로 모두 가려진 상태가 된다고 하던데..

“네, 외형적으로 실체가 모두 상실된 상태, ‘없음’의 상태가 되었을 때 작업이 끝나게 됩니다. 이를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역순으로 테이프를 뜯어내면서 최초의 상태로 돌아가 ‘있음’의 상태로 부활하게 됩니다”

- 조동균만의 미학적 세계관이 있다면?

“세상은 ‘있음’으로 선택된 것들에 의해서 조명되지만, 세상의 대부분은 오히려 지금 선택되지 않은 ‘없음’으로 채워져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실재죠. 저는 작업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선택되지 않은 ‘없음’을 부각하고, 이를 조합함으로써 실재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조동균의 회화세계는 탈근대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추상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추상화와는 차이가 있다. 추상화는 형식적인 측면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회화양식이니 만큼 본질적으로 모더니즘의 가치관을 극복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장르이다. 조동균의 회화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정리된 존재론적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프로세스 안에 ‘탈근대적 추상’이라는 미술사적 지위를 확고히 확보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추상회화의 역사는 매우 짧기도 하거니와 그 내용에 있어서도 협소한 것이 사실이다. 더원 미술세계에서 기획한 ‘조동균_Whispering Lines전’은 기존에 한국화단에서 회자되는 추상회화의 담론을 확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모더니즘 추상 이후 추상회화의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로 기록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Whispering Lines
Whispering Lines

- 작가 조동균?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으며, 9회의 개인전과 500여 회의 국내외 단체전을 통해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94년 첫 개인전 이후 'Myth Icon'을 주제로 하여 상징성 짙은 기호나 도안을 여러 오브제와 결합하여 작업하였으며, 2006년부터는 '감각에서 선의 인식과 작용'을 시각화 시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2012년 이후 그래픽 작업의 과정에서 ‘레이어’ 효과에 주목하고 이를 회화적으로 변환한다. 단순하고 명쾌한 선 구성으로 이루어진 화면은‘있음-없음', ‘선택-남김’, ‘형상-배경’으로 구분되는 디지털세계의 이분법적 존재양식과 닮은꼴 회화를 보여주고 있다.

공립인제내설악미술관, 성남시립 큐브미술관, 미술세계기획 등의 초대전을 통해서 평면에서 선의 반복효과에서 빚어지는 빛의 새로운 공간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분법적 충돌과정에서 갈등 하는 현대인의 존재론적 인식에 대한 환기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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