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리 선생 (사진= 노익희 기자)
▶바보사랑 포스터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쟈니리 선생 (사진= 노익희 기자)

[서울=뉴스프리존]노익희 기자=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걸어 오면서도 오로지 음악만으로 위안을 받으며, 여전히 현역으로 노래 인생을 살고 있는 영원한 가왕 '쟈니리 선생'을 종로3가 청춘극장 음악실에서 만났다. 

선생님 1938년에 출생하셨어요.

쟈니리 선생 : 일제 강점기에 만주국 지린성에서 태어나 상하이에서 유아기를 보낸 후 귀국해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소학교를 다녔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전국 각지로 공연을 다니셔서 어머니와의 추억은 별로 없다. 

6·25 전쟁이 터지면서 피난을 가던 도중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게 돼 13살에 고아가 됐다. 어릴 적 기억에는 전쟁 후 잿더미가 된 나라와 떠돌이 생활의 서러움, 그리고 배고픔이 있을 뿐이다.

쟈니리 선생 (사진= 노익희 기자)
신곡 쟈니부르스(작사 이사벨)를 피아노를 치면서 들려 주는 쟈니리 선생의 모습이 이채로워 보인다. (사진= 노익희 기자)

미군이셨던 아버지를 아직 맘에 두고 계십니다.

쟈니리 선생 : 경상남도 부산까지 피난을 가게 됐는데 부둣가 바람은 나를 집어삼킬 듯 했다. 그 막막한 곳에서 처음으로 따스함을 느끼게 해 준 사랑이 찾아왔다. 전쟁 당시 군수물자 운송을 담당한 제7항만 사령관인 미국인 랙스 무섬이 나를 양아들로 입양한 것이다. 

친아버지를 몰랐기에 나에게는 유일한 아버지다. 아버지는 사령관직을 사임하고 나와 함께 미국으로 들어가 나를 보살피고 가족이 있는 삶을 주셨다. 내 인생에 꿈과 희망이 펼쳐지는 듯 했고 행복하고 따뜻한 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다시 복직을 하시면서 나와 함께 한국에 나오셨고 근무하시던 부대 장교클럽에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겨 하셨던 아버지와 생활하면서 나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아버지는 내 목소리가 쟈니 마티스(Johnny Mathis)를 닮았다 하시며 '쟈니'라 이름지어 주셨다.

1954년, 아버지는 식도암 판정을 받으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3년여 아버지로 인해 행복했던 시간이 사라지고 불행한 삶이 찾아왔다. 영원할 것 같았던 따스한 행복의 순간들은 끝나고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된 것이다.

쟈니리 선생(사진= 노익희 기자)
쟈니리 선생(사진= 노익희 기자)

선생님, 본격적인 연예계 생활은 언제 시작하셨는지요.

쟈니리 선생 : 1959년에 극단 쇼보트 단원으로 연예계 생활 시작해 1961년에는 아버지랑 같이 다니던 미8군 무대에서 잠시 가수활동도 했다. '청춘대학'이라는 영화에 가짜 비틀즈로 출연하면서 영화 주제가 '울고 싶은 마음'을 불렀는데, 그 곡으로 톱히트 레코드사에서 1집을 발매했다.

이후 번안곡을 많이 부르고 음반도 내다가 1966년, 신세기 레코드사를 통해 '뜨거운 안녕'을 발표했다.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곡과 함께 히트를 쳤지만 1년이 지난 후 금지곡이 됐다.

'왜 해가 오늘 뜨지 내일(미래)에 뜨냐'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그 노래는 잊혀갔고, 세월이 많이 지나 '사노라면'이라는 노래로 리메이크돼 인기를 구가했다.

쟈니리 선생(사진= 노익희 기자)
연주를 하면서 행복해 하는 쟈니리 선생(사진= 노익희 기자)

이후 활동이 뜸하셨어요.

쟈니리 선생 :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면서 1976부터 1978년까지 이훈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1980년대에 아예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한국에서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 미국생활을 하면서 노래는 그만두게 됐다.

그러다가 20여년 전 한국에 다시 들어와 혼자 외로울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생활을 하는 중에 식도암 판정을 받았다. 의사도 포기할 정도였지만 아내의 지극한 정성과 간호로 회복됐다. 노래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의 나는 내 아내가 준 새로운 인생이다. 아내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다.

쟈니리 선생과 아내(윤상숙)와의 결혼식 모습 (사진= 쟈니리 선생 제공)
쟈니리 선생과 아내(윤상숙)와의 결혼식 모습 (사진= 쟈니리 선생 제공)

최근 안까타운 일이 있으셨다 들었습니다.

쟈니리 선생 : 종로에서 '1번지'라는 음악 감상실을 운영하던 정상수 선생과 인연을 맺어오던 차에 MBC 복면가왕 프로에서 출연 섭외가 왔다. 그래서 그가 내 매니저처럼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 줬다. 고마운 사람인데 갑자기 일찍 세상을 떠났다...

쟈니리 선생(사진= 노익희 기자)
관객들에게 뜨거운 안녕을 정성껏 불러주는 쟈니리 선생 (사진= 노익희 기자)

선생님 건강은 어떠신지요. 

쟈니리 선생 :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하고 관리를 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제주도 공연을 갔다 왔다. 11월15일에는 성동문화회관 서울아트홀에서 공연이 잡혀 있다. 나이도 많고 식도암 판정도 받았지만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정말 감사하다.

오랜 세월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노래를 계속하고 싶다. 라이브가 좋다. 11월에는 신곡 '쟈니블루스' 싱글 앨범이 발매된다. 감사하다. 

한편 쟈니리 선생은 첫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을 두고 있으며, 아들과 손녀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R&B 노래를 좋아하고 특히 ‘사의 찬미’ 곡을 좋아한다는 선생은 지금도 종로 '청춘극장'에서 와인 한잔과 함께 라이브 노래를 부르며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는 쟈니리 선생 (사진= 노익희 기자)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는 쟈니리 선생 (사진= 노익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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