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智慧)란 무엇일까요? 사전에는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불가(佛家)에서는 ‘지혜란 미혹(迷惑)을 끊고 부처의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힘’ 이라고 되어 있지요.

지혜란 공부하면서 알게 되는 지식과는 다릅니다. 현재의 이익이나 행복이 아닌 진정한 이익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리 연구를 하면 이런 연구 력이 생겨서 늘 복과 혜(慧)가 넘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삶의 지혜일 것입니다.

지식이 많다고 지혜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간혹 우리 중의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운 지식으로 인해 오히려 지혜를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는 첫걸음은 자기가 미흡하다는 것을, 아는 데 있습니다. 지혜롭다는 건 우선 고개를 숙일 줄 안다는 것이지요.

이 광활한 우주와 오묘한 자연 속에서 우리 인간의 존재는 보잘것없는 작은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껏 오만을 떠는 것은 지식만 있었지, 지혜가 없는 까닭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우리 인간은 결국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아닌지요?

그러나 지혜의 문만 열게 되면 인생의 많은 난관을 비교적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진리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에게 무엇을 가장 원하느냐고 묻자. 그는 ‘지혜’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혜란 ‘오늘은 내일의 발판이고, 내일은 오늘의 희망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잘하려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입니다. 너무 완벽하게 하지 마세요. 그게 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일입니다. 너무 앞서가려 하지 마세요. 그게 다 나를 괴롭히는 일입니다. 조금 더 가볍게 살아가도 나쁠 건 없습니다.

그럼 지혜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첫째, 배우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부지런함은 만복의 근원이 되고, 배우기를 좋아함은 큰 지혜의 바탕이 됩니다. 배움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밖으로 모든 학문을 듣고 배워 알아 감이요, 둘은 안으로 연마하고 궁구(窮究)하여 자각으로 지견(智見)을 기르는 것이며, 셋은 배우고 깨친 바를 실지에 베풀어서 지행이 일치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리 연구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사(事)란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를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理)란 곧 천조(天造)의 대소유무(大小有無)를 이름이지요. 또한, 대(大)란 우주 만유의 본체를 이름이요, 소(小)란 만상이 형형색색으로 구별되어 있음을 이름이며, 유무란 천지의 춘·하·추·동 사시 순환과, 풍·운·우·로·상·설(風雲雨露霜雪)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의 변태(變態)를 이름합니다. 또 연구란 사리를 연마하고 궁구함을 이름이지요.

셋째, 정(定) 공부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큰 지혜를 얻으려 하면 큰 정에 들어야 합니다. 마음 놓는 공부와 잡는 공부를 아울러 단련하여 숨들이 쉬고 내 쉬는 것 같이, 놓기도 자유로 하고 잡기도 자유로 할 수 있어야 원만한 공부를 성취하고 큰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넷째, 정 공부의 방법입니다.

정 공부의 길로는 염불과 좌선(坐禪)이 대표적입니다. 그 외에 기도, 독경(讀經)도 훌륭한 정 공부이지요. 어쨌든 무슨 일이나 마음이 한 곳에 일정하여 끌리는 바 없으면 다 정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지혜가 어두워지는 조건이 있습니다.

범상한 사람에게는 무슨 일에나 지혜 어두워지게 하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욕심에 끌려 구하므로 중도를 잃어 그 지혜가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의 소질 있는 데에만 치우쳐 집착되므로 다른 데에는 어두워지는 것이지요.

그럼 지혜를 얻은 사람이 평소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요?

첫째, 조금 바보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생의 많은 난관을 비교적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둘째, 아낌없이 베푸는 것입니다.

그걸 ‘베풂의 법칙’ 이라고 합니다. 주면 주는 만큼 더 많이 받을 것입니다. 실제로 삶에서 가치 있는 것들의 베풂을 통해 그 이익은 배가 됩니다.

셋째,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초연의 법칙’ 이라고 합니다. 잡으면 괴로워지고 놓으면 편해집니다. ‘재·색·명·리’에 집착하면 인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놓으면 자연 찾아오는 것이지요.

넷째,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서원(誓願)의 법칙’ 이라 합니다. 서원을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크고 정의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서원을 세우고 달려가야 합니다. 세상의 원 가운데 <성불제중(成佛濟衆)>의 원만큼 큰 서원은 없습니다. 우리 이 큰 서원을 향하여 달려가면, 인생의 불빛이 되어 주는 지혜를 얻어 자연 삶의 지혜도 무궁무진해지지 않을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0월 2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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